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묵한 성격의 남편을 두고 친척 어른 들은 가끔 나를 놀린다. 너는 대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하지만 그건 모른 소리다. 남편은 마치 의젓한 산 같다. 사람은 제 사는 곳의 자연을 닮기 마련인가. 도회의 중심가에서 그것도 형제없이 혼자 자란

까닭에 다소 고집 센 편인 나다. 매사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온갖 투정을 부리곤 하는 내게 넉넉한 미소로 일관하는 남편, 영락없이 그의 고향 산인 월출산 을 빼 닮았다. 그의 푸근한 웃음 앞에 나는 번번이 산기슭에 나풀거리는 한 송이 잠자리

난초가 되고 만다. 올려다보면 가파른 바위투성이라 처음 엔 까마득하고 무섭게만 보이던 시댁 뒷 산이었다. 그렇지만

언제부터인가 친정 나들이를 갔다 돌아오는 길 저 멀리에 산의 자태만 어렴풋이 눈에 들어와도 마음이 절로 훈훈해졌다.

부족한 큰며느리인 나를 당신들의 새로 맞은 딸처럼 사랑해 주시는 시어른들의 너른 품처럼 언제 보아도 정겨운 산이 월출산이다.난산이었다. 첫 산고의 고통, 그 단말마의 순간 내게 떠오르던 얼굴이 뜻밖에도 친정어머니가 아니라 시어머니였다.

어쩌면 어서 이 지독한 고통을 끝내고 월출산 아래의 내 집, 그 뜨끈한 방에 포 근히 눕고 싶었던 내 간절한 바램 때문이

었는지도 모른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와 시어머니의 정성 스런 산후수발을 받으면서야 비로소 그 연유를 깨달았다.

‘우리가 부모님의 함자를 함부로 입에 올리기를 꺼리듯이 몽골인들은 절대로 "보르항"이라는 그 산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몽골 말로 하느님이라는 뜻 의 산은 몽골의 창조신인 "보르항 박시" 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어느 지면에 실린 몽골의 산 소개 기사를 읽으며 나는 잠시 월출산과 나와의 인연을 생각 했다.

옛말에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에다 가도 절을 한다했다. 아닌게 아니라 너그러운 남편과 자상한 시어른들 덕택에 나는 시댁이 있는 영암 과 월출산을 어느 순간부터 열렬히 사랑하게 되었다. 특히 내가 월출산을 더더욱 가깝게 느끼게 된 것은 천왕봉 바로 아래에 자리한 시댁에 내 첫 둥지를 튼 때문이었으리라. 어느 사이 내게서 시어른들과 동격으로 되어 버린

월출산, 산이 주는 경외감에 그 산 이름 부르기를 주저하는 몽골인까 지는 흉내낼 수 없지만 어느 자리에서건 월출산의 자랑에 열을 올리는 나를 발견 하곤 그만 실소를 머금곤 한다. 맞다. 영암 사람들에게 월출산은 큰 축 복이다. 이 곳 사람들은 방안 치장을해 굳이 자연을 파괴하면서까지 무거운 돌 조각을 모으러 다닐 필요가 없다.

영암의 어느 집이건 마당에 나가 고개를 들면 아름드리 수석이 그대로 장관을 연출하는 월출산이 보이는데 또 무슨 욕심을 부떼는가. 이 고장이 신령스러운 바위라는 뜻의 靈岩이라는 특별한 지명을 얻게 된 것 도산 전체가 갖가지 수석 전시장인

월출 산과 무관하지 않다.<계속>

김윤정<영암읍 개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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