이삼행 / ​​​​군서면 모정리 / ​​​​영암지역자활센터 센터장 / ​​​​동아보건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전라남도교육청 교육참여위원장
이삼행 / ​​​​군서면 모정리 / ​​​​영암지역자활센터 센터장 / ​​​​동아보건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전라남도교육청 교육참여위원장

“미안합니다, 제 잘못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유난히 사과에 서툴고 인색하다고 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곧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는 거라는 의식이 사과라는 행위를 가로막는다. 자신의 행동이나 결정은 합리적이었고 실수한 적 없다고 꾸미며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에 90세가 넘은 어르신 한 분이 계신다. 건강하셔서 농사일도 하고 지역사회 단체나 인적교류도 활발하신 분이다. 어르신은 만나는 사람에게 항상 “아이고, 몰라봐서 미안합니다.” “이 늙은이가 별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합니다”라고 인사하신다. 먼저 스스로를 낮추니 상대는 더 낮은 자세로 “아이고, 선생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하게 된다. 이 어르신은 낮은 자세로 지역사회에 어른으로서 역할을 하신다. 지역사회 후배들에게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지역사회의 본보기가 된다. 

사과하는 법, 다시 배워야

초등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사과의 유형 4가지를 소개한다.

① 변명하지 않기 : “미안해,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어.”라고 변명하는  사과는 상대의 마음을 풀지 못한다.

② 조건부 사과하지 않기 : “혹시 네가 속상했다면, 내가 사과할게.” ‘혹시’ ‘만약’ 같은 조건부 사과는 상대방을 옹졸한 친구로 만든다.

③ 모호한 표현 피하기 :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만, 네게 상처를 줄 생각은 없었어.”라는 말은 사과가 아니다. 사과라는 것은 의도에 대해 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준 결과에 대해 하는 것이다.

④ 사과할 타이밍 찾기 : 상대방이 단단히 화가 났는데, 불쑥 “미안해.”라고 하면 상대방은 사과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도리어 갈등이 커질 수도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서 적절한 시기에 사과를 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사과하는 법은 아주 단순하다.

 - “지난번에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솔직하게 사과하면 된다.

 - “내가 잘못했다는 걸 알고 있어. 내 실수야” 본인의 책임을 인정하면 된다.

 - “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알려줘” 개선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할게” 재발방지를 약속한다. 

초등학생들은 ‘솔직한 사과, 책임 인정, 개선책 제시, 재발 방지 약속’ 이 단계로 친구에게 깨끗하게 사과하라고 배운다.

사과는 정상적인 인간관계에서 중요하게 상호작용을 한다. 사과를 주고받는 인간관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건강한 사회관계를 기대할 수 없다. 자발적으로 문제행동을 인정하는 사과하기, 용서하기는 개인의 인관관계를 넘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열쇠가 된다. 

미국에는 "아이 엠 쏘리(I am sorry)법"이라는 게 있다. 의사가 의료과실을 범했을 때 법적 부담 없이 환자에게 사과할 수 있도록 해주는 법이다. 이 법으로 의사들은 소송 걱정 없이 환자들에게 마음 놓고 사과를 하게 되었다. 사과한 것이 법적으로 불리한 근거가 되지 않으니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을 마음 놓고 위로할 수 있게 되었고, 의료 분쟁과 소송이 줄었다고 한다.

간혹, 상대의 사과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사과를 잘하는 사회는 이해심이 커져 갈등이 해소된다.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때, 실수로 부딪혔을 때 정중하게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 말 한마디가 상대방의 서운하고 억울한 마음을 녹인다.
 
사회의 변화는 사과로부터 출발한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이기적인 존재이기에 언제든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해를 끼친 경우라면 우리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 사과의 핵심은 피해자가 사과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회지도층은 왜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며 사과하지 않는가.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가 법적으로 책임을 지는 증거가 되거나 흠집이 나는 게 두렵기 때문일까? 하지만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행위와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미안하다는 사과를 했다고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실책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함을 전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이다.  법적 책임을 회피하고자 사과라는 방식을 이용해서도 안 되지만, 어차피 벌어진 일을 인정하지 않으면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거라고 생각하며 모르쇠 하는 것은 더 큰 사회적인 분노를 일으킨다.

책임자로서 하는 사과는 피해를 입힐 의도가 있었느냐가 아니라 ‘사건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행위다. 따라서 사과하기에 앞서 자신의 행위나 결정이 왜 국민들에게 본의와 달리 고통을 줄 수밖에 없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피해자들이 받고 싶은 사과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한 인정이다. 사회적 책임이 큰 사람들부터 사과의 기본을 다시 배워야 한다. 사회 변화의 시작은 올바른 사과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나부터 시작해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겸손하게 사과를 잘하는 사람이 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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