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은행과의 강제 합병 드디어 3월 25일. 목포항에서 인부들을 데리고 명량 대첩비를 뜯으러. 총독부의 철거반들이 우수영으로 들어간 날 남은행에도 은행합병에 따른 조건이 제시 됐다. 합병에 따른 총독부의 조건은 호남은 행의 중역진 총 퇴진이었다. 단 현준호는 취체역 회장을 맡고 김신석은 합병 주주총회 결의에 따라 상무로 앉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무송은 이러한 대우조건도 뿌리치고 말았다. 1942년 4월 8일. 호남은행은 결국 합병 상대를 초창기 이념을 같이 했던 동일은행으로 택해 은행업무를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말았다. 이날 중국에서는 국민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하는 안을 국방최고위원회에서 의결을 마쳤으며 리비서는 독일· 이탈리아 군(軍)이 공격을 개시한 날이었다.

호남은행이 동일은행과 합병을 한 것은 외견상 합병일 뿐, 내용상으로는 총독 부의 지시에 의해 강제 매수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이 사실은 안 뜻있는 조선인들은 모두 호남은행에 큰 성원을 보냈으나 이미 어 쩔수 없는 형편이 돼 버리고

말았다. 당시 상황에 대해 ‘조흥은행 60년지’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소위 大東亞 전쟁시에 日政의 극심한 기업정비책은 우리 민족에게 더욱 가혹하였으니 금융기 관을 예로 하건데,當 호남은행은 지방은 행으로서,소규모이나마 견고한

기반과 충실한 내용으로서 원활한 운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직원을 사용하지 않았고, 일본인에 대한 대출금이 없었다는 것으로 日政에 대한 비협력자라 는 구실을 삼아, 입력으로써 타 은행에 합병할 것을 강요하므로 인하여,부득이

비장한 결의로 1942년 5월 1일에 창업한지 22년만에 은행업무를 주식회사 東一은행에 양도하고 해산하였던 것이니,특히

창립함과 운영함에 시종일관 온갖 고초 를 극복하고 심혈을 경주한 頭取 현준호 씨와 同志 人士들의 비분강개한 그 심경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血演뿌린 松 4월 8일 양도계약 체결을 맺은 호남은 행은 곧이어 4월 20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양도에 따른 안건을 가결했다. 혈루 (血德)를 뿌리는 것과 같은 무송의 비장한 태도에 이날 총회 분위기는 숙연하기만 했다. 동일은행과 합병하면서 호남은행이 제 시한 조건은 ▲주식은 재평가하여 동일 은행이 매수할 것(결과적으로 호남은행 지 22년만에 은행업무를 주식회사 東一은행에 양도하고 해산하였던 것이니,특히 창립함과 운영함에 시종일관 온갖 고초를 극복하고 심혈을 경주한 頭取 현준호씨와 同志 人士들의 비분강개한 그 심경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血演뿌린 I松 4월 8일 양도계약 체결을 맺은 호남은행은 곧이어 4월 20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양도에 따른 안건을

가결했다. 혈루 (血德)를 뿌리는 것과 같은 무송의 비장한 태도에 이날 총회 분위기는 숙연하기만 했다.

동일은행과 합병하면서 호남은행이 제시한 조건은 ▲주식은 재평가하여 동일 은행이 매수할 것(결과적으로 호남은행 아래

더욱 커 나갈 수 있는 호남은행의 날개를 스스로 부러뜨리고 말이다. 호남은행 해산 한때 3도(전남북 및 경남)에 까지 영향 력을 미쳤던 호남은행이 해산되던 날,전남 지역민들은 다 함께 가슴 아파했다. 총독부의 지시에 의해 강제합병을 당한 줄

아는 터라 더욱 안타까와 했다. 1942년 5월 1일. 모든 은행업무를 동일 은행에 양도하고 호남은행을 해산시킨 무송의 심정은 매우 착잡했다. 그에겐 젊은 청춘을 모두 바친 은행이었다. 동경 유학시절 흥미를 갖기 시작, 귀국 후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관계한 은행은 그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밤잠을 설치면서까지 열과성을 다 바친 곳이었다.

1933년 전남도평의회 의원들의 절대 다수 통과로 전남도금고로 지정되기도 한 호남은행은 그후 총독부의 거부권 발동으로

무효화 돼버리고 말찌만 이미 이때 신은행령 공포로 총독부 눈에 나 있었다. 그러나 1942년까지 명맥을 이어 온 것은 무송의 절대적 힘에 따른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민족은행 호남은행이 성장하기까지는 무송의 헌신적인 뒷받침이 컸다. 일찍 학파 현기봉의 조언이 크게 작용했음도 물론이다.<계속>

[사진]한때 3도(전남북 및 경남)에 까지 영향력을 미쳤던 호남은행은 결국 총독부의 지시에 의해 동일은행으로 강제합병을 당하는 비운을 맞고 말았다. 사진은 당시 미곡 공출로 수탈 당한 한국의 가을 농존 모습.

문배근 편집국장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