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진다리(덕진면 덕진리)

때는 신라시대. 영암읍에서 10리 쯤 떨어진 강변에 객주집이 하나 있었다. 덕진이라는 여인이 일찌기 혼자되어 이 곳에서 길가는 나그네 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기도 하고, 갈증나는 목을 축여 주기도 했다. 덕진과 영암사이에는 영암천이 가로 놓여 있는데,영암천은 비만 오면 물이 불어 사람이 건너다닐 수가 없었다.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영암을 감싸고 돌아 흐르기 때문에 갈 길이 없었다. 며칠씩 기다리기도 했다. 물이 많은데도 가끔 고집을 부라고 건너다 변을 당하는 수도 있었다. 바쁘다고 초조해 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그녀는 자기 일처럼 함께 걱정을 해주곤 했다.

"아주머니,술 한잔 주소." "예 예, 어서 오시오, 옷이 다 젖었구먼요." "무슨 비가 이리 많이 오는지, 원 빨리 소식을 전해야 하는디."

객주에 들어온 사람은 술을 한 잔 들이키고는 비를 맞으며 밖으로 나갔다. 한참 후에야 되돌아오더니 "징검다리를 건너갈 수 있으려나 싶어 나가 봤더니 도저히 안되겠구만. 큰일났데" 그 사람은 바쁘다고 해대며 초조하게 연방 술잔을 비웠다.

"이곳에 다리가 놓이면 좋것지라." "이곳에 다리를 놓는다면 얼마나 들까요:" 주모는 지나가는 소리로 슬쩍 물어 보았다. "모르긴 몰라도 삼백냥은 족히 들거요." "삼백냥, 삼백냥이라." 여인은 삼백냥을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여인은 그날부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빈 항 아리를 마련해 두고, 일이 끝나면 벌어들인 돈을 그 항아리에 담았다.

여인은 다리가 놓이고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오고가는 모습을 그려 보았다. 여인은 곧 다리가 놓일 것을 생각하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항아리의 돈이 삼백냥쯤 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 돈을 고을에 기증할 적당한 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래서 아무도 몰래 한밤중에 그 항아리를 땅에 묻어 두었다.

그러나 덕진은 얼마후 죽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고을의 원님이 바뀌었다. 원님이 부임한 첫날밤이었다.

"제 소원은 영암과 덕진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었습니다.

다리를 놓기 위해 평생동안 돈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때를 기다리고 있는데 염라대왕의 부르심을 받고 이승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제가 살던 집의 부엌에서 서쪽으로 다섯 걸음만 가서 땅을 파보십시오. 그러면 항아라 하나가 있을 것입니다. 원님, 부디 저의 소원을 풀어 주십시오."

꿈을 .깬 원님은 너무도 생생하여 다음날, 그 곳으로 가서 여인의 말대로 땅을 팠다. 역시 여인의 말과 같았다. 결국 원님은 영암과 덕진 사이에 다리를 놓고 여인의 갸륵한 뜻을 살려 다리의 이름을 덕진교라 부르게 하고 마을에서는 여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 비를 세우고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 지금의 덕진 다리는 그 후 새로 놓은 것으로 옛날 덕진다리는 그때의 석물만이 남아 덕진여인의 뜻을 전하고 있다.

〈영암문화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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