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찬형 / 학산면 독천리 출생/연합뉴스TV 보도국장/전 연합뉴스 정치부장·국제뉴스2부장·통일외교부장/전 연합뉴스TV ‘맹찬형의 시사터치’ 앵커
맹찬형 / 학산면 독천리 출생/연합뉴스TV 보도국장/전 연합뉴스 정치부장·국제뉴스2부장·통일외교부장/전 연합뉴스TV ‘맹찬형의 시사터치’ 앵커

10여 년 전쯤의 일이다. 몇몇 기초단체장들이 지방선거에서 불법 선거자금을 살포한 문제가 언론매체에 자주 등장해서 뒤숭숭할 때였는데 여의도 정당판에서 잔뼈가 굵은 친구와 우연히 만났다. 그 친구와 소주잔을 기울이다가 문득 궁금증이 생겨서 "대체 기초단체장이 얼마나 좋은 자리길래 수십억 원씩 돈을 써가면서 기를 쓰고 당선되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물어봤다. 그 친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필자를 바라보면서 "정치부 기자 헛 했구먼"이라고 면박을 줬다. 그러면서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대도시를 제외한 농어촌 지역 시ㆍ군의 1년 예산이 평균 4천억 원 정도 되는데 연간 예산의 98%를 정상적으로 집행하고 2% 정도만 단체장이 챙겨도 '청백리' 소리를 듣는다. 그러면 1년에 80억이고, 임기 4년을 곱하면 320억인데 불법 선거자금을 뿌려서라도 재선되고 싶지 않겠냐"고. 너무도 현실적이고 적나라한 친구의 설명에 씁쓸했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난다.

지방자치제 전면 시행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민당 총재 시절인 1990년 13일간의 단식투쟁 끝에 얻어낸 엄청난 정치적 성과물이었다. 김 전 대통령의 목숨을 건 투쟁의 결과로 이듬해인 1991년 기초의회 및 광역의회 의원 선거가 실시됐고, 4년 후인 1995년 6ㆍ27 지방선거에서 35년 만에 광역ㆍ기초 단체장과 광역ㆍ기초의회 의원 선거가 열렸다.

이토록 어렵게 도입한 제도였지만 초기에는 온갖 잡음과 부작용, 시행착오가 정말 많았다. 각종 토착형 비리와 공무원 줄세우기식 인사 전횡, 보여주기식 사업 추진, 엇비슷한 지역축제 유치, 부적절한 예산 집행 등으로 물의를 빚는 일이 많았다.

필자가 친구에게 물정 모르는 질문을 던졌다가 무안을 당한 지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청렴도 면에서 훨씬 개선됐고, 대다수 기초단체장은 지역 발전을 위해 몸을 던져 봉사하는 자세로 일하고 있다고 믿는다. 

풀뿌리 정치를 통해 단련되고 성장한 정치인들이 여의도 국회로 진출해 의욕적으로 의정활동을 펴고 있고, 정반대로 국회의원을 지냈던 사람들이 군수와 구청장 후보로 '체급'을 낮춰 출마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여의도에서 다선 국회의원 경력을 쌓고 대선주자로 나서는 식의 전통적인 정치 이력 쌓기가 시들해지고 기초나 광역 자치단체장을 거쳐 대선후보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는 지방자치 제도가 정치 지도자를 길러내는 인큐베이터로 정착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역대 정권을 거치면서 지방분권화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확고한 방향이 됐고, 지방권력은 단순히 중앙권력을 보조하고 보완하는 역할을 넘어 그 자체로 대한민국을 한 단계 도약하게 하는 엔진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방자치제를 통해 한층 더 뛰어나고 미래 비전을 갖춘 정치 지도자로 성장하는 인물이 많아지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특히 글로벌(global) 이슈와 시대사조, 해외 선진국의 발전 경험에 대한 풍부한 식견과 넓은 시각, 로컬(local)의 현안에 대한 현실적 이해와 창조적 해법을 동시에 갖추고, 지구적 과제와 동네의 숙제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낼 줄 아는 '글로컬 리더(glocal leader)'의 성장을 기대한다. 

식견을 넓힌다는 점에서 지방의원과 단체장의 해외 출장은 비판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권장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해외에 나가서 골프와 관광, 뒤풀이 술자리로 귀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아울러 이번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자신이 찍는 군의원과 시의원, 군수와 시장이 미래의 대통령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한 표를 던졌기를 소망한다. 유권자가 먼 미래를 보고 투표권을 행사하면 풀뿌리 정치인들도 그만큼 더 크게 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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