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흥 /한국사회조사연구소 소장/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전 광주대학교 교수
김순흥 /한국사회조사연구소 소장/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전 광주대학교 교수

곧 6ㆍ1 지방선거다. 이미 당선이 확정된 무투표 당선자가 20일 기준 321개 선거구에서 509명이다. 이 중 508명이 양대 정당 소속이고(민주 282명, 국힘 226명), 대부분 특정정당 지지도가 높은 영호남에 몰려 있다. 이 같은 현상이 왜 일어날까? 정치는 서비스다. 당선자에게는 긴장을, 낙선자에게는 희망을 줘야 고객인 유권자에게 서비스를 한다. 특정 정당에 무조건 표를 몰아주는 곳에, 당선 가능성이 눈꼽 만큼도 없는 곳에, 무슨 희망을 가지고 선거에 나서겠는가.

지방자치가 부활한지 30년이 되어 가는데도 선거 때마다 답답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정책의 대결도 아니고, 이념의 대결도 아니다. 단지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인 지지에 의해 당락이 결정된다. 하루 빨리 없어져야 할 병폐가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 그나마 전에는 몇 석을 냈던 진보성향의 군소정당마저 스러져 버렸다. 스러져버린 정당이 그동안 크게 잘못했나? 표를 몰아간 정당이 그동안 잘했나? 오히려 거꾸로였는데도 어리석은(?) 유권자들의 한심한 행태 때문에 정치는 점점 더 뒷걸음질 치고 있다.

선거는 정치인에게 권력을 쥐어주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유권자들이 직접 나서기 어려우니 대리로 심부름 할 사람을 고르는 것이다. 정치서비스의 소비자인 유권자를 위해 서비스를 잘하도록 정치인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방법이다. 정치는 궁극적으로 유권자인 시민이 잘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이다. 소비자인 유권자는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서비스를 가장 잘하는 정당이나 후보에게 표를 주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화석화된 지역감정의 폐해는 소비자로부터 이 같은 선택권을 앗아가 버렸다. 오랜 동안의 지역대립구조에서 소비자는 품질이나 값을 보고 상품을 선택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채, 이 지역이나 저 지역이나 모두 똑같이 간판만 보고 투표하는 기계가 돼버렸다. 

동네 정치인 지방자치 선거는 정권을 바꾸는 대선과는 다르다. 누가 되어도 어차피 같은 동네 사람인데 특정 정당에 표를 몰아주는 투표는 유권자 스스로 제 권리를 포기하는 짓이다. 단체장도 그 정당, 단체장을 견제하는 의회도 그 정당 일색. 지방자치에서도 집행자와 의회를 분리한 취지가 사그라져 버렸다. 어리석은 투표의 피해는 결국 소비자인 유권자 자신에게 돌아온다. 서로 경쟁을 시켜야 소비자가 득을 보는데, 경쟁이 없는 독점 장사는 소비자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소비자를 위해 애써서 좋은 상품을 내놓을 필요도 없고, 싸게 내놓을 필요도 없다. 후보자들과 정당들이 서로 경쟁을 해야 좋은 정치서비스를 만들어낼텐데, 잘하거나 못하거나, 열심히 하거나 대충하거나, 특정 정당의 간판만 달고 나오면 무조건 찍어주면 누가 유권자에게 신경 쓰겠는가? 뒤집어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유권자를 위해 열심히 해도 표를 주지 않으면 누가 유권자를 위해 나서겠는가?

당선자도 낙선자도 유권자를 버린다

당선이 되더라도 아슬아슬하게 된 사람은, “하마터면 큰일 날뻔 했네. 열심히 안하면 다음 선거는 어림도 없겠네” 하면서 선거 때뿐 아니라 평소에도 유권자를 위해 혼신을 다할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사람은 “조금만 더 했으면 되는데,...” 하면서 다음 선거까지 쉬지 않고 노력할 것이다.

51대 49의 경쟁이 가장 좋겠지만, 55대 45도 나쁘지 않고, 60대 40이라도 희망을 가질 수는 있다. 70대 30이나 80대 20의 맹목적인 지지는 유권자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일이다.  무조건 예뻐하는 아이는 버릇없이 자라고, 무조건 차별받고 천대받는 아이는 반듯하게 자라기 어렵듯이 맹목적인 지지는 정치인들의 버릇을 잘못 들이게 된다. 

정당이나 후보를 길들여서 ‘좋은 후보를 내는 정당’ ‘유권자를 생각하는 후보’를 만들려면 몰표나 무조건 지지 같은 어리석은 짓은 없어져야 한다. 표를 분산시키고 경쟁을 시키기 위해 필요하다면, 내가 싫어하거나, 내가 지지하지 않는 사람에게조차 표를 주는 것이 현명한 일일진대, 하물며 더 나은 후보나 정당에도 투표하지 않고 한쪽에 몰아주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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