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166) 마한 실크로드 답사기(下)

마한왕국의 심장부로 마한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영암 시종. 남해포와 남해신사의 아련한 스토리가 담겨 있는 ‘마한 길’을 마한 토속음식을 맛보며 답사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사진은 시종 옥야리 고분과 시종 토속음식의 밥상.
마한왕국의 심장부로 마한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영암 시종. 남해포와 남해신사의 아련한 스토리가 담겨 있는 ‘마한 길’을 마한 토속음식을 맛보며 답사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사진은 시종 옥야리 고분과 시종 토속음식의 밥상.

‘마한 길’을 열자

최근 필자는 연달아 두 권의 저서를 출간하였다. 한 권은 본보에도 소개된 바 있는 ‘판결문으로 본 광주전남 3·1운동’이고, 다른 한 권은 역시 본보에 연재하고 있는 글을 토대로 서술한 ‘박해현의 새로 쓰는 마한사’이다. 두 책을 관통하고 있는 핵심 줄거리가 전개되고 있는 곳이 영암이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영암군민에게 늘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1919년 군서면 구림리와 영암읍에서 일어난 영암의 3·1운동은 주동자 및 적극 가담자 전원이 징역형을 받을 정도로 치열히 전개되었다. 이러한 영암의 항일정신은 한말 의병사를 찬란히 빛내는 ‘영암 의병’의 전통을 계승했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영암 의병이 주류 역사학에서 철저히 외면되어 왔듯이, 영암 3·1운동 역시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누락되는 등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청년 운동을 이끈 유혁, 광주학생운동을 이끈 최규창으로 이어진 영암의 빛나는 항일정신은 1930년대 영보 농민항일운동으로 활짝 피어났다. 

이러한 영암의 올곧은 정신사는 영국의 유명한 역사가인 카(E.H>Carr)가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의 기록이라 정의한 바 있지만, 마한왕국의 심장부를 형성한 마한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이러한 측면에서 영암의 정체성을 부각하여 마한 길, 의병 길, 독립의 길 등을 아름다운 월출산, 영산강 포구 등과 연결하는 ‘길’을 만들어 답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노력을 꾸준히 기울일 필요가 있다. 

참고로, 아래는 필자가 만든 답사길이다. 전남도청을 기점, 종점으로 하여 보았다. 

ⓐ전남도청-ⓑ왕인박사 유적지, 상대포-ⓒ용서와 화해의 위령탑-ⓓ구림 3·1운동기념탑·회사정·도기박물관·하정웅미술관ⓔ(점심)-기찬랜드(트로트기념관, 바둑기념관)-ⓕ내동리 쌍무덤-ⓖ마한공원·옥야리고분군·남해신사-ⓗ전남도청

ⓐ→ⓑ25.1km(22분)→ⓒⓓ0.4km(1분)→ⓔ8.6km(10분)→ⓕ4.4km(6분)→ⓖ2km(5분)→ⓗ27.7km(31분)

지난 호에 언급하였지만, 영암 시종의 마한고분(군)을 답사한 결과 정비·관리가 잘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외지인들이 고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안내도나 안내판 등의 보완과 지정되지 않은 고분 등에 대한 조사·관리가 시급함을 이야기하였다. 시종 인근에 국립나주박물관과 신촌리 고분군이 있다. 관광객들이 대개 국립나주박물관과 바로 앞의 반남 고분군만 둘러볼 뿐 근처의 시종 고분군을 잘 오지 않는다. 우선 교통편이 없거나 불편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막상 와서 보려 해도 고분 외에는 딱히 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마한문화공원 내 몽전 건물을 영암지역 출토유물이나 AR·VR을 보는 공간으로 꾸몄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지역의 역사와 인심·맛·멋 

관광객들이 그 지역을 찾는 것은 그 지역의 역사를 알고, 인심·맛·멋을 느끼기 위해서다. 영암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지만, 축제마다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많이 들어선다. 그러나 음식 메뉴들은 너무나 천편일률적인 경우가 많다. 그 지역에서 생산된 재료로 만든 토속적인 음식을 찾을 필요가 있다. 토속음식이라 하면 거창한 것이 아니라 흔히 볼 수 있는 우리네 밥상을 의미한다. 이를 맛깔스럽게 브랜드화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시종에는 마한시대 이래 토속식단이 시대에 따라 변형되기는 하였지만, 그 역사적 맥락이 여전히 남아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음식을 시종에서 찾아 ‘마한 밥상’이라고 명명하여 관광객에게 선보이면 큰 호응을 얻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정말 우연한 기회에 필자가 찾고 싶은 ‘마한 밥상’을 찾았기에 잠시 소개하려 한다. 필자의 얘기에 큰 의미는 부여하지 말고, 하나의 사례로 여겼으면 한다. 

필자는 영암에서 주민을 만나거나 강의실에서 영암출신 학생을 만나면 ‘영암신문’을 보는지를 묻는다. 그것은 2017년 7월부터 영암신문에 필자의 글이 연재되고 있어 신문을 읽는 독자들과 공감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번 답사길에도 영암신문의 위력을 느꼈다. 

마한문화공원에 인접한 옥야리 고분의 봉분에 올라 주변을 살펴보던 필자는 봉분 아래 밭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지금은 고인이 된 자신의 동생이 옥야리 고분발굴 때 참여하였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해준다. 필자는 영암신문을 보는지 물었더니 보고 있며 필자를 잘 안다고 했다. 영암군청 등에서 필자의 특강을 들었다는 것이다. 칠순 갓 넘은 노순금 여사였다. 처음 만났지만 반가웠다. 영암신문이 맺어준 인연이다.

마침 정오가 넘어서고 있었다. 점심 식사 전이라 옥야리의 옛 얘기를 듣고 싶어 식사하러 가자고 하였더니 집에서 대접하고 싶다고 하여 함께 간 연구원과 폐를 끼치게 되었다. 남해포와 마한의 여러 얘기를 하며 마한의 정체성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음이 느껴졌다. 

토속음식 ‘마한 밥상’

그런데 노순금 여사가 서둘러 차린 밥상에서 필자가 찾던 ‘마한 밥상’을 발견하였다. 그날 나온 반찬은 겨울의 땅 기운을 품은 봄나물인 원추리 식초 절임, 무, 배추, 파숙지, 젓갈, 냉이 된장국, 잡곡 영양밥 등이었다. 모두 시종에서 생산되는 재료로 만든 음식이라 한다. 원추리는 우리나라에서 옛날부터 사랑받아 온 나물로, 조선시대는 ‘물명고’(사전 원쵸리)라 하여 이미 그 이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멀리 마한 시대부터 내려온 나물이 아닐까? 원추리는 봄철에는 어린순을 나물로 해 먹거나 꽃봉오리로 튀김을 해 먹는다고 한다. 소박하면서도 입에 딱 달라붙는 맛에 두 공기를 후다닥 해치웠다. 마한 르네상스 답사길에서 얻은 큰 성과의 하나였다.

관광객들은 이러한 토속음식을 맛보고 싶어 한다. 남해포와 남해신사의 아련한 스토리가 담겨 있는 ‘마한 길’을 마한 토속음식을 맛보며 답사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시종을 중심으로 하는 ‘마한 실크로드’는 아직 외지인에게 낯선 곳이다. 이들이 찾는 기회를 만들고, 이러한 이야기가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고, 방송 등에 소개된다면 시종 고분군이 국가 사적지로 지정되고,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영암발전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시종은 대형 고분이 밀집된 고분군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이들 각 고분군은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다. 이들 고분군을 연결짓는 ‘마한 둘레길’(마한 실크로드)을 안내판 정비와 함께 조성하는 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둘레길 조성과 함께 ‘마한 자전거 트레킹 코스’를 개발할 것을 권하고 싶다. 시종은 낮은 구릉과 평야가 넓게 형성되어 트레킹에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1)삼포강을 정비하여 삼포강변을 달리는 자전거 트레킹 코스 (2)영산강 자전거길-마한 고분군 둘레길을 연결하는 자전거 트레킹 코스 (3)국립나주박물관·반남고분군-시종 고분군을 연결하는 트레킹 코스 등을 개발하고 코스 주변을 정비하면 인문환경과 자연환경이 조화된 최상의 역사 관광지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계속>
 
글=박해현(문학박사·초당대 교양교직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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