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여유롭게 살고자 하는 삶 속에서 어떤 구속에 매여 정신이 응집될 때 음악이나 글에 몰두하여 그곳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보일 때가 있다. 밀물과 썰물처럼 들락날락하며 늘 그대로의 일상을 탈피하여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찾아 나선다. 닥쳐올 미래를 위하여 투자되어야 할 시간에 바쁘게 돌아가는 인간사야.

모두는 눈 번쩍이며 내 앞길을 바쁘게도 걸어가는데 뒤에서 그 발자국만 쳐다보는 자가 여유로운가: 바보스러운가:

10월은 무척 풍성하면서도 허기를 느끼는 계절이다. 지금 이대로의 삶에 만족함을 얻는 자도 드물 것이고 평범한 혼란과 싸우는 자도 많을 것이다.

무엇으로든 채우려고 욕심 부리다가도 비워진 찻잔처럼 언젠가 채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삶의 지혜가 아닐까:

도갑사에서 도선국사 성보관 개관기념으로 소리꾼 장사익씨를 초청하여 산사 음악화를 한다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가 보았다. 평소에 그 분의 음악을 좋아했던 터라 일찍 저녁을 먹고 두 아들과 남편과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재촉하여 갔는데도 앉을 자리가 없었다. 의자 아래 통로 땅바닥에 다리 쭉 펴고 편하게 앉아 소리에 취할'수 있었다.

"돌아누워도 돌아누워도 찾아오는 환장할 기침은 언제나 끝이 나려는지 밥그릇에 천길 낭떠러지 속으로 비굴한 내 한 몸 던져버린 오늘 삶은 언제나 가시박힌 손톱의 아픔이라고 0}무리 다짐을 놓고 보아도 별자리마저 제 집을 찾아가는 새벽녘까지 메마른 기침은 멈출 줄 모른다."

이렇게 멋진 '기침' 이라는 노래가사를 따라 부르며 소리꾼과 관중이 하나가 되어 조용한 산사를 깨우니 감동적이었다. 답답한 실내가 아니라서 좋았고 세상의 잡음소리 없는 곳이라 좋았다.

그 소리꾼의 소리가 찬 공기를 가르며 따뜻함으로 퍼져나갔다. 북을 치는 고수는 북채를 잡고 미친 둣이 세상의 선악을 두드렸고 하얀 두건을 머리에 쓴 사람들은 혼신의 힘으로 꽹과리를 때리며 사람들의 마음을 깨달음으로 인도했다.

느낌이 있는 음악에 빠져있다가 뒤돌아보니 노동에 지친 친정엄마가 희미한 불빛 받아 깜박깜박 졸고 계셨고, 우리 둘째 아들 놈 내 품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밤새 그렇게 음악 들으며 절의 오묘한 분위기에 젖어 보내고 싶은데 그 시간이 금방 흘러 가버렸다.

내려오는 길에 친정 엄마께 도토리묵에 동동주 한 잔 들이키게 해 드리니 좋아하시면서 "소리를 영판 잘 하더라"하신다. 꾸벅꾸벅 졸면서도 듣기는 들으셨나 보다.

시골에 살면서 가끔 이렇게 속 시원하게 누릴 수 있는 문화적인 혜택이 있었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평소에 갖지 못했던 산사의 소리판이 내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최인숙 · 군서면 동구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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