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 홍 /  서호면 몽해리 전 목포시 교육장 전 전남교육청 장학관 전 목포석현초 교장
이 기 홍 /  서호면 몽해리 전 목포시 교육장 전 전남교육청 장학관 전 목포석현초 교장

인류를 변화시킨 세 개의 사과란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세잔의 사과를 말한다. 이브의 사과가 유혹의 사과라면 뉴턴의 사과는 의문의 사과이고, 세잔의 사과는 고독의 사과이다. 이브의 사과가 종교를 의미한다면 뉴턴의 사과는 과학을 말하고 세잔의 사과는 예술을 음미한다. 

이브의 사과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보여준다. 달콤한 맛의 치명적 유혹을 나타낸다. 창세기에 나오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는 신이 먹지 말라고 한 열매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된다. 금지된 과일을 먹음으로써 인간은 신의 능력인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얻었지만 금기를 깬 죄의 대가로 낙원을 떠나 생사의 고통을 겪게 되고, 뺏고 빼앗기는 굴레에 살게 된다. 상큼한 과육과 달콤한 과즙으로 이뤄진 사과는 어떤 위험도 무릅쓸 만큼 영원한 욕망으로 운명적인 빨간 유혹이 되고 만다. 이브의 사과는 원죄로 이어져 기독교를 탄생시켰고, 기독교 문명은 인류사의 주역이 되어 문명충돌의 주인공이 된다. 십자군 전쟁(11세기 말), 문예 부흥(14세기 말), 종교 개혁(16세기 초) 같은 굵직굵직한 사건으로 세상을 바꾼다. 그래 이브의 사과는 인류를 변화시킨 것이다. 

뉴턴의 사과는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을 보여준다. 뉴턴은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였고 수학자였다. 케임브리지 대학생 시절 페스트를 피해 고향 마을에 있으면서 우주에 작용하는 근본적인 힘에 대해 생각에 잠겨 있다가 때마침 머리 위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생각하게 된다. 1687년 뉴턴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는 책을 통해 만유인력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뉴턴의 만유인력은 약 200년간 받아 들여져 과학계를 지배하게 된다. 영국 링컨셔 뉴턴의 고향 원목으로부터 4대째 가지 접목한 사과나무가 나주시 금천면에 있는 전남창의융합교육원 청사 뜰에 심어져 있다. 이는 1978년 주한 미국 개발처를 통해 전달된 것이다. 떨어지는 사과는 만유인력의 단초가 되었으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함께 현대 과학의 양대 근간이 되어 통일장 이론으로 융합되고 우주의 생명과 비밀을 밝히고 있다. 

세잔의 사과는 감성적인 인간의 불가 항력적인 고독을 보여준다. 19세기 틀에 박힌 가치를 부정하고 현대 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간 세잔은 1839년 프랑스 남부에서 부유한 집 아들로 태어난다. 세잔은 사과를 그릴 때 사과를 그리는 시간보다는 관찰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는 항상 세상과 더불어 살지 못하여 상처받고 괴로워한다. 1897년 어머니 사망 후에는 아내와 젊은 시절의 친구마저 외면한 채 스스로 고독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다. 그가 떠난 텅 빈 화실에는 그리다 만 정물화와 바닥에 뒹구는 시든 사과만 남아 있게 된다. 나는 재직시절 세잔의 사과 그림 복제품을 학교 복도에 걸어놓고 하루에도 두 번씩 마주했다. 폐렴에 걸려 고독과 함께 죽어간 세잔이 사과를 통해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세잔의 사과는 나에게 말을 건넨다. 너도 나처럼 고독과 함께 지내느라 얼마나 힘드냐고. 그래 난 세잔이 그린 사과만큼은 결코 껍질을 벗기고 싶지 않다. 

과학과 예술과 종교는 어떻게 다른가. 과학은 설명이 가능한 것이고 예술은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며, 종교는 결코 설명을 하려고 덤벼들면 아니 되는 것이다. 그림이 아름다운 것은 과학적으로 그려져서가 아니다. 그냥 아름답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이는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 감성의 영역이다. 뜨거운 감성의 반응을 인수분해나 삼단논법 따위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요즘 종교로 인해 적잖은 집에서 갈등이 일고 있다. 고부간에, 시집과 친정 간에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고, 그 파고가 가화만사성을 허물고 있다. 이는 아마도 설명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왜 절을 하지 않는지, 왜 절을 해야 하는지, 따지고 묻기에 생기는 일일 것이다. 종교는 설산의 계곡처럼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 무슨 설명을 요구하거나 설명을 하려 해서는 아니 된다. 서로 행복한 거리를 두고 침묵 속에 바라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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