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손된 김해 구산동 지석묘 / 가야유산 복원정비 과정에 받침돌이 훼손된 김해 구산동 지석묘. 고고학적 자료는 그 자체가 곧 보물이다.    
훼손된 김해 구산동 지석묘 / 가야유산 복원정비 과정에 받침돌이 훼손된 김해 구산동 지석묘. 고고학적 자료는 그 자체가 곧 보물이다.    

나주-영암을 잇는 역사관광 벨트

얼마 전 민선 8기 영암군 행정이 시작되는 시점에 영암의 미래발전 전략수립과 관련하여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이 가운데 마한이 지역관광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응답은 단 1명으로 분석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너무 미미하다. 본보에서 만 5년 동안 귀한 지면을 할애하여 마한 역사를 중심으로 영산강 유역 고대사의 이모저모를 다룬 것에 비하면 여론조사 결과는 너무 가혹하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결과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전국 유일의 마한역사문화공원이 덩그러니 있을 뿐 영암의 마한을 중심으로 고대 역사문화자원을 지역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는 본격적인 논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란 및 사설을 통해 여러 차례 언급됐지만 영암에서 출토된 수많은 마한 시기의 유물들을 전시할 공간하나 없는데 어떻게 마한유산이 관광자원이 될 수 있겠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전국 유일의 마한역사문화공원이 시종의 거대한 고분들이 밀집된 고분군과 마한 국제항의 상징이자 해양신앙의 상징인 남해신사가 있는 곳에 조성되어 있다. 이 공원을 일본의 요시노가리 공원처럼 만들어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가 주목하는 반남에 있는 국립나주박물관과 반남고분군-시종 고분군–구림 상대포를 잇는 역사관광 벨트를 구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마한사를 공부하면서 필자는 항상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한의 역사적 위치 설정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이다, 곧 지금껏 4세기 후반에 백제에 멸망된 역사로, 또는 백제에 밀려 영산강 유역에 왜소한 상태로 있는 마한인지, 아니면 필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반남·시종, 해남반도를 중심으로 마한의 강국이 마한 역사의 정체성을 지니며 한국 고대사의 원류로 자리잡고 있는지 하는 것이다. 필자의 주장은 기존의 마한사 인식과는 차이가 있어 관심을 끌었다. 특히 마한사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은 필자의 얘기를 듣고 싶어 1년이면 수십여 차례 마한 특강을 하며 필자의 주장을 얘기하곤 한다, 물론 필자의 주장이 옳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문헌사와 고고학적 성과를 결합하여 보면 필자의 해석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믿는다.
 
고대사는 원형 보존이 중요

필자는 시종을 중심으로 하는 영암이 나주 반남과 더불어 마한 역사의 중심지이자 마한문화의 원류임을 여러 차례 강조하였다. 특히 영암군의 도움을 받아 이를 입증하려는 학술세미나도 하여 마한이 지닌 역사성을 전남의 다른 지역은 물론 심지어 서울에서도 관심을 갖게 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믿는다. 이것은 곧 영암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바탕 위에 마한 유산을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체성이 흔들려 혼돈상태에 빠질 수 있다. 

전북을 예로 들어보려 한다. 익산은 누가 뭐라 해도 마한의 중심부의 하나이다. 하지만 익산은 부여·공주를 포함한 백제문화권이 세계유산에 포함될 때 함께 편입되었다. 곧 마한은 사라지고 백제만 남은 것이다. 1970년대 익산에 있는 원광대학교에 ‘마한백제연구소’가 세워졌다. 이 연구소는 마한사의 정체성보다는 백제의 일부를 구성하는 마한사의 실체를 밝히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하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가야사 복원·정비가 활기를 띠자 전북은 ‘전북 가야사’를 밝히고자 1억여원에 달하는 용역을 발주하는 등 어느 지역보다 활발하게 전북지역에 보이는 가야의 흔적을 찾았다. 이러한 노력이 마침내 남원이 가야 유산의 세계유산 등재에 포함되는 성과로 나타났다. 하지만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잘 알겠지만, 남원을 가야역사에 편입하는 문제는 작년 말 일본서기 내용을 이용하였다 하여 논란이 커지면서 남원시장이 등재 신청을 철회하겠다고 나서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우리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순천 가야사, 고흥 가야사 등의 주장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김대중 정부 때 당시 2천억원에 달하는 국비 지원을 받아 가야사의 역사성을 밝혀 일부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에 비견되는 ‘4국 체제’ 주장이 나왔던 가야사가 이제는 전북·전남까지 아우르는 한반도 남부의 중심국가로 역사에 화려하게(?) 등장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기존 삼국에 가야를 포함한 고대역사자원 특별법을 제정하려다 우여곡절 끝에 마한·탐라까지 포함된 특별법이 제정된 것이다. 그 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주체는 해당 시군 자치단체의 관심과 역량에 달려 있다.

역사문화자원 복원, 정비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선사시대이건, 현대사이건 역사의 기본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는 것이다. 역사를 해당 시대로 들어가 읽을 때 비로소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게 된다. 특히 고고학적 유물을 바탕으로 역사를 살피는 고대사는 원형 보존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한 점에서 고분 발굴 그것을 역사문화자원 복원, 정비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고분을 많이 발굴하기보다는 하나의 고분을 철저히, 꼼꼼히 발굴 조사함으로써 고분이 발산하는 의미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것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역사문화자원 복원 정비를 앞둔 영암군이나, 이미 그러한 사업을 하는 여러 지역에서 참고할 만한 뉴스가 있다.

마한의 정체성 확립이 필요하다 

엊그제 8월 7일 문화재청은 국가사적 지정 신청이 된 세계 최대의 고인돌 유적으로 평가되는 경남 김해시 구산동 지석묘(경남도기념물)가 훼손된 것이 확인되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하였고, 김해시는 해당 유적의 국가사적 신청을 철회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지난 정부의 무리한 가야사 복원 드라이브가 불러온 참사’라고 이야기했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어떤 사연일까? 

구산동 지석묘는 덮개돌의 무게가 350톤, 길이 10m, 묘역 넓이가 1천615㎥에 달하는 대형 유적이다. 사실, 지석묘는 보성강을 유역으로 전남지역이 훨씬 많다. 그런데 경남지역의 지석묘와 전남지역의 지석묘는 규모와 분포 면에서 특징의 차이가 있다. 경남은 구산동 지석묘처럼 규모가 큰 반면 전남은 규모가 적다. 그리고 경남지역은 지석묘가 밀집되어 있다. 곧 정치체의 규모가 큼을 알 수 있다. 변한·진한은 큰 집단과 작은 집단의 규모 차이가 크다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 기록이 유적에서 확인되고 있다. 말하자면, 집단 간의 통합 작업이 용이했다는 얘기이다. 반면 전남의 지석묘 집단은 소규모로 이루어져 있어 집단 사이의 통합이 여의치 않음을 알려준다.

이렇게 구산동 지석묘는 그 지역의 고대사의 실체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유적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번에 김해시가 가야 유산 복원정비작업을 하는 과정에 그 지석묘의 받침돌을 구성하는 바닥 돌을 하나하나 인부들이 빼내 고압 세척하여 표면에 강화 처리한 뒤 다시 그 자리에 박아 놓은 잘못을 범한 것이다. 고고학적 자료는 그 자체가 곧 보물이다. 여기에 인위적으로 손상을 가하면 그 가치는 이미 훼손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대형 사고가 일어난 것은 김대중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 들어 가야역사 문화정비에 엄청난 국비가 투입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1천400억원을 투입해 가야 유적을 복원정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구산동 지석묘를 복원 정비하겠다고 하면서 원형을 훼손하는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영암은 ‘옹관묘의 고장’ ‘고분의 고장’이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마한 시기의 고분이 있다. 하루바삐 전수조사하여 지역의 향토유산으로 지정하여 표지판을 세워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한 유산인지도 모른 채 지역개발 과정에서 사라지고 있는 유적들이 상당하다. 

지난 호에 해남반도의 마한사 복원 정비에 해남군이 적극적이라는 필자의 글을 읽고 전석홍 전 장관께서 전화를 주셨다. 전 장관은 전남·북을 중심으로 충청·경기까지 포함된 마한 전체를 아우르는 인식이 중요함을 이야기해주셨다. 전남도에 마한 연구를 총괄하는 마한과를 두면 좋겠다는 것과 영암과 나주에서 별도로 치러지는 마한축제도 전남도 축제로 승격하여 공동으로 치렀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었다. 특히 장관님께서는 마한사의 실체를 밝히는 연구를 체계화하는 것이 중요함을 거듭 강조하였다. 

오는 11월 3일부터 6일까지 전라남도가 주관하는 마한행사가 11월 3일 시종의 마한역사공원과 기찬랜드에서 다양하게 치러질 예정이다. 필자 또한 행사에 참여하고 있지만, 마한 행사가 단순히 행사를 위한 행사로 치러지는 것을 항상 경계하고 있다. 예컨대 마한 행사에 유명가수나 유명인이 와서 노래를 부르고 특강을 하는 것이 마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것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하는 것이다. 마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체계적인 연구와 일반인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할 때이다.                      

<계속>
글=박해현(문학박사·초당대 교양교직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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