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벚꽃 백 리 길(64)
■ 도갑리1구 죽정마을(8)

 중층의 대웅보전  / 도갑사는 통일신라말 도선국사(826~898)가 헌강왕 6년(880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져오고 있다. 1977년 화재로 대웅보전이 소실된 이후 단층이었던 대웅보전은 중층으로 복원됐다.
 중층의 대웅보전  / 도갑사는 통일신라말 도선국사(826~898)가 헌강왕 6년(880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져오고 있다. 1977년 화재로 대웅보전이 소실된 이후 단층이었던 대웅보전은 중층으로 복원됐다.

월출산 도갑사

군서면 도갑사로 306 주소지에는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79호인 도갑사가 자리하고 있다. 일주문 못미처 왼쪽에 도갑사 해설판이 세워져 있다. 

“도갑사는 통일신라말 도선국사(826~898)가 헌강왕 6년(880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져오고 있으며, 1999년 대웅전 뒤편 건물지 발굴조사에서 백제시대 기와편이 출토되어 통일신라 시대 이전에 이미 사찰이 있었음을 추정하고 있다. 

도갑사가 크게 번창한 때는 조선시대 초기이다. 이곳 영암 출신인 수미왕사가 1457년부터 1464년까지(세조3~10년) 대대적으로 중창했는데, 당시 건물 규모가 966칸에 달하는 대가람을 이루었고 소속된 암자가 12곳, 도갑사에 머무르며 수행하는 승려가 780명에 이를 정도로 번창해 오다가 1597년 정유재란으로 많은 문화재가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으나 전란 이후 다시 부흥하기 시작하여 17세기 후반까지 계속되었다. 그 뒤 영조 52년(1776년)과 헌종 원년(1835년)에도 일부 중창이 있었다.

근래에 도갑사는 한국전쟁(1950년)과 화재 등으로 많은 가람이 소실되었으나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실시한 네 차례 발굴조사에서 옛 가람 배치를 확인하고 복원 불사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경내에는 도갑사 해탈문(국보 제50호) 등 국가지정 문화재 5점과 도갑사 석조(유형문화재 제150호)등 전라남도 지정문화재 5점이 있다.

또한 전체가 전라남도 기념물 제3호인 월출산은 빼어난 산세와 절묘한 기암절벽, 아름다운 풍광으로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운다. 통일신라 때는 ‘월나악’(月奈岳),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에 월출산이라 이름하여 오늘에 이른다. 구정봉 정상 바로 아래에는 국보 제144호인 마애여래좌상과 보물 제1283호인 용암사지 3층 석탑이 있고, 용추폭포, 구절폭포, 금릉경포대 등이 장관을 이룬다.”

수미대사와 도갑사 중창

도갑사 수미왕사비(守眉王師碑,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52호)에 의하면 수미왕사는 조선 세조 때의 승려로 13세에 출가하여 도갑사, 법주사 등으로 돌아다니며 경전 공부를 하다가 다시 도갑사로 들어와 황폐한 절을 중창하였고, 불경언해기구인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불경을 번역하는 일을 했다. 세조는 그에게 묘각(妙覺)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왕사로 책봉하였다고 한다.

수미왕사는 1457년(세조 3)부터 1464년(세조 10)까지 약 7년 여에 걸쳐 황폐해진 도갑사를 복구하였다. 도갑사 묘각 화상비(道岬寺妙覺和尙碑)에 의하면 세조가 직접 그의 문도인 홍월(洪月)로 하여금 복구공사를 맡아 하도록 하명하였으며, 영응대군(永膺大君)이 단월이 되어 약사 여래상 3구를 만들어 봉안하였다. 중창 이후 건물이 966간에 소속 암자만도 12개소에 달했으며, 당시 주석한 승려 수는 73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후 세조는 수미를 왕사로 책봉하였다. 이를 통해 도갑사가 세조와 수미의 관계를 바탕으로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 일신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도갑사 사적’에 따르면 1555년(명종 10)에 왜구의 침입으로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저절로 불이 꺼지는 이적이 있었다고 한다. 정유재란(1597~1598) 당시에도 왜적들의 전화를 면하였다고 한다. 이후 광해군에서 헌종 때까지 여러 전각과 다리, 당간 지주 등을 새로 만들거나 중수하는 크고 작은 불사가 이어지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17세기 후반까지 그 사세가 비교적 융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1776년(영조 52)에는 연담(蓮潭) 유일(有一)이 머물면서 ‘석전유해’釋典類解)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화재로 소실된 대웅보전 

1977년 화재로 대웅보전이 소실되면서 전반적인 경내 보수·정비가 시작되었다. 1981년 대웅보전 복원을 시작으로 1986년 미륵전 중수, 1988년 범종 조성, 1995년 해탈문 수리·보수 등이 이루어졌다. 또 4차에 걸친 유적지 발굴조사와 더불어 2006년에는 도선국사 문헌조사 사업이 추진되는 등 현재까지도 사역 정비와 문화재 보수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산내 암자로는 상견성암(上見性庵)과 동암(東庵)이 있다. 

도갑사 관련 문화재 현황 

도갑사 경내에 위치한 문화재로서 국보 제50호 영암 도갑사 해탈문과 여기에 봉안되어 있는 보물 제1134호 영암 도갑사 목조·문수 보현동자상(文殊·普賢童子像), 보물 제89호 영암 도갑사 석조 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이 있다. 또한 보물 제1395호 영암 도갑사 도선 국사·수미 선사비(靈巖道岬寺道詵國師·守眉禪師碑), 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150호 도갑사 석조(道岬寺石槽), 보물 제1433호 영암 도갑사 오층 석탑(靈巖道岬寺五層石塔), 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152호 도갑사 수미 왕사비(道岬寺守眉王師碑) 등이 있다. 

도갑사 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는 회화·공예품으로 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176호 도선국사 진영,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77호 수미왕사 진영을 비롯하여 도선국사 직인통 5점, 미륵전 중수서 현판 1점, 종 1점, 청동 소탑 조각 2점 등이 있다. 서지·전적류에는 ‘도선 비결’, ‘도선국사실록’ 2권, ‘도선 답산기’, ‘영암지’, 도갑사 소장 목판다라니경, 스리랑카 미얀마 패엽경 2점이 소장되어 있다. 이 밖에도 도갑사에는 기와, 자기, 현판 등 다양한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참고문헌: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김창오(월인당 농촌유학센터장)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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