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 홍 /  서호면 몽해리 전 목포시 교육장 전 전남교육청 장학관 전 목포석현초 교장
이 기 홍 /  서호면 몽해리 전 목포시 교육장 전 전남교육청 장학관 전 목포석현초 교장

45여 년 전 일이다. 나는 월출산이 바라다 보이는 군서 구림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4학년을 담임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는 절대 빈곤의 시대를 겨우 벗어났고 학교는 그야말로 배움터로 학력 경쟁이 극심했다. 나는 한 아이도 빠짐없이 학력을 정착시키고야 말겠다는 오기에 가까운 마음으로 매시간 수업에 임했다. 수업시간 중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벌로 그 시간이 끝날 때까지 복도에 서 있도록 했고 그 시간이 끝나면 다음 수업에 참여토록 했다.

마침, 그 날 한창 열강 중에 양해명이와 또 다른 아이가 지적을 받아 복도로 나갔다. 그런데 다음 시간이 되어도 자리가 비어 있었다. 놀라 복도로 나가 보았으나 없었고 난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둘을 찾기 시작했다. 변소를 비롯하여 학교 구석구석을, 문방구를 포함하여 학교 근방을 찾았으나 없었다. 그러다 다른 반 아이가 해명이가 교문을 빠져나가는 것을 봤다고 했다. 당시는 신작로라고 해서 포장도 되지 않았고 교통 사정도 형편이 없던 시절이었다. 해명이와 함께 사라진 아이의 아버지가 한전의 전기 검침원으로 일하고 있어서 연락하여 함께 했다. 찾는 조를 나눠 지장개등인 해명이 집 쪽으로, 서쪽 방향인 독천 쪽으로, 동쪽 방향인 영암 쪽으로 오토바이와 자전거, 그리고 걸어서 뒤를 쫓았다.

그러다 오토바이로 찾으러 나선 전기 검침원 아버지가 영암터미널 대합실에서 광주로 가는 차를 기다리고 있는 두 아이를 발견해 학교로 데려왔다. 두 아이를 본 순간 화가 끓어올랐다. 왜 도망쳤느냐고 다그치자 소동이 난 학교의 분위기를 알아챘는지 두려움과 미안함에 눈물을 흘리면서 대답했다. 

“짜장면 집에 취직해 엄마 몸베 사 주려고 그랬어요.”

순간 난 말을 잃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서야 말했다. 

“해명아, 네가 지금 중국집에 취직하면 엄마 몸베 하나밖에 사 줄 수 없지만 공부해 취직하면 몸베 백 개도 더 사 줄 수 있고 아버지 양복도 사 줄 수 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날은 그렇게 끝냈다. 

그 후 10년이 흘렀을까. 하루는 고향집 시골 정류장에서 누군가 내 앞에 다가와 ‘필승’하며 거수경례를 했다. 놀라 쳐다보니 해명이었다. 젊음이 넘쳐났으며 팔뚝은 근육으로 가득했다. 부사관에 지원하여 지금 직업군인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 근무한 후 어느 정도 기반이 닦아지면 전역해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겠다는 포부를 말했다. 그러면서 그때 중국집에 갔더라면 엄마 몸베를 사줬을 터인데 지금도 아쉽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적잖은 시간 동안 정담을 나누다 헤어졌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후 해명이는 고향에 정착해 버섯 재배 농부가 되었고, 성실한 생활을 토대로 농토를 임차하여 논농사를 지었다. 최근에는 몇 년 전부터 축산에 뛰어들어 영암매력한우 사업을 하고 있다. 

얼마 전 우연히 서호강 주변 야산에서 두 아들과 함께 포클레인 작업을 하는 해명이를 만났다. 큰아들은 대학을 나와 군대를 마쳤고, 작은아들은 지금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큰아들은 자신의 축산업을 물려받기 위해 함께 일을 하고 있고, 작은아들은 버섯 농장을 물려받기 위해 기술을 배우고 있다고도 했다. 그리고 두 아들에게 자기 인생을 바로 잡아준 은인이라고 나를 소개하면서 그동안 내게 못다 한 자신이 걸어온 삶을 얘기했다. 전역 후 기어이 꿈을 이루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방치된 농가를 연 50만 원에 빌려 하루에 네 시간 잠을 자며 17년 정도 일했다고 했다. 기와대 들에 있는 논 중에서 자신이 안 벌어본 논이 없을 정도라고도 했다. 정보를 얻기 위해 면은 말할 것도 없고 농협, 군청, 농업기술센터까지 보폭을 넓히며 농촌에 들어오는 새로운 기술들은 선도적으로 받아들이고,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정부에서 지원하는 각종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최근에는 드론 기술을 익혀 자격증까지 취득해 드론 농업에 대비하고 있다고도 했다. 

해명이와 헤어지면서 난 생각에 잠겼다. 청년 해명이가 헤쳐 나온 그 가난과 중년 해명이가 일궈가고 있는 꿈이 겹쳐지면서 가슴이 아려왔다. 그때 왜 어린 해명이가 엄마 몸베를 사줄려했을까. 어쩌면 그 몸베는 엄마가 아니라 자신에게 엄습해오는 형벌 같은 운명에게 입혀주고 싶은 몸베가 아니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서호강 기와대 들에는 어느 사이 봄기운이 돋아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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