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의 해나무(시종면 월롱리)

시종면 월롱리 마을에는 가지를 넓게 펼친 해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습니다. 320여년 동안 이제까지 마을 사람들은 그 나무를 절대적으로 신앙하고 있습니다. 마을의 뒷산 상상봉에 위치한 이 해나무는 320 여년전에 심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처음 이곳에 들어와 마을을 개척한 사람은 파평인 윤복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양지바른 곳에 터를 잡아 일구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부인은 평산 신씨인데 참으로 마음씨가 좋았으며 또한 정숙한 부인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잠을 자는데 주악을 울리며 오색구름에 쌓인 오룡차가 나타났습니다. 신씨 부인 앞에 내리더니 그 오룡차 안에서 여인의 소리가 퍼져 나왔습니다.

"정숙한 여인아, 나의 가슴에 쌓인 한을 풀어준다면 큰복을 내릴 것이요, 그렇지 아니한다면 큰 화를 자초케 될 것이니라."

그 소리는 장엄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큰 화를 당할지 모른다는 말에 부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댁은 뉘신데 그런 말씀을 하시나이까:" "여인아, 들어라. 나는 저 칠산 앞 바다의 용왕님의 5녀로 태어났으나, 내 자체의 용모가 어찌나 박색하고 흉악한지,한 사람의 남정네도 나를 아내로 맞으려 하지 아니하여 남정네를 섬겨보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하여 아직 나의 영혼이 안주하지 못하고 떠돌고 있느니라."

주악이 멈추고 조용하더니 다시 말은 계속되었습니다.

"이러한 한을 달래기 위하여 방방곡곡을 돌아 다녔으나 내 마음이 흡족치 못하였는데, 오늘 이곳에 이르러 한없이 기쁘구나. 보름달이 연못에 잠기어 노니는 광경이 마치 내가 살아있을 때 칠산앞 바다에서,부왕과 같이 뱃놀이를 하던 곳과 같은 정치이구나" 하면서 그 여인은 정월 대보름날이면 강림하여 한을 달래고자 하니 여정을 모르고 청결하게 살아가는 남정네를 제관으로 정하여 정성껏 그녀의 제를 분향하면 마을에 어떠한 지병이나 변란에도 인명을 보존토록 돌봐주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해나무'라는 나무를 한 그루 주었습니다.

여인은 치마폭을 벌리고 조심스레 그 나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주악을 울리며 그 오룡차는 하늘로 올라 갔습니다. 꿈을 깬 부인은 그 나무를 뒷산에 심고,그 곳을 당산으로 정하고는 매년 정월 보름날 그 여인의 부탁대로 정성껏 제를 모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 2월에 눈이 내리고 추위가 극심한데 길이가 20척이 넘는 큰 용이 난데없이 나타나 당산 해나무에서 울부짖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서 뛰쳐나온 마을 사람들을 단숨에 잡아 삼킬 둣이 불을 내뿜으며 고개를 내두르기를 주야로 이틀을 하자, 마을 사람들은 크게 놀라 원인을 규명하고자 제관을 추궁하니 제관 말이 정월 보름날 자기 부인과 관계한 후 제를 모셨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엄동설한인데도 의복을 벗기고 알몸으로 그 청룡 앞에 사죄케 하고 다시 제사를 모시자 그 청룡은 조용히 해나무 몸통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해, 마을에는 이름 모를 질병이 생겨 젊은 남녀 20여명이 횡사를 하는 변을 당하였습니다. 그 후로 품행이 단정하지 못한 사람은 겁이 나서 그 당산나무 근처로 통행을 하지 못하고 다른 길로 돌아다녔습니다.

그리하여 월롱마을은 임진왜란이나 동학난,왜정시대나 6.25때를 막론하고 변란으로 인해 부상당하거나 사망한 사람없이 다행이,화를 면하곤 하였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당산의 은덕으로 생각하고 지금도 정성껏 제를 모시고 있다고 합니다.

〈영암문화원 제공〉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