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영암공원 충혼탑에서 제67회 현충일 추념식이 열렸다. 각계인사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추념식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에 대해 군민 모두가 추모하고, 애국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마련됐다.

일찍이 ‘영암 의병’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진왜란 때 수많은 영암 출신들이 국난극복에 몸을 던졌는데 도포출신 양달사 형제가 조선시대 ‘최초 의병장’의 역사를 썼다. 그리고 임진왜란을 거쳐 정유재란 때는 서호면의 전몽성·몽진 형제가 있었다.

한말 때는 ‘영암 의병’의 역할이 더욱 빛을 발한다. 박평남 등 영암 의병들이 주도한 ‘호남창의소’(호남의소)는 함평출신 심남일 의병장과 함께 금정 국사봉에서 빛나는 전쟁을 이어갔다.

의병 전쟁이 독립전쟁으로 본격화될 때 ‘영암 의병’들이 ‘호남의소’의 핵심 역할을 했던 것이다. 남도 의병 사령부가 있었던 금정 국사봉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의병장 양방매 여사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각종 자료를 토대로 확인된 한말 영암출신 의병은 190명에 이른다

이처럼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영암 의병’의 빛나는 의병 전쟁은 1919년 구림과 영암읍에서 일어난 3·1독립 만세운동, 영보항일 농민항쟁으로 계승되었다.

양달사 형제의 의병활동은 을묘왜변 때 왜구의 침범으로 서남해안 전역에 함락되면서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의병을 일으켜 왜구를 격퇴시킴으로써 국가적 변란을 평정했다는 점에서 영암출신 우리 선조들의 호국정신이 빛나고 있다. 영보항일 농민항쟁의 경우는 1930년대 영암에서 일어난 최대 규모의 농민 만세운동이었지만 공산주의 민중봉기로 비하돼 그동안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다 문재인 정부들어 좌우익을 망라한 독립유공자 발굴에 나서고 있다.

역사는 사실을 과장하거나 축소함이 없이 기록할 때 가치가 있다고 했다. 불굴의 애국정신으로 신명을 바쳤던, 우리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은 지금 대한민국 발전의 토대가 되고 있다.

해마다 치러지는 호국보훈의 달 기념행사는 숭고하고 거룩한 뜻을 되새기고 군민들에게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일깨워 주기 위해 마련된 것임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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