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행  /영암지역자활센터 센터장/동아보건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영암군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전라남도교육청 교육참여위원장
이삼행  /영암지역자활센터 센터장/동아보건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영암군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전라남도교육청 교육참여위원장

몰라서, 까다로워서 못 받는다

지난 8월 수원시 세 모녀 자살 사건으로 온 사회가 떠들썩했다. 아버지는 사업부도 후 빚만 남기도 사망했고, 장남은 희귀병으로 3년 전 사망했다. 엄마는 난소암으로, 두 딸은 희귀난치병과 정신질환으로 힘든 생활을 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주소지와 주거지가 달라서 행정기관에서는 파악하지 못했고, 이웃들은 그 가족이 살고 있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왜 이런 안타까운 사건들이 자주 발생하는 것인가? 언론들이 연일 보도하며 가슴 아픈 소식을 전하는데 그 누구도 책임지는 자가 없다. 정부는 “지금의 복지시스템이 잘 작동되도록 하겠다. 더욱 더 노력해서 예방하겠다”고 한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위기 가구 발굴과 예방을 위한 법을 위반한 사람이나 조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복지제도는 본인이 직접 복지서비스를 신청해야만 복지혜택을 보는 신청주의이다. 이 가족은 복지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았다. 몇 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2014년 서울 송파구 세 모녀도 전 재산 70만 원을 남기고 자살했다.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사건 이후 긴급복지지원법이 만들어져 지자체가 위기사항을 판단하고 위기가구를 적극 발굴하여 지원토록 했다. 그 당시에도 위기발굴 시스템을 구축하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에 힘쓰겠다”라고 했으나 사정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정부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시스템은 단전, 단수, 단가스, 건보료 체납, 기초생활수급 탈락, 복지시설 퇴소, 금융연체, 국민연금 보험료 체납 등 34종의 위기정보를 수집·분석해 복지 사각지대 가구를 예측하고 고위험군(상위 2∼3%)을 선별해 지자체에 통보한다. 고위험군과 전체 위기정보 입수자 명단도 지자체에 제공하는데 이는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사각지대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차원이다. 2022년 기준으로 전체 위기정보 입수자는 544만1천명이나 된다. 현실적으로 지금의 복지체계로는 조사·상담 등 즉각적인 대응이 불가능하다. 
 
아는 사람만 받을 수 있는 제도

복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안타까운 소식을 접할 때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많은데 왜 도움을 받지 못했을까?’이다. 수원 세 모녀가 건강보험료를 못 낼 정도로 생계가 어려웠다면, 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3인 가구, 월 125만 원 정도) 받을 수 있고, 의료급여 대상으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도 있고, 장애인등록도 하여 보호받을 수 있다. 복지 신청주의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복지제도를 알아보고 신청해야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까다로운 조건 등으로 복지대상자들이 신청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관련 제도를 모르는 대상자도 대부분이다. 신청주의는 결국 '아는 사람만 받을 수 있는 복지제도'라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수원 세 모녀는 정부의 빅데이터를 활용한 복지 사각지대 발굴 체계상 ‘건강보험료 연체’ 보유자였다. 각종 복지혜택 대상이었으나 복지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았고, 실제 주거지가 주소 등록지와 달라 복지서비스에서 완전히 소외돼 있었다.

신청주의는 복지대상자를 선별하고 제한하여 최소로 줘야 한다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본인 신청주의이기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복지 사각지대 관리, 예방문제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회안전망 구축, 발굴주의로 전환해야

수원 세 모녀는 빚 독촉에 쫓겨 외부 노출을 극히 꺼린 것으로 짐작된다. 긴급하게 긴급복지지원을 신청해 생계지원금이나 법정 장애인등록, 의료비 지원을 일시적으로 받을 수 있었으나 이들은 이런 복지제도 이용을 위한 상담이나 신청을 한 이력이 없다. 수원시 관할지역 복지공무원이나 복지종사자들은 더 특별히 마음이 아플 것이다. 좀더 노력했으면 예방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자책감도 들 것이다. 하지만 관할 복지공무원과 복지종사자들만의 힘으로 불가능하다. 

신청주의의 문제점 해결방안은 정부가 복지위기 가구 적극 발굴·지원하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다. 본인이 신청하면 그때부터 지원책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상자를 찾아 나서는 ‘발굴주의’로 자세 전환이 필요하다. 노인맞춤형 돌봄 사업처럼 위기대상 가구를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정부는 인력을 확충하고 예산을 배정해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신청주의를 발굴주의로 전환하고 사회 관계망,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선제적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대상자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 위기가구 관리 제도를 정비하고, 통장·이장들의 활동비 지급을 통한 역할을 확대하며 자원봉사자 활용 등 다각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실직이나 질환으로 가난에 빠진 사람들, 갑작스런 질병으로 병원비가 필요한 사람들, 장애 등으로 미약한 노동력이지만 일하고 싶은 사람들, 이제는 정부와 지역사회가 공적인 사회안전망을 만들어 이들에게 희망의 손길을 적극적으로 내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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