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대나무 밭이나 마루 밑에 숨거나, 심지어 합수통(당시 시골 화장실) 인분 저장소에서 목만 내놓고 피했던 사람들만이 간신히 살아 남았다. 인민군 치하에서 인민군에 협력했거나 좌익활동과는 무관한 우익성향의 사람도, 한문 공부만 해서 샌님이란 별명이 붙은 처녀 같은 사람도,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 한 사람도, 또 초등학교 6학년인 아이도 희생되었다. 총소리에 놀라고 무서워 도망치는 사람들에게 남녀나 노소를 가리지 않고 총탄 세례를 퍼부었다. 신근정 사거리, 학암 사거리, 집 담밑, 솔밭, 텃밭, 동산 위, 논(나락논), 개천가 번덕지, 간척지 등 여기저기 사방에 시체가 널려 있었고, 심지어 바로 자기 집 앞에서 죽은 사람도 여럿 있었다. 무장도 하지 않은 양민들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경찰의 손에 잔인하게 학살당하였다. 아무 잘못도 없는 양민들이 좌익 세력들에 의해 가족이나 친지가 희생당한 경찰의 분풀이와 복수의 제물이 되어 죽어갔다. 민족의 비극,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구림에서 일어난 참상을 ‘호남 명촌 구림’ 지는 이같이 실었다.

지난 11월 27일 구림공업고등학교 옆 작은 동산에 세워진 위령탑에서는 군서면 주민 20여 명이 조용히 지켜본 가운데 합동 위령제가 엄숙히 거행됐다. 이른바, ‘용서와 화해’로 명명된 이 위령탑은 5년 전 군서지역 주민과 출향인들이 성금을 모아 건립했다. 위령탑은 1950년 한국전쟁을 전후해 군경과 좌우익에 의해 이유 없이 무차별 죽임을 당한 303인의 원혼을 달래고 가해자도 함께 피해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용서와 화해로 서로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건립됐다.

8.15광복 후 우리 민족의 염원은 나라를 되찾아 자주독립 국가를 세우는 것이었으나 좌·우로 나뉘어 정쟁과 대립 속에서 분열만 더해갔고, 우리 영암지역도 군서면을 비롯한 많은 곳에서 그 태풍 속을 비껴가지 못하고 엄청난 희생자를 낳았던 것이다. 뒤늦게나마 국가에서 과거사 조사와 명예회복 등 근현대사의 비극과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그리고 구림을 중심으로 희생자 유족들이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고 하늘나라에서라도 서로를 용서하고 화해하며 손을 맞잡고 오갈 수 있는 다리를 놓아주고자 ‘용서와 화해의 위령탑’을 세우고 해마다 제를 올리고 있다.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우리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머리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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