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중 / 전남교육연구소 이사장 / 전남에너지고 교사
김기중 / 전남교육연구소 이사장 / 전남에너지고 교사

아침에 눈을 떠보니 다용도실 바닥이 물로 흥건했다. 주방 생활하수가 다용도실 배수구로 역류한 것이다. 하기야 조짐은 욕실에서부터 왔었다. 이삼 주 전부터 배수가 시원찮았는데도 그러려니 했었다. 잠시 물이 고였다가도 한두 시간 지나면 빠졌으니 말이다. 당장 용변과 샤워가 절실한지라 세칭 ‘뚫어뻥’ 도구들로 응급조치를 취해 본다. 전과 달리 이번엔 통하지 않는다. 새삼스레 불민함을 탓하며 지인의 도움으로 설비기술자와 연락을 취했다. 그는 바빠서 오후 늦게나 방문할 수 있겠다 한다. 다급한 마음에 다른 일들을 모두 접고 그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철물점을 오가며 용써보았지만 ‘막힘’을 해결할 수 없었다. 자기 집 배관 상태도 모르고 살아 온 지난 6년 세월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해거름녘에 그가 왔다. 그는 집안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하수구 맨홀을 찾아냈다. 이내 녹슨 뚜껑을 열어젖히자 오수관과 생활하수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네 오·폐수관과 합류하기 직전 집안 하수관들이 한곳에 모이는 지점이다. 눈여겨보니 생활하수관이 막혀 있었다. 주방 물을 꽤 오래 흘려보냈는데도 배수가 되지 않는다. 이윽고 그가 비장한 표정으로 하수관 끝 연결 부위를 움켜잡은 채 이리저리 힘껏 돌려댄다. 마침내 샴페인이 터지듯 ‘뻥’ 소리와 내며 하수관이 열렸다. 그러자 답답했던 체증기가 가시듯 모든 배수관들이 일제히 환호한다. 하수관 끝 연결 부분은 인체로 치자면 마지막 배설 기관인 직장(直腸)인 셈인데, 직장과는 달리 조금 굴곡져 있었다. 그 굴곡 부위에 시나브로 축적되어 결국 물길을 완전히 막아버린 주범은 바로 주방에서 조금씩 흘려보낸 동물성 지방이었던 것이다. 초저녁 차가운 밤공기를 맡으며 희멀겋게 모습을 드러낸 기름 덩어리들이 섬뜩했다.

배관공의 시선에서 보니 ‘막힘’의 해법은 입구가 아니라 출구에 있었다. 우리의 삶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출구 쪽은 보지 못하고 이곳저곳 입구만 뚫으려 했던 것처럼 종착지는 망각한 채 지엽적인 문제에만 매달리기 십상인 것이다. 남북, 동서, 진영, 세대, 계층 간 갈등으로 표출되는 여러 ‘막힘’들은 결국 우리 삶의 종착 지점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결국 끊임없이 마음의 평화를 위협하는 내 안의 갈등 요소들을 점검하고 다스리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영암천 상류 시냇길을 걸으며 ‘강물같은 평화’를 달라고 기원한다. 허나 전제 조건이 있다. 강물이 평화와 등식을 이루려면 우선 바다로 흘러가야 한다. 영산강의 고여있는 물들이 서해 바다와 만나야 한다. 

최근 마한시대 역사와 문화가 재조명되고 있다. 전남대학교 임영진 교수에 의하면, 6세기 중엽 작성된 중국의 ‘양직공도’를 근거로, 서기 521년까지 백제와 구분되는 마한 소국들이 광주·전남 지역에 15개 가량이나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마한역사문화권’ 설정의 당위성과 함께 영산강 유역 고대사회에 대한 지역민의 관심과 자긍심이 고취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더욱이 마한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우리 영암 고장은 담양 ‘용추봉’에서 발원한 영산강이 여러 고을을 거쳐 마침내 서해 바다와 만나는 관문으로서, 삼포천, 영암천, 학산천 등의 지천들을 합류시키는 명실공히 영산강의 본고장이다. 그러기에 5급수로 전락한 영산강의 수질을 개선시키는 일은 우리 영암 군민들에게는 특히 절실한 과제이다. 그 해법은 어디에 있는가? 영산강의 종착지 하구둑 개방에 있다.

갓 선출된 20대 대통령 당선자는 무엇보다 국민의 배관공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전국의 막힌 물길들을 이제는 터주어야 한다. 우리 지역도 자연재해 예방과 농업용수 공급만 보장된다면 국가 하천인 영산강 하구둑 개방을 국정 우선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또 하나의 옥상옥 격인 국가 기구를 신설하지만 않는다면 그다지 큰 재원을 들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1981년 완공된 영산강 하구둑은 당시로서는 안정적인 식량자원 확보 차원에서 나름 타당성을 획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후 위기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변화된 생존 조건에서 이제 우리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문제는 생태 환경의 복원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대체에너지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우리 영암의 천연 갯벌과 맞바꾼 광활한 간척지 절대농지마저 손쉽게 태양광 단지로 탈바꿈시키는 현실로 볼 때 식량자원 확보 논리는 더이상 설득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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