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읍에서 목포쪽으로 llkm 쯤 가다가 독천을 1km 앞두고 도로 왼편에 (유)서울석재(대표 서철원 · 59)가 보인다. 영암군 학산면 금계리 689-3, 마을을 벗어나 비교적 한적한 농경지 · 산을 주변으로 2천여평의 부지에 공장 100평 · 사무실 20평 규모를 갖추고 있으며 우람한 육면체 모양의 원석과 가공된 석물들 그리고 돌을 자르는 톱날의 굉음이 어울려 석재공장의 독특한 분위기를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공장에는 활석기·자동연마기· 재단기 등이 전자동시스템으로 가동되고 있는데 돌을 자르는 활석기로는 문형 82인치 · 단두다엽 62인치 5날 · 38인치 5날 · 62인치 외날 등의 기기와 자동연마기는 6해드 · 특수재단기 · 지게차 등의 장비가 잘 갖춰져 있어 대형석물 9t(약3루베)까지를 가공할 수 있다는 것.

여기에 더욱 중요한 것은 40년 동안 돌만 만지고 살아온 공장장 김광우씨(55)가 있다는 사실이다. 김씨는 삼호면 용당리 출신으로 10대 때부터 영암읍 역리에 있던 친척의 석재공장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해 중견기술자가 되어 서울로 진출해 20여년을 서울의 유명한 석수들과 어깨를 겨루며 기술을 인정받았다. 덕수궁 전시장에 사자상을 줄품하기도 했으며 국회의사당 신축 공사에도 참여해 건물 어느 부분에는 김씨가 다듬어 제작한 석물들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기술을 자타가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석재가 만들어 낸 현장들을 보면 유명한 구림 동계사를 비롯해 내노라하는 문중들의 산소 정비와 묘비석은 물론 석불 · 석등 · 석탑 또 용산교·동계교·남송교 등 각 종 교각(돌다리) 그리고 목포과학 대교·대불대학교 등 유명건축물의 내외벽 · 장식 등 다양한 분야에 참 여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주로 많이 찾아온 고객들은 영암을 중심으로 강진· 장흥· 해남· 목포 등 인근 지역과 광주로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영암출신 향우들이 많이 애용하고 있는 편이다.

최근 국내 석재시장에 충국산 석물 완제품들이 몰려오면서 국내시장을 일부 잠식하고 있으나 석질이 떨어지고 그림 · 무늬에서 · 그냥 구별되는 정도이기 때문에 이쪽 시장에는 아직 큰 영향은 없다는 것이다.

"고품질 · 고기술로 신용을 지키자"를 사훈으로 내걸고 있는 서울 석재는 전북 익산의 황등석 · 함열석과 경남 거창석을 원석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황등석(익산석)은 주로 불상이나 특수석등 주로 석물용으로 건축에는 주로 거창석을 사용하고 있다.

상주직원 5명과 작업분야에 따라 일용직 5명 등 대개 5~10명이 년간 5억원의 매출 목표달성을 위해 빈틈없이 일하고 있다.

지난 88년 10월 독천을 막 벗어난 미암면 채지리 575번지에서 문을 연 서울석재는 93년 5월 이곳에 제2공장을 설립 각종장비와 시설들을 갖추고 본격적인 석재공장으로 사세를 확장시킨 후 더욱 업계에서 탄탄한 기반을 구축해 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 건물의 멋을 살리려는데 석재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고 '납골묘' 쪽으로 장례문화가 바뀌는 추세를 보이면서 사업성이 더욱 탄력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납골묘는 주문에 따라 자체설계·제작하고 있으며 대개 32 기 · 50기 · 80기 규모가 주문되고 있는데 가격은 ▲가족묘나 소문중 32기 1천300만원 ▲50기~80기 1천 500만원~2천만원 정도이며 산소정비로 사용되는 묘석은 비석 80~100만원 상석 40~45만원 · 둘레석 100~160만원 정도이다.

건축현장이나 산중의 묘비석 입비작업 현장까지 직접 뛰며 작업에 나서고 있는 서사장은 지역사회 발전을 도모하는 사회단체 활동과 어려운 이웃돕기에도 앞장서고 있으며 다양한 고객층으로부터 "성실하고 책임있는 일꾼"으로 신망을 받고 있다.

서사장은 "국내 생산 원석만을 고집하는 유일한 업체라고.자부한 다." 면서 "앞으로 더욱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면서 미력하나마 지역 사회 발전에 항상 동참하겠다."고 다짐했다.

(061)472-1542, 011-631-4140

[사진]2천여평의 부지에 공장과 사무실을 갖추고 있는 영암군 학산면 금계리에 위치한 (유)서울석재 공장 전경과 가공된 석물들. 원내 사진이 서철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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