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정 규  /금정면 용흥리 출생/ 전 환경부 공무원 퇴직(부이사관)/ 전 한맥문학가협회 회장/ 문학평론가
한 정 규  /금정면 용흥리 출생/ 전 환경부 공무원 퇴직(부이사관)/ 전 한맥문학가협회 회장/ 문학평론가

고등학교 때 했던 무전여행이 내 삶에 지렛대가 됐다. 그때가 1천960년대 초였다. 그 무렵 학생들에게 무전여행이 유행했다. 난 그때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이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친구 두 명과 함께 세 명이 제주도로 무전여행을 가기로 했다. 출발하기로 한 날 함께 무전여행을 떠나기로 한 친구가 나오지 않았다. 연락할 방법이 없어 혼자 출발했다.

기차도 배도 무전여행 중인 학생이라 하면 그냥 태워줬다. 그때만 해도 인심이 참 좋았다. 목포를 출발한 배 ‘화양호’가 밤새 항해 제주항에 도착했을 때는 아침 여섯 시 가까이 됐다. 배에서 내려 제주항 주변 시내를 구경하는데 배가 너무 고파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전날 점심 저녁 그리고 그날 아침까지 세끼를 굶었으니 배가 고플 수밖에... 점심때가 됐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밥을 얻어먹을까 하고 골목길로 들어서 이집 저집 담장 넘어 집안을 기웃거렸다. 마침 여자 둘이 마루에 걸터앉아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순간 두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때 나이가 더 많아 보인 한 여인이 누구냐며 물었다. 머뭇대다 “육지에서 무전여행을 온 학생입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 말했다. “어제 아침 이후 지금까지 굶었습니다. 밥이 있으면 조금만 먹을 수 있도록 부탁합니다.”라고.

그렇게 구걸한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이마며 등에서는 땀이 주르르 흘렀다. “밥이 없어 어쩌죠?” 하는 말에 머리를 큰 돌멩이로 얻어맞은 것처럼 띵하며 얼굴이 후끈거리는데 창피하다는 생각에 뒤돌아 도망치듯 문밖으로 나가려 발을 옮기는데 학생하고 불렀다. 부르는 말에 뒤돌아서 그들을 보자 단발머리 학생처럼 보인 여자가 밥을 지어줄 테니 여기 앉아 기다리라 했다.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단발머리 여자가 화덕에 불을 지펴 밥을 지었다. 밥을 짓는 동안 부인이 단발머리 여자를 가리키며 시골에서 와 자취하며 제주여자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 했다. 그게 무전여행 중 처음 얻어먹은 밥이었다. 무전여행을 떠나는 순간 가장 부담됐던 것이 밥을 얻어먹는 것이었다. 그렇게 걱정스럽던 밥을 얻어먹고 나니 밥 걱정도 말끔히 가셨다.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낮엔 삼성혈 등 시내를 구경했다. 해가 지고 밤이 됐다. 마침 서울에서 무전여행을 왔다는 한 일행을 만났다. 그들이 잠잘 곳을 가르쳐 줬다. 경찰서 앞 관덕정에서 잠자면 된다고 했다. 집을 떠난 이틀 사이 뻔뻔스러운 사람이 돼버렸다. 밤이 돼 관덕정으로 갔다. 관덕정은 마치 육지에서 무전여행 온 학생들로 바글거렸다. 잠을 자고 아침밥을 얻어먹고 한라산을 향해 출발했다. 한라산 입구 관음사를 거쳐 등산길에 올랐다. 탐라계곡 개미허리를 지나 백록담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늦었다. 비상용으로 준비한 미숫가루를 물에 타 끼니를 때웠다.

다음 날, 하산하여 서귀포에 도착했다. 불과 3일 사이 밥 얻어먹는 것, 잠자는 것, 걱정이 말끔히 사라졌다. 잠은 주로 교회, 관공서 당직실, 경찰서 파출소로 가서 자고 밥은 집안에 정원이 있어 꽃도 가꾸고 비교적 부유하다 싶은 집을 골라 해결했다. 아침밥은 주로 잠을 재워준 곳에서 해결했다. 늦잠을 자는 척 누워있으면 깨워 밥을 먹자고 했다. 그래서 아침을 해결하고 출발한다. 그렇게 27일 동안 제주도 해안과 산악지역을 걸어서 일주했다. 그때 일들이 60여 년이 됐는데도 생생하다.

무전여행으로 얻은 건 삶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어떤 경우도 몸만 건강하면 살 수 있다는 자신감과 배짱이 생겼다. 그때 했던 무전여행이 지난 세월 살면서 크게 도움이 됐다. 무전여행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도움이 필요할 땐 솔직하고 정직하게 도움을 청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도와줬다. 이 사회에는 좋은 사람이 참 많다. 중요한 것은 성실한 삶이다. 성실한 삶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내겐 그때 무전여행이 내 삶의 지렛대가 됐다. 무전여행이 내게 배짱, 용기를 갖게 했다. 젊은이들에게 부탁하는데 단 이틀만이라도 돈 없이 여행을 해보라. 살아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