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171) 마한 르네상스를 선도하는 영암

내동리 쌍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편, 그리고 마한의 상징 옥(玉) 등 영암 시종의 마한 유적·유물은 이 지역이 영산 지중해의 입구에 위치하여 ‘마한 르네상스’ 문화를 선도한 곳임을 설명해주고 있다.
내동리 쌍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편, 그리고 마한의 상징 옥(玉) 등 영암 시종의 마한 유적·유물은 이 지역이 영산 지중해의 입구에 위치하여 ‘마한 르네상스’ 문화를 선도한 곳임을 설명해주고 있다.

전북의 뒤늦은 공동 대응

전라북도는 최근 마한 역사문화권의 체계적 정비와 발전을 위해 14개 시·군, 박물관 등과 공동 협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협약에는 도내 모든 지자체를 비롯해 국립익산박물관,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전북연구원 등 5개 유관 기관이 참여했는데, 이들 기관은 마한 유적의 체계적 발굴조사, 국가예산 확보 등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마한사 규명과 정체성 확립 및 위상 정립을 위해 발굴조사, 학술연구, 홍보활동, 마한 역사문화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자체사업 발굴, 국가계획 반영, 동아시아 고대문화 해양교류 중심지인 마한 역사문화권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관리기반구축 등을 주요 사업으로 내걸었다. 

전라북도가 이처럼 마한 역사문화권의 지속적인 공동 발전을 위해 발전협의회를 구성·운영하고자 한 것은 2020년 5월 제정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마한 역사문화권이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마한시대 유적·유물에 한정되자 위기의식의 발로에서 비롯되었다. 전라남도와 영암군이 ‘마한 특별법’ 제정에 혼신을 다할 때, 그 지역에서는 ‘○○가야사’가 주장되고 그것을 입증하기 위한 대규모 학술용역이 추진되고 있었다. ‘차 떠난 뒤에 손을 드는’ 형국이다. 같은 마한 문화권의 핵심지역인 인근의 광역자치단체조차 ‘마한 특별법’ 제정에 무관심하다가 관련법이 제정된 후에야 학술 세미나를 지난해 겨울에 여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 과정을 누구보다 옆에서 지켜본 필자로서는 안타까움보다는 씁쓸한 느낌을 지우지 않을 수 없다.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 마한이 포함되도록 가장 앞장섰던 영암군은 마한역사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영암군은 열악한 재정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이벤트성 행사보다 마한 관련 학술연구 및 발굴조사, 마한 체험활동 등을 체계적으로 추진하여 궁극적으로 마한 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영암의 발전 동력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이러한 영암군의 노력에 대해 전공학자로서 고마움을 느낀다. 이러한 행정당국의 취지를 이해하고 도움을 아끼지 않는 의회의 역할에도 감사를 표한다. 여기에는 마한사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영암군민의 뜨거운 응원이 밑바탕에 있음을 잊어져서는 안 된다.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는 유물·유적

‘마한 특별법’이 통과되어 국비 지원이 가시화되자 전남 여기 저기서 마한과 관련된 사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런데 왜 마한을 특별법에 포함하려 하는지에 대한 의도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마한의 정체성이 전라도의 정체성과 연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막상 마한의 정체성이 무엇이고, 그것이 전라도 정체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물어보면 공허한 답만 나온다. 이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필자가 다루며 지적하였지만,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이 ‘백제’의 금동신발로 보물 지정되어도 지역의 전문학자, 언론, 필부 등 평소 그렇게 ‘마한’을 얘기하던 이들조차 언급한 사실을 보지 못했다. 모두들 그것을 ‘백제의 금동신발’로 보는 셈인데, 그러하다면 5세기 후반, 이 지역은 여전히 백제의 영역이 되는 것이고, 백제문화의 영향권에 있는 것이 된다. 마한의 독자적 문화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필자는 마한의 중심지이자 마한문화 발상지가 ‘영산 지중해’ 일대라는 주장을 줄곧 해왔다. 이는 문헌과 출토 유적·유물에서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영산 지중해의 중심을 나주반남·영암시종 일대로 보고 있다. 영암시종 일대의 수십 기에 달하는 거대 고분군과 출토 유물은 이 지역이 마한 중심지라는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다. 

혹자들은 이 지역이 마한의 중심지라는 사실을 거대 고분군을 가지고서 설명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하지만 고분의 규모만 가지고 설명하기에는 너무 막연하지 않겠는가. 또 다른 이는 이곳에서 출토된 독무덤도 이 지역의 마한문화의 특성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옳은 얘기이다. 그러나 독무덤이 왜 마한문화의 특성인지에 대한 설명이 따르지 않고 독무덤이 거대하니까 이  지역을 대표하는 마한 유물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너무 막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는 현재의 역사

필자는 영산 지중해의 마한의 역사성은 대륙문화와 해양문화가 교류·융합하여 새로운 문물이 창조되어 동북아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고 하는 데서 그 역사적 의의를 찾아야 한다고 여러 차례 얘기하였다. 그것은 지리적인 위치에다, 이곳에서 확인된 수많은 유물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독무덤만 하더라도 국립나주박물관에 진열되어 있지만 한국, 베트남, 중국 등과 교류를 한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남해신사 역시 교류·융합의 사실을 알려주는 대표적 고대 해양신앙 유적이다. 이미 고려 초에 기록에서 확인되고 있는 남해신사가 차지하는 역사적 위치를 어떻게 마한과 연결을 짓고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의 해양신앙과 비교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 마한의 고유한 해양문화로 설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왜와 가야의 교류를 보여주는 방대형 고분, 인골이 출토된 옥야리 고분, 금동관편이 출토된 쌍고분, 모든 고분에서 엄청나게 쏟아져 나온 마한의 상징 옥(玉) 유물 등 영암 시종의 마한 유적·유물은 이 지역이 영산 지중해의 입구에 위치하여 ‘마한 르네상스’ 문화를 선도한 곳임을 설명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확인된 유적·유물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할 때 비로소 우리 지역의 마한사는 새롭게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라 믿는다.  

이태리의 위대한 역사가인 크로체(B.Croce)는 “역사는 현재의 역사다”라고 하여 역사의 현재성을 강조하였다. 마한사의 의미를 단순히 마한 시대에 국한을 시켜 해석한다면 그것의 의미는 반감될 것이다. 마한사가 지니는 정체성을 이후 우리 역사의 전개와 연결지어 해석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곧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이 다가온다. 5·18민주화운동에서 발현된 공동체 정신을 마한사에서 찾을 수 있다. 마한은 우두머리가 백성들과 서로 함께 살았다고 하는 기록이나 대·소 세력 차이가 큰 진한·변한과 달리 정치체 사이의 세력 차이가 크지 않다는 마한의 사실은 정치체 사이에 공존할 수밖에 없었다. 영암에서 독자적 청동기 문화를 설명해주는 거푸집이 출토된 것도 새로운 문물의 교류·융합이 활발히 이루어졌던 이 지역의 지정학적 위치와 관련이 있다 하겠다. 이러한 전통이 현재에 이어지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찾아내어 이 지역의 정체성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계속>
  글=박해현(문학박사·초당대 교양교직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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