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 중  전 전교조 영암지회장 전 전교조 전남지부장 전남교육연구소 이사장 현 영암전자과학고 교사
김 기 중  전 전교조 영암지회장 전 전교조 전남지부장 전남교육연구소 이사장 현 영암전자과학고 교사

인체는 자연의 축소판이다. 산과 강이 하나로 어우러져 바다로 돌아오듯이, 동맥과 정맥도 상호 작용을 하며 심장으로 귀환한다. 울창한 산림이 산소와 에너지를 선물하듯 동맥은 우리에게 산소와 영양분을 배달해 준다. 강이 대지를 감싸 안으며 바다로 흘러가듯 정맥 또한 온몸의 탄소와 노폐물을 품고서 심장으로 모인다. 산과 강은 하나다. 어느 것이 먼저랄 것도 없다. ‘산천’이라 해도 좋고 ‘강산’이라 해도 좋다. 그저 한몸을 이루면 그만이다. 산과 강이 하나가 되지 못할 때 우리의 대지는 병들게 된다. 여태껏 성장과 개발의 논리에 묻혀 산은 산대로, 강은 강대로 방치되어왔다. 인체 또한 동맥과 정맥이 따로 놀게 되면 혈액 순환 장애와 함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다. 우울한 기분이 가장 먼저 침투하여 각종 질병을 불러들인다. 지금 그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코로나 자체보다 ‘코로나 블루’에 주목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결국, 코로나19 극복이란 산과 강을 하나로 회복시키는 데서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어린 시절 냇가에서 놀다 보면 하루해가 벌써 지곤 했다. 우리는 학교 파하기가 무섭게 책보를 내던지고 동구 밖 시냇가로 내달렸다. 얼굴이 비칠 듯한 맑은 물에 몸을 맡긴 채 송사리와 가재 잡기에 싫증이 나면, 돌 틈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다슬기를 잡았다. 미세 카메라에나 잡힐 듯이 느릿느릿 플랑크톤을 먹는 녀석에게 정신이 빠져 있는 동안, 어느새 또래 개구쟁이들은 단숨에 ‘큰보’로 달려가 다이빙과 자맥질을 즐기곤 했다. 이럴 때 동요야말로 우리의 빠질 수 없는 단골 메뉴였다. 물수제비를 뜨며 ‘퐁당퐁당’을, 종이배를 띄우며 ‘나뭇잎 배’를, 물가 잔디밭에 누워 ‘푸른 잔디’를 불러댔다. 그중에서도 나는 ‘엄마야 누나야’를 가장 즐겨 불렀다. 누나가 없던 나에게는 ‘누나’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강변 살자’, ‘금모래 빛’, ‘갈잎의 노래’ 같은 김소월 시인의 서정적인 노랫말이 좋았다. 이 아름다운 노랫말에 ‘부용산’의 작곡자로 잘 알려진 나주 남평면 출신 안성현 선생이 곡을 썼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남평 드들강(지석천)도 사랑하게 되었다. 

대동맥과 대정맥은 소동맥과 소정맥으로 이어지고, 결국 이들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것이 온몸에 그물망처럼 퍼져있는 모세혈관이라고 들었다. 동맥이 심장에서 발원하여 퍼져나간다면, 정맥은 모세혈관에서 반환점을 돌아 다시 심장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모세혈관이야말로 인체 혈액 순환의 일등 공신이요, 건강의 척도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자연의 모세혈관은 어디일까? 크고 작은 강물이 제각각 산에서 발원하여 실개천을 이루고, 실개천이 샛강이 되고, 샛강들이 모이고 모여 마침내 바다로 가는 여정 중, 어느 지점에 있을 것이다. 전국의 산골짜기에서 제일 가까운, 그러면서도 냇가의 기능과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실개천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제는 4대강 개발의 허상에 묻혀 갈 길을 잃고, 이름조차 빼앗겨버린 무수한 실개천들을 살려내야 한다. 폐비닐과 농약병과 쓰다 버린 잡동사니들, 반쯤 타다 만 플라스틱과 고무 쓰레기 더미에서 이들을 구출해내야 한다.

금강산이 동해에서 발원하듯이, 남도의 소금강 월출산은 서해에서 발원한다. 영산강이 추월산 ‘용소’에서 발원하듯이, 영산강의 지천 ‘영암천’도 월출산 어디에선가 시작될 것이다. ‘천황봉’에서 시작되어 ‘사자봉’일지, ‘연실봉’일지, ‘매봉’일지, 아니면 ‘사자저수지’일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에 ‘구름다리’까지 올라 보니, 와! 눈앞에 멋진 장면이 펼쳐진다. 무려 40만 평에 달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유채꽃 단지, 전국 최대를 자랑하는 월출산 구름다리와 어우러져 그야말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유채 농사를 지어 ‘카놀라유’로 얻게 되는 부가가치보다도, 유채꽃 군락과 주변 경관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천연 관광지로서의 가능성과 기대감이 훨씬 더 크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대규모 축제 장마당을 펼치지는 못하고 있지만, 지금도 전국에서 꾸준히 찾아와 멋진 광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지척에 두고 살면서도 그동안 미뤄왔던 유채밭 산책을 시작한 지도 두 주째 접어들었다. 퇴근 후 아내와 함께 유채밭 사이를 걷노라면 콧노래가 절로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감흥도 잠시, 강진 성전에서 영암읍을 경유하는 ‘예향로’ 다리 밑 실개천에 이르면 금시에 실망감이 밀려온다. 냇가 턱에 넓게 드리워져 있는 흉물스러운 쓰레기 무단 투기와 소각의 현장이 바로 그것이다. 무엇보다도 관련 행정 당국이 시급히 나서서 영암천 상류 살리기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지역 주민과 관광객, 자동차 이용객들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고, 지역 민간단체들과 공조하여 강변 정화작업을 전개해야 한다. 모든 쓰레기를 치우고, 물길을 터주고, 잡풀을 제거하고, 강턱에는 꽃밭을 조성해야 한다. 강둑에 시와 음악이 있는 벤치를 조성하여 산책객들의 쉼터로 만들고, 유채꽃과 어우러진 영암의 명소로 가꾸어나가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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