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고향 영암을 사랑한다.이곳에서 태어난 것 아니고 자라난 곳도 아니다. 다만 영암에서 태어난 남편을 만났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그 설명이 충분할 둣 싶다.태어난 곳은 강원도 동해바다가 보이는 산 언덕 아침마다 떠오르는 태양으로 시작하여

산너머 해가 지면 하루가 되는 아득한 날들이 생각난다.성장기간인 십대와 이십대는 생존경쟁에 부딪치면서 지내온 서울이다. 서울 사람으로 살아온 이십년은 가방들고 학교 다니며사회 생활을 좀 맛본 시간들밖에는 별로 좋은 기억은 없다.

그러나 전라도 영암. 아! 여기가 한국이구나! 한국여성은 여기에 있구나! 감탄을 연발 하면서 나를 돌아본 시간들이 이십여년이다. 풍요로운 땅에는 심으면 거두는 원칙 말고도 너무나 많은 가르침이 있다.

여유가 있고 구수한 언어 속에는 풋풋한 인정이 녹아있다. 꾸임없이 가식없이 서로가 서로를 밀어주고 인정해주는 그 순수함.

그러나 난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 고향 사람이 되었다. 나 혼자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 더욱 사랑하는 영암.

아궁이에 솔잎가지를 넣어 성냥불을 그어 대면 매캐한 연기로 인해 눈물과 콧물이 범 벅이 되어 타향살이 시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마당에 풀이 가득하니 정원 같아서 정말 좋았는데 풀도 뽑을 줄 모르는 게으름뱅이라고 손가락질도 받고 말기

못 알아듣는다고 모지리(:)라는 별명도 얻었는데 고향이 된 영암에 묻혀서 자연스럽게 농촌 아낙이 되었다. 어머니 같은

따뜻함도 느낀다.늘 만나는 허리 굽은 할머니는 어머니처럼 포근하다.

어떤 실수도 다 받아주실 것 같은 포근함, 많은 말들을 나누다 보면 참고 참아온 날들 이 지혜가 되고 지식이 되어 어느

좋은 책한 권을 읽은 것 같은 행복함이 있다. 고향은 먼 곳이 아니다. 내가 정들고 사랑하고 아끼며 생각 안해도 좋은 곳,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여러 군데 옮겨 사셔서 항상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많으셨다. 노래를 불러도 "타향살이 몇해든가…" "고향이 그리워 도 못 가는 신세…"라고. 결국 타향인 도시에서 임종을 맞으셨는데 둔을 감으실 때까지 고향 어릴 때

뛰놀던 동과 들녘을 그리워하며 가셨으리라 생각이 든다. 내 고향 영암은 완전한 종착역이다. 내가 묻힐 땅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고 눈감는 순 간까지 이곳의 공기를 마시며 이곳의 언어들로 마감할 것이다.

누가 기다리지 않아도 오일장은 고향 사람 들을 만나는 설템도 있다. 황토 흙에 묻어있는 싱싱한 채소들, 갈라진 손끝의

거칠거칠한 느낌으로 건네주는 풍성한 비닐봉지의 무게가 고향을 느끼게 한다.

지붕위에 익은 노오란 호박만큼이나 고향 영암은 여유가 있고 정이 가득하다. 아직 여인의 수줍음이 남아있듯 바위틈에

숨어 핀 들국화가 오늘따라 짙은 향기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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