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의송 /학산면 광암마을生/전 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이사/전 농민신문사 사장/한 ·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공동대표
현의송 /학산면 광암마을生/전 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이사/전 농민신문사 사장/한 ·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공동대표

소나무는 한국인의 정서와 맞다. 그래서 늘 가까이 해왔다. 애국가에도 등장하는 등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노래로 불러왔다. 그래서인지 요즈음 소나무로 지은 한옥이 농촌 풍광을 아름답게 한다. 국보 1호 남대문 복원공사에 시베리아 적송으로 복원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시베리아 적송은 지름 30cm 자라는데 90여 년이 걸린다. 물론 금강송으로 복원공사를 해야 했지만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는 이상 시베리아 적송과 금강송을 육안으로 구별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금강송이나 시베리아 적송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지름 30cm 자라는데 120년이 걸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금강송은 금강산 주변에서 자생하고 금강석처럼 단단하다는 뜻이 담겨있다.

합판으로 만든 가구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접착이 약해지거나 부풀어 올라 곧 쓰레기가 된다. 물푸레나무나 오동나무로 만든 원목 가구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골동품이 되어 간다. 겉모양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합판은 시간을 담아내지 못한다. 시간을 담아내지 못하는 나무는 결국 쓰레기가 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자란 나무로 집을 짓거나 가구를 만들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명품이 된다. 문화도 저와 마찬가지다. 잘 건조한 금강송이나 적송으로 집을 지으면 천년의 세월을 견디는 문화재가 되는 것이다. 

그처럼 훌륭한 문화재를 만들 수 있는 적송 소나무 한 그루가 요즘 영암의 화제가 되고 있다. 1932년 일본인 효도우가즈오(兵頭一雄)가 심었다는 소나무다. 영암중학교 교정에 우뚝 서 있는 이 소나무는 학교 교목으로 지정해서 보호 관리되고 있다. 이 소나무의 유래는 이렇다.

일본 시대에 영암에도 교직자와 경찰 수비대 등 많은 일본인이 읍을 중심으로 살았다. 효도우씨는 영암에서 간척사업을 하면서 직접 농장을 경영했다. 그는 관선 전남도회 의원으로 영암의 실력자로 전해진다. 그가 살던 농장과 주택이 현재의 영암중학교 부지다. 그래서 1932년 4월 1일 이 소나무 묘목을 효도우씨가 지금의 학교운동장 한편에 심었다고 전해진다. 이 증언은 효도우씨 농장을 관리했던 고 송동암(전 영암군농협조합장)의 증언을 회문리의 조동현 씨가 송 조합장 생전에 직접 들었다고 늘 말해 왔다. 

효도우씨에 대한 인상과 그의 생각을 교사였던 나카노 미노루(中野實)씨는 영암회(영암에 거주한 1천명의 친목회) 자료 중에 이렇게 기술했다. <효도우씨는 적은 체구에 위풍당당하고 대면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대단히 엄격한 사람이고 고독하게 보였다. 한편 그는 이상주의자처럼 보였다. 그의 영농목적은 당시 일본의 식민지주의와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농을 중요시하면 예속 농민은 수탈의 결과 피폐해지고 농민의 자립을 중심에 두면 농장경영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때와 장소와 계급을 도외시한다면 니노미야손도쿠(二宮尊德)의 보덕정신(報德精神)은 단순히 그림의 떡이 아닌가>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는 영암회 자료의 말미에 <나에게 조선은 무엇인가? 오래전 일본이 조선에서 훌륭한 문화적인 선물을 받아 그것을 혈과 육으로 삼아 오늘날 살고 있으면서 조선과 조선인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오늘날까지도 그것을 지속하려고 하는 일본인은 무엇인가? 나는 참괴(慙愧)스러워 참을 수가 없다> 

이 소나무를 지금까지 보살피고 있는 조동현 씨의 부인은 해방이 되고 일본인이 황급히 떠난 후 효도우씨 집을 찾아가 보았다. 그렇게 급하게 여수와 목포항을 이용해서 철수하는 모습이 무척 안쓰럽게 보였다. 그래서 당시 비어있는 효도우씨 집을 찾아가 보았다. 놀랍게도 황망하게 떠난 것 같지 않게 집안과 밖 모두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렀으나 그 소나무는 늠늠하게 아람드리 소나무로 자라서 학생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면서 묵묵히 한국과 일본의 과거를 생각게 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그분의 외손인 오카다유스케(岡田)씨는 매년 영암을 방문하고 외조부의 흔적을 그리워하는 듯하다. 자기의 조상과 뿌리를 중요시하는 동양철학과 유교사상은 한 인간에 공통적으로 갖는 기본 철학이다. 말없는 이 소나무가 한국과 일본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한국과 일본의 오랫동안 묵은 실타래에서 한 오라기 실마리가 나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금년에도 여전히 씩씩하고 힘차게 파릇파릇 새 소나무 잎이 무성하게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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