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백만을 헤아리는 재외동포 문제는 우리사회 중요한 현안의 하나다. 그런데 상황에 대한 일반의 인석이 아직도 혼란스럽다.

보도의 중심에 있는 미디어의 해외동포에 대한 호칭부터가 통일이 안된 것이 단적인 예다. 재미, 재일 동포는 그런대로 쓰면서 재중,재러시아 동포의 경우 조선족, 고려인 호칭을 아무렇지 않게 섞어 쓴다. 현지에서 그렇게 불린다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준 이라면 재미동포는 코리언이라야 옳다. 재일동포는 조선인(센징)이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비록 해외로 이주해 국적은 달라져도 동족집단의 일원이기 때문에 우리 기준의 호칭을 쓴다. 그러면서 재중, 재러동포만 달리 부르고 있으니 그들은 동족이 아니란 말인가.

말은 인식의 반영이다. 용어의 혼란은 곧 인식의 혼란이다. 그래서 바른 이름 (正名)이 중요하다. 이름을 바로 세우는 차원에서 생각을 정리해보자.

아는대로 '조선족'은 중국이 자기내부에서 우리 동포집단을 호칭하는 명칭이다. 중국이 우리를 가리키는 공식호칭이 조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변 조선 족자치주'다. 일본도 자기들끼리는 조선을 더 많이 쓴다. '조선반도, 조선인, 조선어,조선사다.

중국과 일본의 이런 호칭에는 조선을 아직 국호로 쓰는 북한에 대한 배려와 과거 식민지 시절의 정서적 우월감 등 다른 배경도 있을테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자기네의 역사성을 내세우는 것이다. 오랜동안 써본 호칭이니 그대로 쓰겠다는 것이다. '

우리 입장은 당연히 다르다. 조선조말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었다가 상해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을 선포하고 48년 그 법통을 이은.정부가 수립되면서 .우리의 공식 호칭은 한국이 됐다. 한국인 한국어 한국사 한반도가 공식용어다. 그래서 중국과 일본에도 그렇게 불러 달라고 요구한다. 특히 일본과의 관계에서 조선이라고 불릴 때는 비하 당하는 느낌이 있다.

그런 처지에 우리 내부에서_ 우리끼리 조선족, 고려인 호칭을 생각없이 섞어 쓴다는 것은 한마디로 줏대없는 짓이다. 여러해전 우리 국회의원 한사람이 중국인을 위한 과잉친절로 명함에 '남조선'이라고 표기했다가 한 신문의 과장된 보도로 여론의 몰매를 맞기도 했는데 그런 기준이라면 조선족이란 호칭은 일종의 국가부정행위다. 그런데도 고쳐지지 않으니 무슨 영문인가.

우리 서해는 중국의 동해다. 중국을 따라 서해를 동해라고 부르자고 할 생각이 '아니라면 '조선족'이란 호칭은 더이상 써서 안된다. 고려인이란 호칭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쓸 것은 아니다.

우리의 역사전통을 기준으로 하면 불과 한세기 전까지 일본은 왜(倭) 였다. 50여년 전까지 중국의 동북지방은 만주 (滿洲)로, 연변조선족자치주는 북간도 (北間島), 그리고 압록강 .건너 지역은 서간도(西間島)였다. 기준을 확대하면 미대륙은 극동(極東)이 되고 유럽은 극서(極西)가 된다. 중동은 중서(中西)라 고 불러야 옳다. 중국은 우리의 서국이고 일본은 동국이다.

자기 위치에서 공간과 시간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것이 자주성의 출발이며 기반이다.

이제와서 중국을 서국이라고 고쳐 부를 것 까지는 없지만 중국이 조선족이라고 부른다고'우리가 우리동포를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망발은 더 이상 안된다. 최소한의 자주성을 지키는 차원에서 해외동포 호칭부터라도 정확하게 통일해 쓰자. 조선족, 고려인이 아니라 재중 동포, 재러시아동포다. 인식이 분명해질 때 문제에 대한 바른 처방이 나온다.[사진]문병호.

문병호영암읍 장암리 출신, 중앙일보 편집국장 대리, 중앙일보 j&p 대표이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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