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 중  전 전교조 영암지회장 전 전교조 전남지부장 전남교육연구소 이사장 현 영암전자과학고 교사
김 기 중  전 전교조 영암지회장 전 전교조 전남지부장 전남교육연구소 이사장 현 영암전자과학고 교사

역사는 세대 대항 이어달리기다. 각 주자들의 손에는 이전 세대에게서 전달받은 바통이 쥐어져 있다. 그 바통에는 저마다 ‘행복나라’로 가는 네비게이션이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네비게이션이 일러주는 코스는 제각각 다르다. 이전 아니 그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업그레이드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시대 주자들이지만 서로 다른 코스를 달리기도 한다. 다만 엄연히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자기네끼리만 ‘행복나라’로 가기 위해 다른 주자들이 가는 길을 막아서거나 파괴하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모두 함께 잘 사는 나라로 가는 길을 택해야 한다. 설령 네비게이션이 일러주는 길을 따라왔다 해도 다른 주자들의 항의나 이의제기를 받게 되면 즉시 사과하고 궤도를 수정할 것 등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룰(rule)에 따라 공정하게 경기를 진행하는 심판진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대다수 참가자들의 합의에 따라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2022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광복절이고 일본은 태평양전쟁 종전기념일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일 관계가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양국의 미래와 시대적 사명을 향해 나아갈 때 과거사 문제도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구상 특별한 하자가 없는 워딩(wording)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현 일본 정부와 역사학계가 을묘왜변과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민족말살정책과 태평양전쟁 강제 동원이라는 잘못된 바통과 네비게이션을 당당하게 고집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자주와 통일의 길을 끊임없이 가로막고 파괴하면서 자신들의 잘못된 길에 복무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그 무기가 바로 식민사관이며, 이는 우리 역사학계에서도 교묘하게 둔갑하여 행세하고 있다. 이를 청산하고 ‘한일 관계가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바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이고 진심 어린 사과와 이에 합당한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 

확실한 심판이 따로 없는 국제사회 외교 무대에서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인 대한민국 대통령은 국내·외 시민사회의 과거 일본 만행에 대한 비판 여론에 힘입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기회 있을 때마다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 그들이 당장 귀담아 듣지 않더라도 피해 당사자인 우리 입장에서는 일관된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야 한다. 그래야만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라는 저들의 그릇된 인식에 파열구를 내고 모든 양심 세력을 끌어모을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억울하게 희생된 이전, 그 이전 세대들이 힘겹게 전해 준 바통을 올바로 계승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사과 요구 없는 협력 운운은 일본 정부와 한일 극우 세력의 기를 살려줄 뿐만 아니라 바통을 이어받을 세대에게 잘못된 역사관만을 심어줄 것이다. 대통령 경축사를 했던 바로 그 시각에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合祀)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일본의 기시다 총리가 공물을 바치고 주요 각료들이 참배했으며 욱일기를 앞세운 극우 세력과 일반인들의 참배 행렬이 이어졌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최근 우리 지역에서 있었던 행사와 소식들이 눈길을 끈다. 먼저 지난 10일 영암교육지원청이 주관한 광복 77주년과 영암성대첩 467주년 기념행사는 차세대 주자들에게 역사적 진실을 알리고 이를 통해 올바른 네비게이션이 장착된 바통을 물려준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우리 민족 항일운동의 뿌리를 1555년 을묘왜변 당시 영암성대첩에서 찾았으며, 특히 우리 영암 고을이 최초의 의병장 양달사 장군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왜구의 침략을 물리쳤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일깨워주었다는 소식에 가슴 뿌듯하다. 식민사관의 악영향으로 알게 모르게 깊숙이 뿌리 내린 친일 인사들과 그들의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배제시키고 그 자리에 항일 독립투사들을 모셔다 놓는 작업이야말로 양달사 장군의 얼을 제대로 계승하는 일이라 하겠다. 

그런가 하면 이번 영보마을 독립유공자 여섯 분의 추가 서훈은 일제의 국권 침탈 당시 금정면 국사봉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영암의병’의 투쟁과 정신을 제대로 계승하는 동시에 메이데이(노동절) 행사를 계기로 일제의 수탈과 착취에 맞선 농민·노동운동이 이념이나 사상의 한계를 깨고 보편적인 항일 자주독립 운동으로 제대로 평가받았다는 점에서 함께 축하해야 할 일이다. ‘형제봉’이라는 지명이 말해주듯 이제는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과정에서 쓰라리게 경험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한 형제가 되어 보듬어 안아야 한다. 고대부터 6세기까지 존속한 마한 공동체의 평화와 연대, 상생의 숨결이 가득 서린 우리 영암 공동체부터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장(場)으로서 서로의 아픔을 치유하고 완전한 자주 평화 통일로 함께 나아가기 위한 ‘역사축제’를 열어갔으면 좋겠다. 시종에서는 마한문화 계승 축제를, 읍성 달맞이공원에서는 영암성 승전 기념 달빛 축제를, 그리고 형제봉과 영보정에서는 항일독립 정신 고취를 위한 확대 풍향제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