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독부의 湖銀 특검

대한 총독부의 감사는 강도 높게 진행됐다. 꼬투리를 잡겠다고 달려든 특검반의 조사가 진척됨에 따라 사원들은 무송을 중심으로 더욱 뭉쳐졌다. 평소 은행업무에 대해 공정성을 강조했던 무송은 장부에서 잘못을 발견하기란 극히 어려웠다. 따라서 더욱 혈안이 돼 있었 다. 은행일지까지 살살이 뒤진 특검반은 얼마전 주주총회에 보고됐던 업무개황 문구를 가지고 따지기 시작했다.

이 보고서 중에는 부지배인 장용태 (전 조흥은행장)가 작성한 것으로 당시 총독부 재정정책을 비판한 내용이 기록돼 있었다. 그러나 결론에 이르러서는 재정당국의 조정에 의해 모두 무사하게 됐다고 얼버무린 내용이었다. 이 내용 중에 총독부 정책을 꼬집은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특검반은 광주경찰서 고등계로 넘기고 말았다. 위협할 수 있는 단서를 한가지 잡은 것이다. 몇일 후 광주경찰서로부터 집필자를 소환한다는 통보가 날라 들었다.

경찰서에 출두한 장용태는 은행의 책임자인 현준호의 지시에 의해 작성된 것인지 집중 따져 물었다.

"은행업무야 장부에 기재돼 있는 것 아니겠오. 그걸 자료삼아 보고 적으면 돼 누구의 지시를 받고 쓴 적이 없습니다"

"좋소. 그렇다면 내용중에 우리 정부 당국을 비방한 내용이 적혀 있는데 이것은 불온사상에서 나온 것 아니오:"

"글쎄요.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모르지만 난 다만 주주들에게 현재의 금융계 현황을 설명해 줄 필요가 있어 현 재정정책을 말했을 따름이오. 그게 불온한 사상이라니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오"

장용태의 강경한 말에 그들도 할 말이 없었다. 사실 내용을 살펴봐도 그들의 억지에 불과해 더 이상 트집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본래 호남은행 검사를 시작한 데는 무송을 잡기 위한 구실을 찾는데 목적이 있었던 만큼 무송의 결점을 찾기 위해 계속 장용태를 추궁했다. 장용태 역시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던 터라 불리한 말을 할 리가 없었다. 모든 보고서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을 되풀이 할 뿐이었다.

결국 무송에 대한 아무런 구실도 찾지 못한 채 광주경찰서는 장용태를 되돌려 보내고 말았다.

특검 결과 발표 그러나 은행에 대해서는 특검결과 웃지 못한 결과를 발표했다. 50여 일간 에 걸쳐 수십명이 참 빗질하듯 감사한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대체적으로 업무처리는 좋으나 ㅿ일어(日語)를 상용치 않은 점 ㅿ일인(日人) 및 일인 관계 단체에는 일절 융자하지 않은 점으로 미뤄 배일(排日) 기관으로 생각치 않을 수 없다는 게 골자였다. 보이지 않는 암운이 한발짝 한발짝씩 호남은행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1928년 신은행령 공포 이후 민족계 은행을 말살하려던 총독부의 검은 손길 이 뒤늦게 찾아든 것이다. 총독부의 일본자본 육성을 위한 정책으로 실시한 이 합병정책으로 1923년 한반도 내에 본점을 둔 민족계 및 일본계 은행 총수 는 20개소에서 1940년에 이르러선 단 9 개소로 은행이 줄어들었다. 대부분의 민족계 은행이 일본계 자본은행으로 흡수 합병된 비운을 맞은 결과였다.

호은(湖銀)에도 무송이 그들의 정책에 비협조적으로 나오자 마수를 뻗치기 시작했다. 호남은행에 대한 특별검사결과를 발표한지 한달 가까운 1942년 초 총독부는 비밀리에 호남은행에 강제 합병 명령의 운을 띄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무송에 대한 회유를 계속했다. 일제에 협력하고 호남은행에 일본인 사원을 쓰면 강제합병 명령을 취소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무송이 들을리 만무했다. 은행 창립 때부터 '일인(日人) 사원은 채용치 않는다' 는 원칙을 깨트릴 수 없었다.

이 즈음 부쩍 마음이 답답한 무송은 바둑을 즐겼다. 자신의 결정 하나에 민족은행 호은의 앞날이 좌우되었기 때문 이었다. 밤 늦도록까지 바둑을 즐긴 무송은 손님들이 떠나면 비로서 김신석 · 장용태 등과 마주앉아 은행의 앞날을 논하곤 했다. 장용태는 훗날 당시 무송 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이처럼 모든 물자가 부족된 채 발악 하는 저들을 도울 수 없지. 내 호남은 행을 없앨지언정 일인(B人) 사원을 채 용하거나 저들의 일에 협력치는 않을 걸세"〈계속〉

[사진]무송과 평소 교분이 두터웠던 인물들. 좌로부터 장용태(전 조흥은행장), 현석호(전 국방장관), 김신석(전 호남은행 전무취체역)

$$$문배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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