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찬형 / 학산면 독천리 출생/연합뉴스TV 보도국장/전 연합뉴스 정치부장·국제뉴스2부장·통일외교부장/전 연합뉴스TV ‘맹찬형의 시사터치’ 앵커
맹찬형 / 학산면 독천리 출생/연합뉴스TV 보도국장/전 연합뉴스 정치부장·국제뉴스2부장·통일외교부장/전 연합뉴스TV ‘맹찬형의 시사터치’ 앵커

필자가 사는 곳은 서울 용산이다. 초접전으로 치러진 제20대 대통령 선거 직후부터 새 대통령의 집무실 이전 문제로 인해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된 국방부 청사로부터 버스 한 정거장 거리다.

왜 하필 용산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면 남산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면 쉽게 풀린다. 주말에 산책 삼아 남산을 종종 찾는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시원스럽게 펼쳐진 용산 벌이 한눈에 들어온다. 만리재와 청파동을 거쳐 한강에 이르는 지리적 형세가 용을 닮았다 해서 고려 시대부터 용산(龍山)으로 불렸다는데,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필자의 눈으로도 용의 등뼈가 힘차게 굽이치는 명당의 기운이 느껴진다.

남산에서 북쪽을 보면 멀리 북한산 줄기가 청와대와 경복궁을 품은 북악산으로 이어진 뒤 종묘로 흘러내리며 잠시 걸음을 쉬었다가 남산에서 솟구친다. 남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군데군데 남아있는 주한미군 시설들과 전쟁기념관, 대통령 집무실 예정지인 국방부 청사, 국립중앙박물관이 들어선 녹지공간이 한강까지 이어지고, 한강대교 너머 노량진을 거쳐 멀리 관악산까지 지세가 이어진다.

서울 한 복판에 위치한 용산은 오랜 세월 몽골과 청나라, 일본, 미국 등 외국 군대가 차례로 주둔하며 우리의 약했던 국력과 아픈 역사를 여실히 보여준 땅이었다.

고려 말에 몽골군이 용산 일대에 병참기지를 뒀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한양에 들어온 왜군이 지금의 용산구와 마포구 경계 지역에 주둔하기도 했다. 1882년 임오군란을 빌미로 출병한 청나라 군대가 용산에 주둔했고, 청일전쟁 때는 일본군 병력 6천여 명이 진주했다. 1904년 한일의정서에 근거해 일본은 용산 땅 300만 평을 수용한다고 일방적으로 통고하고, 일본군대의 영구 주둔과 대륙 침략을 위한 전진기지로 삼았다. 일제에 의해 전쟁터로 내몰린 조선인 학도병과 장정 수십만 명이 피눈물을 삼키며 열차를 타고 떠났던 장소도 바로 용산이다.

1945년 8월 광복을 맞았지만 용산은 우리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미 7사단이 용산에 들어왔고,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이승만 정부가 용산기지를 미국에 공여해 미8군 사령부가 들어서면서 주한미군의 본거지가 됐다. 2003년 한미 정상이 용산기지의 평택 이전에 합의하고 차례로 미군 부대가 옮겨갔지만, 아직도 미군 시설 일부가 남아있다.

이처럼 우리 역사의 아픔을 함께해온 용산 땅에 대한민국 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집무실이 들어서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집무실 이전 결정의 배경과 추진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고,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온갖 집회와 교통 통제로 인한 불편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외세에 밀려 내줄 수밖에 없었던 용산 땅의 온전한 회복과 국력의 신장을 보여주는 상징적 행위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서'라는 명분에 대해서는 장소 이전만으로 채워질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하고자 한다. 소통은 집무실의 지리적 위치보다 주변에 둔 사람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고, 소통을 가로막는 것은 돌과 시멘트로 만들어진 담장이 아니라 '인(人)의 장벽'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지 않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참모를 곁에 둬야 국민과의 소통 채널을 지킬 수 있다.

옛날 중국 땅에 현명한 왕이 있었는데, 민심을 듣는 데 힘쓰고자 쓴소리를 서슴지 않는 신하를 늘 곁에 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신하의 고언이 때로는 너무 직설적이고 무례하기까지 해서 지혜로운 왕으로서도 참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하루는 이 신하를 앞에 두고 "너의 방자한 언동을 보면 그 입을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으나 네 말을 듣지 않으면 내가 백성의 소리를 바로 듣고 나라를 옳게 이끌 수 없으니 참는다"고 했다. 소통은 즐겁기보다는 고통스러운 과정이고, 인내심이 필수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