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목반 하계 수련대회,친정 식구들 계모임, 동창 모임 등 지리산을 10여일 제집 드나 들 둣 보냈더니 집 비우고 나다니다 온 대가 가 만만치 않다. 집 떠나기 전 선머슴 휘젓듯 밀린 일을 해내고 쉬는 동안 만큼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즐기다 오겠거니 생각했지만 막상 집으로 돌아와 할 일을 보니 물에 젖은 솜처럼 천근만근 마음이 무겁다.

9월에 들어가는 오이 파종도 더 늦기 전에 해야겠고, 며칠 전에 딴 고추도 바싹 약이 올 라 나 좀 어떻게 해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그 와중에 휴가동안엔 날씨가 그렇게 좋더니만 밀린 일 좀 할려니까 때늦은 장마가 시작된 양 연일 비만 내리붓는다.

올해는 다른 해보다 월동 작물을 더 많이 입식 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마당에 지금부터 눈코뜰새 없이 준비를 해야하는데 비만 오고 있으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진다.

앞 작물 뒷 설거지후 소독도 할겸 담수해 하우스바닥을 먼저 말려야 로타리를 치든 퇴비를 내든 할텐데 이 비에 좀체로 마를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그래도 비온 참에 인부들을 구할 수가 있어 하우스고 추를 땄는데, 건조하는데도 애를 먹인다. 노지에 고추를 심은 사람들은 한창 제일 많이 수확할 시기에 비가 연일 퍼부어 밭에서 고추가 다 쳐져 버린다고 아우성들이다.

다행이 우리집은 하우스에서 고추를 재배해 쳐질 염려는 없지만 말리기가 수월치 않아 애를 먹었다. 연일 비만 오고 있으니, 하우스 가에 풀들도 제 세상을 만난 듯 불과 며칠 사이에 언제 메줬냐 싶게 나풀거린다. 햇별이 안 난다고 마냥 하늘만 원망하고 있을 수도 없어 호미를 찾아 들고 20동이 넘는 하우스마다 다니면서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된다. 그래도 이발을 한 둣 말끔해지는 하우스 안을 들여다보며 마음이 흐뭇해지는데 빗줄기가 몰고 온 시원한 바람이 피부에 와 닿는다. 시골 일이라는게 해도해도 끝이 없지만 그날그날 일한 만큼 변해지는 밭을 보며 이래서 하루도 일손을 멈출 수가 없는가 보다는 생각이 든다.

자고나면 한 령씩 쑥쑥 키를 키우는 잡초들과 날마다 해도 줄어들지 않는 일 속에 파 묻혀 살지만 하늘아래 제 몸 바쳐 흙을 일구어 내고, 씨앗 뿌려 땀 홀려 가꾸노라면 일한 만큼 얻어지는 노력의 결실에 모든 인고의 아픔을 견디어 내는 게 농부인 것 같다.

봄부터 가을까지 화운데이션을 아무리 떡처럼 발라도 하얘지지 않는 피부, 세상의 모든 흥미로운 일상들을 농사일 다음으로 미루고, 해년마다 겪는 가뭄과 홍수, 태풍으로 인한 고초는 뼈를 깎지만 흙을 다루는 경건한 의식 뒤에 찾아오는 뿌듯한 포만감을 어디에 다 비하라

땀에 젖은 몸을 찬물로 씻어내고 대청마루 에 누워 취해보는 단잠. 촌부의 여름은 힘들지만 결코 외롭지만은 않은 것 같다.

김월순 도포면 수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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