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천읍성은 당진의 역사적 기반이고 정체성을 상징하는 유적으로 맹사성, 연암 박지원 등 수많은 위인과 인물들이 왕래하였던 역사적 현장으로써 역사교육, 문화관광자원으로도 가치가 매우 뛰어난 읍성이다.

당진시는 2007년부터 현재까지 면천읍성의 복원정비를 추진하고 있으며 서벽과 서남치성, 남문 일원과 성안마을 1차 사업을 추진했고 2020년부터 충청유교문화권 사업을 연계하고 있다. 10여년 이상 오랜 시간을 들여 복원과 정비가 되고 있지만 역사적, 고고학적 발굴과 고증을 거치는 과정으로 신중하게 복원과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면천읍성은 과거 경기지역과 충청, 전라 지역을 잇는 해상교통의 거점이었으며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면천군이라는 지역의 읍치로서 고려 이래로 오랜 시간동안 이 지역의 중심지였다. 세종 시대에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세워졌으며 시간이 가면서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많이 훼손됐지만 비교적 그 형태가 잘 남아 있어 1993년 충남도 기념물 제91호로 지정되어 보존됐다.  

조선시대 면천읍성은 성 내에 관아와 객사, 내아를 비롯한 부속건물, 장청과 향청, 이러한 관리와 이속들이 거주하는 소수의 민가 등이 있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시기 인근의 승전목 전투에서 패배한 관군과 일본군을 추격해 면천읍성에 동학군이 입성했다. 최구현 의병장이 활약한 것으로 알려진 면천읍성 전투(1906년 5월 10일)에서는 의병과 일본군과의 전투가 이뤄지기도 하는 등 크고 작은 사건을 거치면서 근대 이래로 면천읍성은 빠르게 쇠락했다. 

일제강점기에는 1910년 조선총독부의 ‘읍성철거령’이 시행되면서 우리나라 대부분의 읍성은 파괴됐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면천군은 면천면으로 변경돼 당진군에 편입됐고 면천읍성의 쇠락은 더욱 빠르게 진행됐다. 관아는 면천면사무소로, 객사는 1911년부터 면천공립보통학교로 활용되었으며 일부 관아시설은 철거돼 인근 지역의 개인 가옥의 부재로 활용됐다. 면천초등학교 역시 객사 건물을 교실과 교무실로 활용했고 이후 30년대 서익사를 허문 후 1972년 교사를 콘크리트로 개축하면서 나머지 정청과 동익사가 사라져버렸다.

면청읍성 복원과 정비

면천읍성의 복원과 정비는 1999년 정밀지표조사가 이뤄지면서 본격화되고 당시 읍성의 대략적인 형태와 구조, 읍성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문화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로, 복원정비의 필요성을 부각됐고 정비복원의 기본계획이 2007년 마련됐다.   

복원이 시작된 곳은 풍악루와 면천읍성 서문을 중심으로 한 일부의 서벽구간이었으며 당시 문화재복원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전담인력 등의 체계가 마련되지 않아 서벽 및 풍악루의 복원은 실제와 차이가 있어 논란이 됐다. 이후 성내의 시설과 유적의 현황을 조사하고 다양한 국내 사례를 검토한 결과로 당시 읍성 내부 전체의 민가를 이주시키는 방안과 부분적으로 읍성 내에 민가를 존치시키고 일부 복원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그 결과 경제적인 여건과 면천면의 중심이라는 현실적인 측면에서 읍성 내외의 사유지와 건물은 선별 매입 후 정비라는 기본방향을 확정했다. 읍성 내의 성곽과 성문, 옹성 및 치 등을 복원하고, 안샘과 군자정, 주변을 정비하며, 유적과 직접 관련이 없는 지역을 교육시설, 휴게시설 등으로 개발하는 정비방안을 설정했다. 이러한 2007년의 기본계획은 현재까지 큰 틀에서 기조를 유지하면서 읍성의 복원정비에 중요한 지침이자 방향으로 기능했다.

2011년 충남역사문화원과 함께 ‘면천읍성 연구’를 발간하고 읍성의 복원정비에 대한 학술적 기반을 조성했다.  

읍성 복원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추진된 사업은 읍성의 정문이었던 남문의 복원사업이었다. 당시 읍성의 남문은 옹성을 포함해 많은 부분이 원형의 형태대로 남아 있었지만, 옹성에 건물을 기대어 건립하는 등 훼손이 있었다. 건물의 보상과 이전, 남문 유적의 해체 복원을 통해 2014년 남문의 복원이 완료됐다.  

아울러 면천군수를 지냈던 연암 박지원과 연계한 콘텐츠인 여민동락역사누리사업으로 2015년 충청유교문화권 광역관광개발사업에 선정되고 2019년 5월 문화체육관광부의 사업계획 변경승인을 받아 2020년부터 약 188억 원의 사업비를 확보했다. 사업비로 성안의 관아와 객사, 성안마을, 골정지, 주차장 및 기반시설을 조성할 수 있었다. 

현재 당진시는 면천읍성의 체계적인 정비와 복원을 위해 지난 2007년 기본계획 수립을 시작으로 2024년까지 18년간 총 334억 원을 투자해 복원을 진행하고 있다. 

읍성 활용 프로그램

면천읍성을 활용한 프로그램은 2019년부터 시작됐는데 하나는 읍성 안 작은 미술관, 서점, 주민자치조직 등 민간에서 진행하는 것이다. 미술관이나 서점은 하나의 문화공간으로서 일부 예산을 시에서 지원받거나 자부담으로 체험 프로그램, 성인들을 위한 교양강좌 등을 운영하고 있다. 주민자치조직에서도 매년 4월 개최하는 ‘면천진달래축제’와 함께 읍성 내에서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역량 강화, 읍성 해설사 양성, 초가지붕 이엉 잇기 등을 운영하고 있다. 

당진시에서는 충남문화재단과 함께하는 공연 및 체험행사 ‘고래마켓’, 문화재청 공모사업인 생생문화재 사업 ‘면천읍성 360도 투어’를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고 연암 박지원을 소재로 한 ‘아기자기 면천’ 등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다. 면천읍성 투어 프로그램은 2021년 문화재 청장상을 수상했다.

객사 원형 정비와 역사성 회복

2012년 사업을 시작한 면천읍성 객사 정비사업이 2022년 6월 16일 드디어 현판식(조종관)을 갖고 사업을 완료됐다. 10여 년의 정비과정은 사라진 객사의 흔적을 원형으로 정비하고 고증하여 역사성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당진시 관계자는 “조선 왕조가 전국의 읍치를 조성하는 데도 유교적 계획규범을 통해 주례 고공기의 좌묘우사를 표본 모델화해 동쪽엔 객사(종묘기능)와 서쪽에는 사직단을 세워 위로는 나라에 충성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정책을 가장 우선시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객사는 크게 중앙에 정청과 좌우에 객사를 두는데 정청은 살아있는 임금의 궐패를 모시는 곳이고 동익사는 문관의 중앙관리, 서익사는 무관의 중앙관리가 방문하였을 때 거처하는 곳이다. 면천읍성 객사는 문헌상으로 1433년(세종15)에 건립되었으나 그 후 다섯 차례 중수를 거쳐 1622년(현종3) 또다시 중수되고 그 규모가 18세기를 지나 19세기 후반까지 일관성 있게 유지됐다”고 말했다.

당진시는 객사는 읍성의 관아 중 위계가 가장 높은 건물로 면천읍성 정비사업의 핵심과제로 지정하고 많은 시간 동안 각 분야 전문가의 고증과 자문을 거쳐 객사의 원형성 확보에 문화재 행정력을 기울였다. 또한 객사 정비사업과 병행해 박지원(연암) 군수 스토리 발굴사업과 구한말 박시순 군수의 면불일기를 번역했는데 여기에는 객사와 관련된 다양한 스토리가 담겨있다. 이러한 역사문화 자원을 활용하여 여러 군수가 여민동락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아내 면천읍성의 역사성 회복은 물론 관광자원으로의 활용도 가능케 하고 있다. 

문배근ㆍ김진혁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