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 서호면 몽해리/전 목포시 교육장 /전 전남교육청 장학관
이기홍 / 서호면 몽해리/전 목포시 교육장 /전 전남교육청 장학관

영암장학재단 이사가 되어 세 차례 회의에 참석했다. 영암장학재단이 기대 이상으로 많은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학교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물론, 여러 가지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학생들을 위해 다양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었다. 심지어 고향 후배에게 정신적인 멘토 역할을 하는 대학생에까지 장학금 명목의 봉사료를 지급하고 있었다. 영암장학재단의 총 재원은 약 100억 원 정도 됐다. 

필자는 약 16년 동안 전남교육계에서 장학사와 장학관을 역임했다. 필자가 했던 장학은 어떻게 하면 선생님들이 학생을 잘 가르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맞추어져 있다면, 영암장학재단에서 시행하는 장학은 어떻게 하면 우리 영암출신 학생들이 공부를 잘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맞추어져 있을 것이다. 같은 장학이란 말이지만 영암장학재단의 장학은 배우는 학생의 입장에서 필요한 장학이요, 필자가 그동안 해 왔던 장학은 가르치는 선생님의 입장에서 요구되어지는 장학이다. 세 차례 회의였지만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필자는 공직 재임시절 업무관계로 여러 차례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했다. 조선내화를 창업한 성옥(聲玉) 이훈동씨(1917~2010)가 만든 성옥 문화재단에서 수여하는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하여 축사를 하기도 했다. 축사를 의뢰받고 성옥에 대해 알아야 하겠기에 성옥의 자서전 ‘나의 아침은 늘 새로웠다“를 구해 읽어보았다. 그는 신 새벽에 일어나 일을 시작하였는데 그 이유는 새벽을 열어 붉은 해를 끌어올리는 어김없는 역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쓰고 있었다. 식장에 가니 학교에서 공부를 잘한다는 기라성 같은 대학생들이 질서정연하게 앉아 거금을 받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필자는 단상에 올라 적어도 이 자리에 장학금을 받으러 오려면 나를 위해 장학금을 마련해준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가는 알고 장학금을 받으러 오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느냐고 말하며, 그렇지 못했다면 돌아가서라도 성옥의 자서전을 읽어볼 것을 권하기도 했다. 여러분도 성옥 이훈동 선생처럼 신 새벽에 일어나 새벽을 희망으로 맞아들이기 바란다고 했다. 

여러 차례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하면서 느낀 점은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은 자신이 잘해서 당연히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라도 있는 것처럼 행동했고 장학금을 준 사람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은 찾기 어려웠다. 또 한 번은 고등학생에게 의사협회에서 장학금을 주는데 필자의 견해로 볼 때는 도저히 학생 같지도 않은 학생의 모습에 너무나 실망스럽기도 했다. 학교에서 추천받았다는 여고생의 모습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의 모습이 아니었다. 머리는 치렁치렁했고 입술은 새빨갰으며, 옷은 교복 같지 않은 무늬만 교복을 입고 있었다. 저런 학생을 학교장은 왜 장학생으로 추천했을까 하는 마음에 내가 오히려 그 장학금을 마련해준 수많은 의사 분들에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한번은 장학금 수여 자리에서 따끔한 충고를 하기도 했다. 오늘 받은 장학금은 훗날 반드시 되돌려 주라고. 그리고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자신을 길러준 고향을 부끄러워하고 자기를 안아준 지역사회의 치부를 드러내 지적하는 것이 마치 지식인 반열에 드는 것인 양 행동했던 잘못된 시절이 있었다고 환기시키면서, 적어도 여러분만은 고향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여러분을 안아준 지역사회를 운명애로 대해 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했다. 영암이 어렵게 마련한 장학금을 받아 공부하면서 영암을 폄훼하고 영암 사람이 힘들게 마련한 장학금을 받아 자신의 욕망을 채우면서도 영암 사람을 매도하는 장학금 수급자가 있다면 정말이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겠는가. 필자는 영암장학재단 이사로서 적어도 영암을 비난하고 영암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학생이 영암 사람이 힘들게 마련한 장학금을 받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다 할 것이다. 부모 피땀으로 생활하면서 남들 앞에서 부모를 외면하는 자식은 설사 지구를 구한다하더라도 우리들이 원하는 인간은 단연코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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