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일 삼호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마한 답사길에 나서 시종 내동리 쌍고분과 남해신사를 둘러보고 ‘마한의 심장, 영암’의 역사를 살피는 기회를 가졌다. 오른쪽 사진은 해남군 현산면 읍호리 마을회관에 내걸린 ‘마한유적보존회’의 푯말이 눈길을 끈다.
지난 12월 1일 삼호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마한 답사길에 나서 시종 내동리 쌍고분과 남해신사를 둘러보고 ‘마한의 심장, 영암’의 역사를 살피는 기회를 가졌다. 오른쪽 사진은 해남군 현산면 읍호리 마을회관에 내걸린 ‘마한유적보존회’의 푯말이 눈길을 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답사(踏査)라는 사전적 의미는 현장에 가서 보고 듣고 조사함을 말한다. 고사성어에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있다. 100번 들은 것이라 하더라도 한 번 본인이 직접 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글이든, 강의든 그것은 본인의 관점이 아니라 글쓴이나 말하는 이의 관점에서 이해될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현지 조사를 하거나, 여행을 갈 때 미리 조사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그것은 사전에 공부한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있었던 두 차례의 각기 다른 답사 이야기를 하려 한다.

11월 26~27일 양일간 전남교육청에서는 ‘지역사 교재의 현장 적용 연수’가 있었다. 전남교육청에서는 지역의 역사를 정확히 아는 것이 민주시민 교육의 토대가 될 뿐 아니라 글로컬(Glocal) 사회의 지도자 자질을 함양하는 데 중요함을 인식하고, 2019년부터 ‘전남의 한말의병’ ‘여수·순천 10·19사건’ ‘전남의 5·18민주화운동’ 등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주제를 다룬 교재 편찬을 시작으로, 2020년 ‘전남의 임진의병’ ‘전남·광주의 4·19혁명’ 등을 연속 펴내 현장 교사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에 힘입어 2021년에는 ‘전남 마한의 역사’ ‘전남의 6월 민주항쟁’을 주제로 다룬 교재를 편찬하였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자료를 만들어도 그것을 학교 현장에서 활용하지 않으면 세금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편찬된 지역사 교재를 현장 교사에 적용하는 연수를 작년에 계획하였으나 코로나19 때문에 실행하지 못하였다. 올해는 사전에 계획을 수립하였다가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는 시점에 연수를 추진한 것이다. 30명에 가까운 교사들이 참여한 이번 연수는 나주–목포–해남으로 이어지는 ‘마한길’과 ‘6·10 민주항쟁 길’ 답사였다. 집필자들이 현장 교사들과 1박 2일 함께 하며 편찬된 책의 내용을 현장에서 직접 강의하니 교사들이 느끼는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필자는 ‘전남 마한의 역사’를 김철민(전남외국어고), 김동석(해남고) 선생과 함께 집필했는데,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는 필자가, 현장에서는 두 선생님이 주로 안내를 맡았다. 이때 필자는 시종의 쌍고분, 장동고분, 남해신사를 반남 고분군, 복암리 고분군과 비교하며 영암을 ‘마한의 심장’이라 부르는 까닭을 설명하였다. 밤 10시가 다 되어 필자의 마한사 특강을 끝으로 첫날 연수가 끝났다. 현장을 확인하며 강의를 들으니 왜 마한사를 공부해야 하는지, 왜 마한사가 중요한지를 선생님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동안 방치된 마한사에 자괴감을 가졌다. 

해남서 집성촌 이룬 함양박씨

둘째 날은 해남 현산면 읍호리 고분군을 찾았다. 읍호리 고분군의 위치를 잘 몰라 읍호리 이장께 전화하니 발굴 현장 근처에서 밭갈이하고 있다 하였다. 읍호리 마을회관 앞에 버스가 도착하니 마을 어른이 나와 예약하지 않고 왔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외지인 접촉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정을 설명하고 15분 넘게 농로를 걸어 발굴 현장에 도착했다. 

아직 자세한 보고서가 나오지 않아 알 수 없으나 현재까지는 백제계 유물이 주로 많이 나와 이 지역이 군곡리 패총과 더불어 대륙과 해양문화의 교류가 이뤄지는 또 다른 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을 안내한 박찬대 이장께서 바로 읍호리 고분군이 있는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하였다. 옛 지명도 ‘염창’(鹽倉)이었다고 한다. 지명에서 읍호리 해변에 염전이 많이 있지 않을까 추정하였다. 소금은 철과 함께 옛 중국 역사에서는 국가의 중요한 재정기반이었다. 바다를 끼고 재정을 운용할 수 있는 염전이 있었다는 것은 이곳 읍호리에 마한의 커다란 세력권이 형성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알려준다. 읍호리의 ‘읍’(邑)이라는 명칭도 이곳에 거대 마한왕국이 있었다는 믿음을 분명히 해준다.

해남반도에는 ‘침미다례’라는 거대 마한왕국이 있었다. 필자는 이 왕국의 영역을 해남반도와 강진을 연결하는 곳에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현산면은 강진과 가까운 곳에 있다. 그렇다면 읍호리 고분군은 침미다례 왕국의 실체를 밝혀주는 중요한 근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읍호리 고분군 방문과 관련한 에피소드다. 필자는 박찬대 이장을 만나자마자 이름을 물으니 ‘박찬대’라고 한다. 본관을 여쭈니 필자와 같은 ‘함양’이라고 한다. ‘함양’은 많지 않은 성씨이다. 반가워 손을 붙잡았다. 박 이장은 읍호리가 함양박씨 집성촌이라고 한다. 읍호리가 원래 함양박씨 집성촌인가 물었더니 영암 구림에서 왔다고 한다. 구림 함양 박씨들의 일부가 뱃길을 이용하여 이곳으로 이주하였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역사 현장에서 직접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이에게 설명을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번 마한답사에서 얻은 최고의 수확이었다. 이웃한 북일면에 있는 대표적 전방후원형 고분인 장고분을 답사하였다. 바다에 인접한 이곳의 거대한 고분은 해양교역을 중심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한 마한의 힘을 보여준다. 

교사ㆍ공무원들 지역의 역사 알아야  

12월 첫날, 그 전날 내린 겨울비에다 영산 지중해에서 몰아치는 살을 에는 바람이다. 하지만 찬란한 마한 문명을 찾으려는 영암 삼호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답사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영암군이 주최하고 마한역사문화연구회가 주관한 마한길 답사에 영암 관내 여러 학교가 참여하였다. 미래의 영암을 책임질 우리 지역의 청소년들이 마한 역사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삼호고등학교 학생들의 참여는 ‘마한의 심장, 영암’을 부르짖는 필자에게는 기쁜 일이다. 사실, 삼호지역은 지리적으로 시종과 거리가 떨어져 있고, 목포와 가까워 마한 역사에 익숙하지 않고, 인근에 있는 대불산단의 영향으로 다른 지역 출신들도 많아 지역사 관심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구조이다. 이들에게 ‘영암’, ‘마한’을 현장에서 얘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100여 명 가까이 참여한 삼호고등학교 학생들은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쌍고분 발굴 현장을 직접 설명하기 위해 전남도청에서 달려온 이범기 전남문화재연구소장의 설명에 집중하고, 남해신사에서 마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김한남 영암문화원장의 특강을 놓치지 않으려 하였다. 필자는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마한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영암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등을 설명하였다. 이들이 이곳 영암에 남거나 출향을 하거나 이번 답사를 문득 기억할 것이고,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마한’, ‘영암’의 DNA가 그들에게 형성되어 있을 것이다. 

역사 교육의 출발은 지역사로부터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영암 역사 교재 개발과 더불어 지역에 전입하여 온 교사와 공무원에 대한 연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자들을 지도하느라 추운 날씨에 수고를 아끼지 않은 삼호고등학교 교사들께 필자는 단 1년을 근무하더라도 지역 전문가가 되어 지역사에 애정을 갖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중요함을 이야기하였다. 교사나 공무원이 지역을 알지 못하면 지역의 정체성이 있는 교육이나 발전 방향을 세우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12월 10일, 영암군이 주최하고 마한역사연구회가 주관하는 ‘영암지역 마한유산과 세계유산 등재’를 주재로 ‘마한문화권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국제학술 세미나’가 영암 트로트 센터에서 열린다. 한·중·일 학자들이 참여한 이번 학술대회에서 영암의 마한유산이 차지하는 역사적 위치가 학문적으로 입증되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영암인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당부드린다. 

                        <계속>
글=박해현(문학박사·초당대 교양교직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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