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재 홍   서호면 몽해리 아천출신연합뉴스 뉴스통신진흥회 이사                                                           전 경기대 교수(정치학 박사) 전 KBS제주방송 총국장
윤 재 홍  서호면 몽해리 아천출신연합뉴스 뉴스통신진흥회 이사  전 경기대 교수(정치학 박사) 전 KBS제주방송 총국장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은 육사 11기 동기생이다. 두 대통령 모두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살았다. 연희1동에 사는 노태우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6일, 89세로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와 같은 날 별세했다. 연희2동에 사는 전두환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이 별세한 지 27일만인 11월 23일 90세로 별세했다. 두 전직 대통령이 한 달도 안되어 차례로 별세한 것이다. KBS 정치부 기자 출신인 필자도 한 동네에 살고 있어 감회가 남다르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달리 노태우 전 대통령은 10여년이 넘게 정치부 차장까지 정당과 국회 출입기자로, 또 연희동 친목회인 ‘건우회’ 대변인으로 자주 만났다.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기자로서 만남이 전혀 없었다. 

1980년 1월부터 1년간 KBS 본사 기자는 지방에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하는 규정 때문에 KBS 광주방송국 사회부 기자로 근무했다. 광주에 근무하자마자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시작되어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취재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KBS는 당시 계엄군이 광주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때리고 길거리에서 발가벗겨 자동차에 태우는 모습은 보도하지 못했다. 

다만, 데모하는 시민과 학생들이 계엄군에게 화염병과 돌을 던지는 모습만 보도했다. 이 TV 뉴스 때문에 필자를 죽이라고 하는 플래카드가 걸리는 등 말 못할 고생의 연속이었다. 당시 모든 보도는 계엄군의 사전 검열을 통과한 뉴스만 보도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따라서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필자는 5.18 이후 서울 본사에 근무하면서 동네에서 가끔 마주치며 간단한 인사 정도 나누는 이웃일 뿐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는 처음부터 기자와 취재원으로 인연이 되어 10년이 넘도록 취재하고 마을 친목회 대변인으로도 활동해 자주 만났다. 또 정치부 기자로서 1982년부터 체육부장관,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대한체육회장, 12대 국회의원, 민정당 대표, 1987년 6.29 선언, 1993년 제13대 대통령 취임 전까지 국회와 정당, 연희동 등에서 많이 만나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연희체육관과 우정스포츠센터에서 매일 아침 연희동 주민들과 함께 목욕을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당시 연희체육관에는 고 윤길중 민정당 대표, 배명인 법무부장관, 최영철 통일부총리, 윤한도 국회의원, 이종기 중앙일보 사장, 고 이현수 국회의원 등이 매일 아침 노 전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KBS 정치부 차장인 필자에게 목욕 친구라면서 서울대 경제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 재헌 군을 목욕탕에서 소개시켜줬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1주년부터 3주년까지 매년 취임식날 연희체육관에서 200여명의 연희동 친목 회원들에게 취임 조찬회를 열었다. 이때 필자가 취임식 기념일 행사 때마다 사회자로 참여했다. 

임기 4년차에 노 전 대통령은 민정당 연수원 행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필자를 발견하고 가까이 오라고 해서 많은 당원과 동료 기자들이 대통령과 만나는 필자를 주시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은 연희동 주민들은 잘 있는지 등 안부를 물었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한 시대를 책임졌지만 적을 만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마음의 철학으로 △모든 것을 참자 △어지간하면 용서하자 △기다리자 등 세 가지를 실천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나 이 사람 보통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 만나는 사람마다 보통사람임을 습관처럼 반복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때 36% 득표로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1노 3김 체제에서 제6공화국 직선제에서 55세로 우리나라 최연소 대통령이 되었다. 

1995년 전두환 노태우, 두 전 대통령은 12.12와 5.18 사건으로 구속 기소되어 1997년 징역 17년을 선고받아 헌재상 첫 번째 구속된 대통령이 되었으나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사면되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달리 5.18민주화운동 가해 책임자 중 가장 적극적으로 반성과 사죄를 표현했다. 2020년 5월 18일 아들 노재헌 변호사는 아버지를 대신해 국립 5.18묘지를 찾아 4년째 참배하며 피해자와 유족들이 “이제 됐다”라고 할 때까지 무릎을 꿇겠다고 말헀다. 

노태우 전 대통령 납골함은 인근 사찰 검단사에 안치되었다 지난해 12월 9일 경기도 파주시 통일동산 동화경묘공원 전망대 옆에 안장됐다. 한강과 북한 황해도 계풍군이 보이는 장소에 봉분 없는 평장으로 묻혔다. 납골함 안쪽 돌에는 “한반도에서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드는 날, 세계는 확실한 평화가 올 것입니다”라는 글귀 와 남북기본합의서 등 재임 시 업적을 새겨넣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연희동을 떠나 통일동산에 안장된 모습을 보고 인생의 허무함을 또 한번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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