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 홍 /  서호면 몽해리 전 목포시 교육장 전 전남교육청 장학관 전 목포석현초 교장
이 기 홍 /  서호면 몽해리 전 목포시 교육장 전 전남교육청 장학관 전 목포석현초 교장

10여 년 전, 목포시내 학교장을 하던 때 일이다. 그 때 나는 매일 아침 수업이 시작되기 전과 퇴근하기 전, 하루에 두 번씩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을 둘러보았다. 그것이 학교장 소임의 시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이달의 노래’라고 해서 학교방송을 통해 매월 새로운 노래를 가르쳤는데, 당시 내가 근무한 학교의 11월 노래는 ‘꼴찌를 위하여’였다. 3월에도 노래가 있었고, 지난 달에도 노래가 있었는데, 마치 이번 달에만 노래가 있는 것 마냥 11월에는 교정의 아침이 노랫소리로 가득했다. 1층에 있는 교실에서부터 4층에 있는 교실에 이르기까지, 동편에 자리한 교실에서부터 서편에 자리한 교실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다른 달에 부른 노랫소리보다 유난히도 절절하게 들려왔다. 

왜 그럴까? 사방이 왜 이리 노래로 가득할까? 그러나 난 그 이유를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능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등 아빠, 1등 엄마를 향한 아우성이거나 미소로 위장한 은근한 압박에 대한 항변임이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이다.
 
‘바쁘게 달려가는 친구들아 손잡고 같이 가보자. 어설픈 일등보다는 자랑스러운 꼴찌가 좋다. 가는 길 포기하지 않는다면 꼴찌도 괜찮을 거야.’

나는 오래 전부터 앞으로의 교육은 이기는 교육이 아니라 지는 교육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져도 울지 않고, 져도 상대를 원망하지 않는 교육을 시켜야 진정으로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난 고등학교 시절에 학교에서 정규교과로 유도를 배운 적이 있다. 2년 동안 계속된 유도 시간의 대부분은 낙법을 익히는 데 쓰여졌다. 상대를 넘어뜨리는 기술보다는 상대에게 넘어져도 다치지 않는 낙법을 2년 동안 배우고 또 배웠다. 당시에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수도 없이 넘어지면서, 낙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난 깨달았다.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누구나 그리했겠지만 나 역시 여러 차례 넘어졌다. 그리고 상처를 입었다. 아팠고 가끔은 괴로웠다. 그러나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기 보다는 넘어져도 결코 많이 다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고, 남들이 시선을 거둘 때 슬며시 일어나 다시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내가 왜 넘어졌는가는 저절로 깨달아졌다. 그러는 동안 나를 넘어뜨린 그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느 사이 약해져 있었고 나와의 후반전 경쟁에서 상대가 되지 못했다. 

꼴찌는 정지 화면상에 나타나는 현상이지 결코 연속 동작은 아니다. 꼴찌가 소중한 자산이라면 가급적 어린 시절에 경험하도록 하여 다시 일어나는 연습을 하도록 해보는 것이 어떨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시청률 최고치를 경신한 1여 년 전에 끝난 모 방송의 미스터 트롯경연때 임도형 군이 탈락하고 눈물을 쏟으며 토해낸 “공부가 제 운명인가 봐요”라는 멘트는 단연 최고였고 방송을 살렸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많은 시청자를 감동시켰다. 분명 임도형 군은 트롯 가수가 아니더라도 대성하고야 말 것이다.

10여 년 전 당시, 서기 어린 11월의 아침에 난 절절한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결의를 더욱 굳게 다졌다.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게 가르치자. 단지 다시 일어나지 못함을 두려워하게 하자. 그래 끊임 없이 다시 일어나는 연습을 나부터 열심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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