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찬형 / 학산면 독천리 출생/연합뉴스TV 보도국장/전 연합뉴스 정치부장·국제뉴스2부장·통일외교부장/전 연합뉴스TV ‘맹찬형의 시사터치’ 앵커
맹찬형 / 학산면 독천리 출생/연합뉴스TV 보도국장/전 연합뉴스 정치부장·국제뉴스2부장·통일외교부장/전 연합뉴스TV ‘맹찬형의 시사터치’ 앵커

필자가 근무하는 장소는 서울 종로구 율곡로 연합미디어센터 5층 모퉁이에 있는 사무실이다. 청와대와 경복궁, 광화문이 멀지 않은 곳이다. 창밖을 내려다보면 위안부 소녀상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터파기 공사가 몇 년째 중단 상태인 주한일본 대사관 부지 쪽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이면 위안부 소녀상 주변은 어지간한 시골 장터보다 훨씬 소란스러워진다. 199218일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돼 30년 넘게 이어진 수요집회가 열려 일본 정부와 우익세력의 역사 왜곡을 규탄하고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식 사과를 촉구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위안부 강제 동원은 과장이고 허구이며, 위안부는 자발적으로 '매춘' 행위를 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성능 좋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진다.

한쪽에서 일본 정부와 우익의 태도를 규탄하는 노래를 부르면, 반대편에서 더 큰 소리로 목청을 높여 노래를 부른다. 이 때문에 수요일 아침부터 낮까지는 창문을 단단히 닫아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시끄러운 소음에 시달려야 한다.

수요시위 주최 측에서 내건 플래카드에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처음 폭로한 고() 김학순 할머니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구호와 함께 '친일 극우ㆍ민족 반역무리 척살'이라는 문구가 적혀있고, 불과 5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위안부 역사를 부정하는 국내 우익단체가 내건 플래카드에는 '위안부가 자랑이냐? 나라 망신 소녀상, 당장 치워라!'라는 구호가 새겨져 있다. '반일(反日)은 정신병이다'라는 구호도 종종 등장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사무실 창밖에서 벌어지는 소란과 충돌을 보면서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한계는 있는 것인지, 있다면 어디까지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민주주의 제도를 근간으로 삼는 대한민국의 국민에게는 집회의 자유가 있으며, 집회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펴는 것은 법률의 보호를 받는 신성한 권리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주장의 내용과 성격이 대한민국의 역사와 뿌리를 부정하는 해악이 분명하고 일제 식민주의자들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것이라 해도 그 권리를 100% 보장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고삼아 볼 필요가 있다.

독일은 '선동범죄 처벌법'으로 나치의 폭력적 지배를 찬양하고 정당화하거나 유대인 학살을 부인하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펴면서 국민을 선동하는 행위를 엄히 처벌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톨레랑스(관용)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조차도 2차 세계대전 기간 친() 독일 성향의 비시(Vichy) 정부를 이끌었던 필리프 페탱 원수에게 전후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했다가 나중에 종신형으로 감형해 죽을 때까지 감옥에 가뒀고, 총리인 피에르 라발, 내무장관 조제프 다르낭 등 주요 인사들을 총살형에 처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우리보다 앞서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했고 합리적 토론과 관용을 중시하는 전통을 지닌 선진국이지만, 역사에 대한 단죄에 있어서는 철저하고 단호했다.

그래서인지 매주 수요일 어김없이 광화문 근처에서 벌어지는 맞대결 집회의 소란을 바라보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끝난 뒤에도 친일파의 부활과 득세를 막지 못했고, 그래서 끝내 청산하지 못했던 아픈 역사의 잔재들이 끈질기게 되살아나서 민주주의의 외피를 와 방패 뒤에 숨은 채 고성능 스피커를 동원해 한국인의 영혼을 오염시키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물론, '역사 왜곡 금지법'을 만들어 위안부 역사 등을 부정하는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은 위헌 소지가 있어서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도 국민 다수가 동의하고 공감하는 아픈 역사를 바로 보자는 주장과, 이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목소리가 같은 비중과 무게로 취급되고 다뤄져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민족과 국가가 없다면 민주주의를 담아내고 펼칠 터전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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