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배/  ​​​​덕진면 노송리 출생/ ​​​​전 초등학교장/전 EBS 교육방송교재 집필위원/수원지방법원 조정위원        
신용배/  ​​​​덕진면 노송리 출생/ ​​​​전 초등학교장/전 EBS 교육방송교재 집필위원/수원지방법원 조정위원        

새로운 해를 맞는다. 사람마다 소원하는 목표들이 있고, 살아가는 철학을 얘기한다. 이러한 삶의 지표는 혹자에겐 한 해를 시작하는 각오일 수도 있겠지만, 세월의 풍상운우를 겪어온 사람들에겐 스스로 자각하고 깊이 터득한 좌우명일 수도 있다. 

언제 무심한 세월이 이리 흘렀나. 공자가 “마음이 하고 싶은 바를 따라 해도 결코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종심(從心)의 나이를 훨씬 더 지난 후에야 세월이 보이고, 그리고 흐름도 느낀다. 이때야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이며 여생을 보람차게 보낼 수가 있을 것인지로 밤이면 잠을 설치곤 했던 어느 날, 효의 대명사인 증자(曾子)의 중용사상에 접하다 번쩍 뇌를 때리는 짧은 글귀 하나가 가슴 깊숙이 박혀왔다. 

曾子 曰, “戒之戒之, 出乎爾者, 反乎爾者也” 증자가 말하기를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 너에게서 나간 것은 다시 너에게로 돌아오느니라.” 요약하여 “出爾反爾”다. 우리에게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과응보’와도 같은 맥락으로, 누구나가 바라는 좋은 일이나 행복도, 또한 아무도 바라지 않는 나쁜 일이나 불행도 사실은 모두가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 귀결된다는 뜻일 거다. 물론 중국의 고사에 나오는 말이다. 전국시대 적국과의 일전에서 크게 패한 왕이 자신의 실정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이, 그저 백성들이 죽을힘을 다해 싸우려 하지 않았음을 탓하는 왕에게 맹자가 왕의 잘못을 간언하는 말이다. 즉, 백성들이 결사적으로 싸우지 아니한 까닭은 바로 어질지 못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지 못한 왕인 당신에게 그 책임이 있음을 일깨우려 했다. 

평생 아이들과 함께하다 교단에서 퇴임한 지도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다행히 현직에 있을 때부터 각급 학교를 다니면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부모와 자녀 간의 바람직하고 즐거운 대화에 대해 강의를 해 왔다. 우리네 살아가는 모든 삶의 바탕이나 인간관계의 시작과 끝은 바로 말하고 듣는 것이 아니던가. 어떻게 보면 부모와 자식 간 특히 엄마와 자녀 간의 관계에서도 그 성패 여부 또한 진실한 ‘대화’임이 자명하다.

대부분의 강의가 학교라서 대상은 학부모들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요구하는 강의 주제 또한 초·중등 모두가 대동소이하다. 그중에서도 고등학생을 둔 학부모들의 고민이나 애로사항은 더 절박하고, 그렇다고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묘안이 없다는 현실은 어쩌면 자식 기르면서 부딪히는 큰 난관임은 모든 학부모의 최대 고민거리다.

코로나라는 이변이 있기 전 어느 사립고등학교에서 만났던 학부모들과의 대담이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되는 강의 중 하나다. 그 학교는 도내에서도 한쪽 손가락 안에 드는 이름있는 학교라서 준비도 나름대로 많이 했다. 대강당 안에 앉아있는 학부모들을 언뜻 헤아려도 2백여 명은 넘어 보였다. 물론 대부분이 엄마들이다. “부모와 자녀!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두 시간의 강의가 끝나고 십여 분간의 차 마시는 시간이 지나면 학부모들의 질의에 응답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시간의 열정은 어느 학교나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고등학생을 둔 부모의 사연들은 애절함과 긴박함이 넘친다. 일반적으로 이해가 되고 그냥 참고 있으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어린 사연들은 아예 얘깃거리가 되질 않는다. 무슨 하고픈 말들이 그리도 많은 것인지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때마다 우리나라의 부모 특히 엄마의 대단함과 위대함을 절감하곤 한다. 

학부모들이 하소연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공부와 관련되는 내용이 대다수이지만, 삐뚤어진 성격이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에 대한 것들도 결코 만만치 않은 가슴앓이 들이다. 이런 모든 것들을 지켜보는 부모들의 가장 큰 걱정은, ‘내 아이가 커서 뭐가 될까?’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절망과, ‘이 어려운 세상을 어떻게 헤쳐갈 수는 있을까?’라며 행여 모든 걸 일찍이 포기해버리면 어찌하나 라는 불안에서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곤 한다. 이번 사립고등학교의 강의에서 학부모들의 관심과 걱정은 유독 더 심한 편이었다. 소위 일류라 하는 학교 학부모들의 공통된 악몽이기도 하다. 강의의 결론을 맺어야 할 때가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강사의 임무가 속 시원한 해결은 아니라 할지라도 일말의 빛이 보이는 가닥은 안겨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난 강당 안에 앉아있는 맨 위쪽에서부터 바로 내 앞의 학부모들까지 천천히 눈을 맞추며 바라보았다. 소란 벅적하던 강당 안이 갑자기 조용해지면 저 강사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숨을 죽이고 집중케 된다.

“학부모님 여러분! 열심히들 살고 있지요?” 처음엔 무슨 말인가 이해를 못 해 별로 반응이 시원치 않는다. 더 큰 소리로 힘주어 말한다. “다시 묻겠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 앞에 절대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계신가요?” 모두가 그렇다고 대답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다. “그렇다면 걱정들을 마세요.” “여러분들이 지금처럼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면 그 보답은 반드시 헛되지 않게 다시 여러분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자식들이 일탈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하는 상황에서 어느 부모인들 앞이 캄캄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자녀가 어느 사이 바르게 되돌아오는 것도 바로 그 자신이다. 그 누구도 잡아 돌리지 못한다. 이때 어떤 힘이 다시 돌아오게 한 것일까. 그건 부모의 바른 삶이다. 부모의 정직한 생각과 행동을 보면서 자라온 자녀들이라면, 반드시 정신을 차리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전보다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게 되어 있음은, 40년이 넘도록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학생의 장래를 보아오면서 체감하고 터득한 불변의 진리다. 

“누구를 탓하랴. 다 내가 잘못 기른 탓인걸….” 웃어른들은 자식들이 원망스러운 행동을 할 때면 자기 잘못이라며 반성을 하곤 했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자신이 뿌린 씨앗 그대로 거두게 되는 진실을 터득한 “출이반이”가 아니던가.

검은 토끼해 계묘년(癸卯年)을 맞아 호남의 영산인 월출산의 정기 가득한 우리 고향 영암! 그 안에서 함께 숨 쉬는 여러분께, 삼가 인사 올립니다. 내가 남을 귀중히 대하고 예를 다해 언행을 하면 그만큼 나도 대접을 받지만 그렇지 못하면 결국은 나 자신도 불행해질 수 있음을 경계하고 또 경계하면서, “새해엔 하루하루가 즐겁고, 모든 소망 다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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