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선생의 귀국을 수행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감독 김진홍)이 1월 27일 개봉된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은 독재 정권에 맞서 5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3전 4기 도전 끝에 정권교체를 이루기까지 국민과 함께한 김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사 측이 공개한 사진은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정치 신인에서 사형수 그리고 대통령이 되기까지 중요한 순간들을 확인할 수 있다. 수많은 시민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 신군부의 내란음모 조작사건으로 사형수가 된 모습, 미국 망명 후 귀국하는 모습, 광주에서의 오열, 대통령 취임식 모습 등 격동적인 역사의 순간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이재정, 유시민, 문성근 등 각계각층 인사들의 인터뷰와 희귀한 영상들은 굴곡 많은 한국 현대사를 생동감 있게 전하며 깊은 울림과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이 중 신북 출신 민승연(88) 전 전남도의원이 직접 출연해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망명 후 귀국길에 오른 김대중 선생을 밀착 수행한 그는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인터뷰를 통해 직접 증언했다. 당시 뉴욕에서 한국민주운동단체인 북미주 민주구락부 연합회장으로 활동했던 그는 김대중 선생의 귀국을 앞두고 한국정부가 협박적인 반응을 보이자 이를 강력히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김대중 선생의 안전귀국과 귀국 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내용의 성명이었다. 그는 백악관에서 열린 레이건 대통령 초청 토론회에서도 “미국 정부는 김대중 선생의 안전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물으며 귀국 시 안전보장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의 이 같은 발언을 옆에서 듣고 있던 김대중 선생은 토론회가 끝난 뒤 “어떻게 그런 질문을 했느냐. 고맙다”는 말을 건네며 깊은 신뢰를 보냈다. 이후 미국 정부는 30여 명의 수행단을 구성했고, 이 중 유일하게 한국인 수행원으로 김대중 선생을 밀착 경호하게 됐던 것이 영화출연의 배경이다.

그는 1980년 어두웠던 시절, 조국의 민주화에 한때 몸담았던 50대의 젊고 혈기왕성했던 미국 교민이었다. 그는 1980년 5월 21일(뉴욕시간) 광주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유인물을 만들어 유엔본부 앞 건물에서 세계 각국의 외교관과 유엔 특파원들에게 광주사태를 알리고 만행을 중지하도록 호소했다. 또 조국에서 살인행위가 저질러지고 있음에도 미국 신문들이 무관심을 보이자 광주의거에 대한 정부탄압과 살인행위에 대한 만행을 뉴욕 거리에 대자보를 붙여 고발했는가 하면 미국 신문에 컬럼과 광고를 통해 광주의 만행을 미국 교포 및 뉴욕시민들에게 알렸다. 그는 조국의 민주주의를 짓밟은 장본인 전두환씨가 미국에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전두환 방미 저지 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전씨가 유엔사무총장을 만나는 시간을 택하여 유엔본부 광장에서 ‘광주민주의거 위령제’를 지내고, 전씨가 묵고 있던 숙소에서 장례식을 치르는 등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인권문제연구소 뉴욕지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각종 성명서를 통해 광주사태 해결과 전두환 정권 퇴진을 외치고, 미국 정가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고국의 민주화 운동에 주춧돌을 놓았다.

5월 광주의 진실을 알리다

1980년 5월 광주,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차지한 신군부 세력에 맞서 광주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곧이어 벌어진 참혹한 학살. 많은 언론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광주에 잠입해 항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영상을 기록했고 이 영상들은 일본과 독일, 그리고 미국으로 전파됐다. 고국의 비참한 소식을 접한 교민들은 비디오를 재편집해 '광주 비디오' 상영회를 개최했다. 이렇게 해외에서 만들어진 '광주 비디오'는 국내로 밀반입돼 대학가와 성당을 중심으로 몰래 상영됐고 1987년 군부독재 타도를 외친 민주화 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1972년 도미, 재미 의류협회 회장, 뉴욕 한인회 이사장, 민주구락부 회장으로 활동했던 그는 1987년 군부독재 타도를 외친 민주화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광주 비디오’ 제작의 장본인이다. 1980년 5월 22일, 당시 민주구락부 회장이었던 그는 ABC 뉴스를 통해 광주항쟁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다급한 마음에 한국으로 연락을 취해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당시 뉴욕에서 민주화운동을 해오던 박상증 목사를 찾아가 대책을 논의했고 광주의 진실을 알릴 수 있는 비디오를 제작하기로 뜻을 모은다. 자료를 모으던 그들은 재일조선인총연합회(이하 조총련)가 만든 비디오 ‘원한의 땅, 광주는 고발한다’라는 다큐멘터리를 입수한다. 조총련의 전위 조직이던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이하 한민통) 영화제작소 감독 니시다 테츠오는 조총련이 만든 '광주 비디오'의 감독과 친밀한 사이다. 그는 '피의 항쟁의 기록'이라는 광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1980년 6월에 제작하기도 했다. 이들 조총련과 한민통이 '광주 비디오'를 만든 이유는 일본 시민들에게 광주의 민주화에 관련된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조총련이 북한과 밀접하게 연관된 단체로 알려져 있어 이들이 만든 비디오는 당시 광주항쟁에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설의 근거로 여겨질 우려가 있었다. 민승연과 박상증 목사는 조총련이 만든 비디오를 보고 고민에 빠졌다. 이 비디오가 진실을 전달하더라도 조총련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관점을 제대로 실은 ‘민주화 운동으로서의 광주항쟁’이라는 진실을 전달할 수 있는 비디오 제작에 착수한다.

민승연과 박상증 목사는 다큐멘터리 제작 경험이 있는 미국인 여감독을 섭외해 일본 NHK, 독일 ARD, 미국 ABC와 CBS 등의 뉴스를 모아 재편집했다. 비디오의 시나리오는 당시 뉴욕에서 동아일보 기자로 있었던 심재선 씨가 맡았고, 내레이션은 김응태와 이유정이 참여했다. 이런 노력으로 완성된 '광주 비디오'가 바로 '오 광주!'다. 비디오는 1981년 5월 18일 뉴욕의 한 학교 강당에서 상영됐고, 이를 보기 위해 구름처럼 몰린 교민들은 항쟁의 진실을 접하고 눈물을 흘리며 분노했다. 뉴욕에서 만들어진 '오 광주!'는 교민들의 노력으로 국내에 밀반입돼 대학가와 성당을 중심으로 비밀리에 상영된다. 서울 명동성당의 청년들은 1986년 5월, 열흘간 시민들을 대상으로 '광주 비디오' 상영회를 개최한다. 구름처럼 몰려든 시민들은 깊은 한숨과 눈물을 흘리며 군부독재 타도 구호를 외쳤다. 이에 힘을 얻은 명동성당 청년회는 전국의 성당을 통해 상영회를 이어간다.

결국 '광주 비디오'는 단순한 기록물에 머물지 않고 1987년 민주화 항쟁의 불씨가 됐다. 그리고 '광주 비디오'를 통해 전달된 광주의 민주화 정신은 수많은 촛불집회를 통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민승연의 이 같은 숨은 노력은 한국 민주화의 새 전기를 마련하는데 또다른 주춧돌이 됐다. 

'광주 비디오'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인 2020년 5월 15일(금) 밤 10시 KBS 1TV에서 특집으로 방영됐다. 그의 숨은 공로는 5월 20일 5·18민주화운동 40주년 및 UN·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등재 제9주년을 맞아 고 조비오 신부, 고 조아라 관장, 고 홍순남 변호사 등과 함께 받은 공로패로 인정됐다. 그 이전에는 5·18민주화운동 10주년 때 5.18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서 수여한 감사패로 공로를 인정받았다. 

 

■ 민승연 그는? 

 신북면 갈곡리 치릿마을 출생(1935년)
 청주대 경제학과-연세대 경영대학원 수료
 아태재단 아카데미 4기 수료
 뉴욕 한인회 이사장
 북미주 민주구락부 연합회장
 레이건 미 대통령 방한 결과 백악관 브리핑 참석
 김대중 선생 귀국 강연회 행사 주관
 김대중 선생 수행비서 임명(귀국)
 인권문제연구소 뉴욕지회장
 평화민주당 김대중 선거대책본부 대외협력 부위원장
 전라남도 도의원(영암 2선거구)
 아태재단 중앙위원
 셋방기업(주) 그룹 고문
 재단법인 홍익회 경영전문위원
 노무현 대통령후보 중앙선대위 과학기술특위 부위원장
 민주통합당 서울특별시당 재외동포 특별위원장
 2017년 ㈜ K2넷 정보통신 경영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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