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 중 / 전 전교조 영암지회장 전 전교조 전남지부장 전남교육연구소 이사장 현 영암전자과학고 교사
김 기 중 / 전 전교조 영암지회장 전 전교조 전남지부장 전남교육연구소 이사장 현 영암전자과학고 교사

네댓 살 시절, 비몽사몽 중에 눈을 뜨면 부엌으로 통하는 문지방 틈새로 낙엽 타는 냄새가 코끝을 스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부스스 잠에서 깨어 부엌으로 갔다. 엄마는 그날도 마른 솔잎을 태우고 계셨다. 곁에 쪼그려 앉아 가만히 아궁이를 응시한다. 사나흘 전 함께 뒷산에서 긁어 온 솔가리들이 파란 불꽃을 내뿜으며 타닥타닥 잘도 탄다. 싸한 새벽 공기를 뒤로한 채 연기와 온기를 함께 마신다. 다 탄 재가 아궁이에 소복이 쌓이고 솥에서는 밥이 다 될 때까지 엄마는 말이 없다. 솥뚜껑 틈으로 찰진 밥물이 뚝뚝 떨어진다. 엄마는 이내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치곤 하셨다. 그럴 때마다 한바탕 불꽃을 피우고 미련 없이 산화한 한 움큼 재들이 늘 엄마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쌓인 먼지를 털어내듯 깊은숨을 내쉬며 그렇게 마음 청소를 하셨던 어머니, “아이고, 우리 이쁜 강아지!” 하시며 비로소 가벼워진 마음으로 행복해 하셨던 어머니, 오늘은 그분의 기일이다.

어머니와 함께했던 ‘마음 청소’ 의식은 고등학생 시절까지 이어졌다. 중학교까지 시골에서 다녔던 나는 고등학생이 되자 광주에서 자취를 해야 했다. 콩나물 시내버스로 등하교하던 시절, 허허롭고 썰렁한 자취방은 나를 그저 슬프게 했다. 수학·영어를 따라가기 위해 주말도 기꺼이 반납했던 의지력 강한 시골 출신 아이들과는 달리, 나는 주말만 되면 쪼르르 시골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그리고 토요일 밤마다 솔가리며 나무 그루터기를 태우며 어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말수가 적은 어머니도 이때만은 예외였다. 동네 누구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비중 있는 뉴스부터, 누구네 딸은 공장 생활로 번 돈으로 자기 엄마 옷 해드렸다는 가정사까지, 이날만은 기꺼이 동네 리포터가 되셨다. 그러다가 불꽃이 사위어 이내 재가 되면 우리의 의식도 끝이 났다. 내일이면 그 재가 밭에 뿌려져 새 생명을 키워내듯 우리의 이야기도 늘 다음 주 새로운 시작을 예약해 놓고서 말이다.

20여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도 나는 태움 행위를 통하여 어머니와 만나고 있다. ‘몸이야말로 자신과 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프랑스의 철학자 메를로 퐁티(1908~1961)가 말했던 것처럼, 가다 넘어지기를 반복하며 자전거 타기를 머리가 아닌 몸으로 습득했던 것처럼, 나의 태움 행위 또한, 타오르는 불꽃의 온기와 마지막 남은 한 줌 재의 숭고함과 그 속에 아로새겨진 어머니의 사랑에 응답하는 자연스러운 몸짓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점점 태울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살게 되었다. 태워도 더 이상 재가 되지 못하는 현실은 또 어쩌란 말인가. 마른 솔잎을 한가득 태워 재를 수북이 얻는다 해도 우리 마음의 텃밭에 뿌리지 못한다면, 고교 시절 썰렁한 자취방의 고독보다 더 슬프지 아니한가.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우리의 육지와 바다가 태워도 태워도 절대로 재가 될 수 없는 것들로 뒤덮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농촌 들녘이나 골목 어귀를 걷다 보면 종종 무언가를 태우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과 마주친다. 젊은 시절 아궁이에 불을 지펴 자식들을 키우고 가르쳤던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이다. 어머니는 솔가지를 지펴 밥을 짓고 아버지는 장작불로 쇠죽을 끓여 자식들 등록금을 마련했던 시절, 힘들고 고단했지만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마음을 다잡고 힘을 내던 시절이었다. 태움에 익숙한 이분들에게 ‘아무거나 막 태우지 마세요!’라고 선뜻 말하기가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여전히 과민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제는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것들과 과감히 결별을 선언할 때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 모두가 ‘공동의 집인 지구’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불편을 감수할 것을 서약하고 이를 생활화 해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혹자의 표현대로, 석기시대(stone-age)에서 철기시대(iron-age)로, 이제는 ‘plastic-age’라 일컬어질 만큼 우리 삶 속에 깊게 뿌리 내린 각종 플라스틱 제품들, 편리함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효자 노릇을 하고 있지만, 만들어지는 데 5초, 쓰고 버려지는 데 5분, 분해되는 데 500년이라니 그저 놀라운 따름이다.

지난 5월 31일, 제26회 ‘바다의 날’을 보내는 마음은 그 어느 해보다 각별했다. 장보고 장군이 완도(장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활발하게 해상 활동을 했던 역사를 기리고, 우리 또한 바다 자원을 개발 보존하고 후세에 물려줄 것을 다짐하는 날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갈수록 심각해지는 해양 쓰레기 문제에 함께 대처해야 하는 절박함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이제는 멀리 태평양 쓰레기 섬까지는 못 가보더라도 가까운 해변이라도 자주 들러볼 일이다. 바다 쓰레기의 거의 전부라 할 만큼 심각한 각종 플라스틱 퇴적물들, 숱한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고운 모레처럼 잘게 잘게만 부서져 가는 미세 플라스틱의 정체를 확인해 볼 일이다. 그리하여 이 미세 플라스틱을 먹이로 삼고 있는 작은 물고기들과 그 작은 물고기들을 먹고 살아가는 더 큰 물고기들, 결국 그것들을 매일 먹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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