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마음도 피곤하여 어머님께 전화 드리고 친정에 가지 않으려고 .저녁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내년 추석엔 어머니가 안 계실지도 모르는데' 하는 생각 때문에 편치 않은 마음이었다.

감기몸살 때문에 처가에 가는걸 포기하고 누워 버린 남편이 장모님이 기다리신다는 전화에 벌떡 일어나 처가로 향한다. 아버님은 주무시고 엄마는 쇼파에 앉아 계셨다.

반가운지 어쩐지 무표정한 얼굴로 사위에게 "아프다며,쉬지 왔는가" 하시고, 날 돌아보시며 "왔냐" 하시며 딸의 모습을 살핀다. 한마디 말씀 속에 딸에 대한 애처로움과 반가움과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13년째 만성신부전증으로 투병생활을 하시는 어머니. 이제는 혼자서는 보행도 불편하시 어 아버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시고 투석하실 때에도. 아버님의 도울이 필요하신 어머니.

고운 모습은 간데 없고 새카맣고 누런 얼굴에 야윈 모습의 어머니와 병 수발에 힘들어하시는 아버지가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 모습이 싫어 한참동안 부모님 뵙기를 뒤로 뒤로 미룬다.

늦은 밤 꾸벅꾸벅 졸면서도 자식들 가는 모습보고 주무신다고 자리에 눕기를 마다하신다.

장모님 앞에 앉아 서로 시 세워서 말도 안 되는 소리하며 장모님 사랑 확인하는 세 사위 재롱에 정말 오랜만에 소리내어 웃으신다. 왜 일까: 어머니의 웃는 모습에 난 눈물이 쏟아져 등뒤로 돌아선다.

"엄마 나 갈께". " 조심해라, 으짜끄나 명절인데 많이 싸주지도 못하고" 작은 올케가 담아 주는 반찬과 송편 들고 친정집을 나선다.

돌아오는 중에도 엄마의 웃는 모습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사경을 헤메이던 고통의 모 ·습도, 소리내어 웃으시는 천진난만한 모습도

언제부터인지 내게' 아픔으로 다가온 어머니. 어머님을 뵙고 나면 가벼운 마음이어야 할텐 데 여러 가지 핑계로 잘 보살피지 못하는 죄책감 때문에 속 좁은 난 며칠을 혼자 앓는다. 그 속앓이가 싫어서 뵙기를 더 미룬다. 며칠 지나면 잊고 지내는 시간이 더 많으니까.

이런 저런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온다. 농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하늘을 쳐다 본다. 보름달이 어느 한 부분도 감추이지 않고 둥그런 모습으로 내려다 보며 나에게 속삭인다.

태어난 것도 자라는 것도 부모를 여의는 것도 모든 것이 인생 여정의 한 과정이라고 자위하는 내게 맏이로써 부모님께 넌 무얼 드렸는데 야윈 모습을 기억하는 수고와 병마의 고통과 기쁨의 웃음을 보는 아픔도 싫다하냐고. 순간 부끄럽다.

다시 속삭인다. 운명은 하나님의 섭리지만 부모님 돌아가신 뒤 내 생이 다 할 때까지 가슴에 묻어 두고 더 큰 아픔으로 남아 통곡하며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순간 다짐한다.

부모님의 넓고 깊은 마음이 가슴으로 느껴질 때 애써 피하지 않고 고통과 아픔과 슬픔까지 감싸 안으면서 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겠노라고. 그리고 후회하는 딸이 되지 않겠노라고.

김 혜 리 (덕진면 백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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