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순철 / 군서면 모정리 출생 /전 현대택배(주) 전무이사 / 전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 심사위원
신순철 / 군서면 모정리 출생 /전 현대택배(주) 전무이사 / 전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 심사위원

필자가 태어난 마을 모정리에는 아랫마을 끝자락에 원풍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언덕 위 숲속 사방이 확 트인 자리에 정자가 서 있고 그 옆에 방죽(저수지) 물결이 사시사철 출렁대며 큰 호수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초여름에 만발하는 연분홍 연꽃은 방죽 한쪽을 화려하게 뒤덮어 이웃마을 구경꾼들이 몰려오기도 했다. 칠팔월 불볕더위를 피해 마을 사람들이 주야로 모이는 쉼터가 되어주고 농사철에는 서로 간에 농사 정보를 교환하며 크고 작은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는 소통의 광장이기도 했다. 들녘의 벼가 한창 자라고 있을 때는 벼 사이를 헤짚고 다니며 잡초를 뽑아주는 힘든 김메기를 하기 위해 농사꾼들이 점심 식사후 더위를 피해 단체로 취침하고 쉬고 나서 오후 일터로 출발하는 곳이었다.

찜통더위가 계속되는 밤이면 필자도 깔자리와 홑이불을 들고 아버지를 따라 종종 원풍정으로 갔다. 여름날 밤 유난히 하늘은 맑은데 푸른 별빛사이로 반딧불이 날아다니고 넓은 들녘을 스쳐 가는 바람은 시원했다. 이웃집 아저씨들이 마룻바닥에 빙 둘러 누워서 잠들기 전에 웃동네 처녀총각 이야기, 멀리 떠나간 이웃들의 이야기, 아들딸 자랑하다가 가끔은 우리 또래 애들에게 노래를 부르게도 하셨다. 음치에 가까운 필자는 도망치듯이 일어나 큰 소나무 아래 숲속으로 들어가 한참 숨어 있다가 모기한테 물려 며칠씩 가려워 고생하기도 했다. 

원풍정 옆 방죽(저수지)에는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여름철 폭우라도 쏟아져 원풍정 앞에 설치해둔 콘크리트 양수시설에 물이 넘쳐 흘러내리면 동네 청년들이 흐르는 물 길목에 대발과 그물을 받쳐두고 떠내려가는 물고기를 큰 양동이에 가득 잡아 구경나온 마을 사람들에게 서너 마리씩 나누어 주기도 했다.

추석 명절 밝은 달이 두둥실 떠오르는 밤이면 원풍정에 우리 또래들이 삼삼오오 모여 함께 노래도 부르고 숨바꼭질도 하다가 강강술래하던 누나들 사이를 오가며 훼방 놓고 즐거워했던 어린 시절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떠오른다. 들녘의 곡식들이 영글어가는 가을이 되면 할아버지를 따라 들 논에 새를 쫓으며 메뚜기를 한 묶음 잡고 원풍정에 들러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이야기도 들었다. 할아버지(농은, 신흥균) 작품의 싯귀를 읽어 주시며 기둥 상판 끝자락마다 걸려있는 많은 분들의 싯귀도 해설해주셨다. 지금도 기둥 상판 끝자락마다 편액들이 비바람찬 오랜 세월을 이겨내고 잘 보존되어 있다. 원풍정 창건 당시 지형의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하고 해마다 풍년을 기원하며 마을의 무궁한 번영을 바라는 주민들의 뜻을 모아 정성껏 갹출하여 터를 닦고 세운 정자라고 하셨다.

이곳을 멀리서 찾아온 문객들이 원풍정에서 바라본 월출산 천왕봉 구름 위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의 눈부신 장관,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황금 들녁과 모정방죽(저수지) 위로 비추는 은은한 달빛은 참으로 신비롭고 아름다운 선경이라고 칭송한 시인들이 많다.

20여 년 전에 젊은 청년들이 모두 도시로 진출하고 있을 때 서울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특출한 후배 월인당(김창호) 원장은 고향을 사랑하는 열정과 피나는 노력으로 모정마을 구석구석을 새롭게 고치고 전통과 문화가 숨 쉬는 행복마을로 조성했다. 2018년에는 전국 3천200여 개 행복마을 콘테스트에서 문화복지마을 은상(2등)을 수상하는 등 우리 영암공동체에서 전국적으로 우수한 마을로 선정된 영광을 얻었다. 모정마을 주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행복마을 숲 조성, 수변 산책로 조성, 특히 원풍정을 대폭 수리하고 복원시켜 원풍정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모정마을의 보배들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관광자원으로 키워냈다. 모정마을을 이토록 아름답게 변화시키고 꿈으로 키워낸 젊은 후배와 함께 협력하고 후원해 주신 고향마을 모든 분들께 감사와 경의를 드린다.

우리나라 농어촌 모든 지방 자치단체들이 급격히 쇠락해 가고 있는 농어촌 재건을 위해 귀농귀촌,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제도와 정책들을 펼쳐가고 있는 이때, 우리 영암 고을의 모정마을이 새로운 희망의 불꽃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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