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 중 / 전 호남교육신문 기자 / 전 전교조 영암지회장 / 전 전교조 전남지부장 / 현 구림공업고등학교 영어교사
김 기 중 / 전 호남교육신문 기자 / 전 전교조 영암지회장 / 전 전교조 전남지부장 / 현 구림공업고등학교 영어교사

두 노인이 있었다. ‘에핌’은 부유했고, ‘엘리사’는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았다. 절친인 두 사람은 엘리사의 권유로 함께 예루살렘 순례 여행을 떠난다. 에핌은 두고 온 집안일 걱정으로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엘리사는 집안일은 잊고 그저 기쁨에 차서 걸었다. 달포쯤 걸어 소아시아에 다다랐을 무렵, 끝내 가뭄과 흉작이 들었고, 엘리사는 목이 말랐다. “곧 뒤따라 가겠다”며 에핌을 먼저 보내고, 물 한 잔 얻어 마시기 위해 한 오두막으로 들어간 엘리사, 그곳에서 그는 가엾은 사람들을 보았다. 기근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노파와 아들 내외 그리고 손주들, 그는 당장 배낭을 풀어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구해주고 그들의 사연을 듣느라 하룻밤을 함께 했다. 

다음 날, 그는 떠나려고 했으나 저당 잡힌 목초지를 찾아 주느라 하루를 더 머물렀다. 그 다음 날도 목초지를 경작할 암소와 말을 구해주느라 떠나지 못했다. 며칠이 지났을까, 그 불쌍한 사람들은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그제서야 말없이 떠나는 엘리사, 남은 돈은 고작 17루블이다. 그 돈으로는 바다 건너 예루살렘 성지에 갈 수 없다. 그래서 흔쾌히 집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친구 에핌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성전에 자신의 촛불도 밝혀줄 것이라고 믿기에 마음만은 가볍다. 그는 가족들에게 성지에 가지 못하고 먼저 돌아온 자초지종을 굳이 말하지 않는다. 가족들 또한 캐묻지 않는다. 엘리사는 ‘무엇이 나에게 더 중요한가’를 따져볼 겨를도 없이 그저 그들에게 가엾은 마음이 들어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엘리사의 자비와 선행으로 그들은 살게 되었고, 엘리사 또한 참된 기쁨을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두 노인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한국전쟁’을 관통했던 이념대결이 첨예했던 시절, 각자 아들들을 동족상잔의 싸움터에 빼앗기고 노심초사하는 어머니들이다. 1인칭 관찰자인 소년 ‘동만’은 이들에겐 친손자이자 외손자이다. 외할머니가 친할머니 집으로 피난 와서 함께 살면서 장마가 지루하게 계속되던 어느 날, 국군 소위로 전쟁터에 나간 외삼촌이 전사했다는 통지가 온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외할머니는 충격을 못 이기고 빨치산에 대한 저주를 퍼붓는다. 그러자 빨치산이 되어 산속에 숨어 지내는 아들을 둔 친할머니도 분노하여 두 노인은 크게 대립하게 된다. 평온한 일상을 앗아 가버린 전쟁과 폭력, 이념 대립, 지리한 장마까지도 어린 동만의 눈엔 그저 야속하기만 하다. 

빨치산이 된 아들이 언제 돌아올 것이라는 점쟁이의 말을 듣고 친할머니는 음식을 차려놓고 아들이 돌아 올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러나 그 날이 되어도 삼촌은 돌아오지 않고, 그 대신 구렁이 한 마리가 나타나는데, 이를 죽은 아들이 변한 것이라 생각한 친할머니는 별안간 실신하고 만다. 이때 외할머니가 나서서 감나무를 칭칭 감고 있는 구렁이를 달래서 대밭으로 보낸다. 정신을 차린 뒤 이 일을 알게 된 친할머니는 외할머니에 대한 미움을 거두고 서로 화해한다. 두 노인 모두 동족상잔의 비극 앞에서 같은 피해자임을 확인하고 서로에게 연민을 갖게 되는 것이다. 비록 화해한 지 불과 일주일 후에 친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지만, 자비와 용서를 함께 나눈 두 노인의 삶은 긴 장마가 걷히듯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되었다.

첫 번째 두 노인은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중 하나인 ‘두 노인’의 주인공들이다. 톨스토이는 ‘두 노인’ 외에도 ‘이반 일리치의 죽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 일련의 단편들을 통하여 종교적이면서도 교훈적인 삶의 의미들을 제시해주고 있다. 또한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등 주옥같은 대작들을 남긴 대문호이기도 했지만, 정작 본인의 삶은 순탄치 못했던 것 같다. 위대한 작가로서의 명성은 얻었지만,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과 복잡하고 모순된 성격, 가정생활의 불화와 그로 인한 자괴감의 악순환이 늘 그를 괴롭혔을 것이다. 이와 같은 개인적인 나약함과 한계 속에서도 그를 세계적인 대문호의 반열에 오르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현실에서 자꾸 멀어져만 가는 삶의 의미를 작품 속에서나마 찾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기에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사랑과 자비, 용서의 메시지야말로 그에게 힘든 현실을 극복하고 작품활동을 지속하게 해 준 일종의 자양강장제였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 두 노인은 윤흥길의 소설 ‘장마’의 등장인물들이다. 이 소설이 1973년에 발표되었으니 올해로 48년째, 꽤 긴 시간이 지났지만, 오늘부터 장마가 시작되어서인지 유독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더구나 지난주가 한국전쟁 발발 71주년이었으니, 이제 이 소설의 메시지를 음미하며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길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무엇보다 외세를 극복하고 자주평화통일의 시대를 함께 열어가야 할 것이다. 한층 격화되는 미·중 대결의 틈바구니를 뚫고 꿋꿋이 전개되고 있는 순수 민간 차원의 운동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 오는 7월 27일 정전협정 68주년 ‘종전 평화를 향한 시민들의 국제행동’이나 ‘남북철도 잇기 한반도 평화대행진’ 등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리하여 향후 지속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반도 종전 평화협정(선언)을 축으로 하는 공동행동에 우리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