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 20분

일본 해경헬기가 상공을 선회하고 난 얼마 후 일본매일(마이니찌)신문 등 언론사 헬기들이 취재차 뜨기 시 작했다.

오후 4시

약 60시간만에 핸드폰의 서비스가 되기 시작했다. 군으로 전화를 걸어 이진 과장님에게 그간 벌어졌던 간략 한 상황과 가라쓰항에 4월 16일 오전 중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보고했다.

그리고 통신 두절로 걱정하고 있을 집으로 인;부 전화를 하였다. 너 무 오랫동안 두절되었기 때문에 너 도나도 이곳 저곳에 안부와 기사전 송 등 연락하기 바쁘다. 고주사가 내게로다가와 귓속말로 핸드폰 요금을 걱정한다.

나 역시 국제전화요금 때문에 걱정은 했었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통신수단은 고 주사가 국 제서비스를 받아온 본인 전화 1대 뿐 차선책이 없어서 군비에서 처리 되어야 할 것이라고 안심시켰음에 도 고주사는 "그래도 너무 많이 나 오면 어쩌나" 하고 걱정한다.

왕인호는 니께시마 섬과 이름 모를 섬 사이를 지나 가라쓰항 방향을 향한 항해가 순조롭고 멀리 보이는 쌍끌이 어선들의 어로작업이 한가 롭게만 보인다.

0 오후 4시 40분

일본 해경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금 택한 항로는 수심이 알고 암초가 있어 연화호는 통과하기가 어려 우니 주의하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왕인호는 이미 우회하기 어려운 지점까지 진행된 상태였다.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왕인호는 그대로 항해하고 연화호만 우회해 서 섬들 뒤에서 만나는 방법과, 또 하나는 연화호로 예인해서 섬들을 우회시키는 방법이다.

우리는 양식장에 왕인호가 걸릴 우려가 있다고 판단, 두 번째 방법을 취하기로 하여 왕인호를 예인하여 섬들을 우회한 후 왕인호를 풀었다.

예인된 시간을 이용하여 채바다 탐사대장에게 도착 예정시간을 알아보니 14일인 토요일 오전이 될 것 같다고 한다. 이 사항을 즉시 군에 통보하였더니 이진 과장으로부터 후쿠오카 영사관에서 환영식을 개 최할 예정인 바, 토요일 일요일은 휴일이기 때문에 16일 월요일 오후 3시에 맞추어 입항하라는 주문이다.

그리고 환영식 행사에 민경 부군수, 이진 문화공보과장, 이상공 문 화예술담당이 참여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어깨 를 짓누르는 큰 짐을 벗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이 탐사의 주연은 채바다 탐사대 장이며 지금까지 그분에 대하여 자기주의적 성향이 강한 느낌을 받아 온 나로서는 독주를 어떻게 최소화 할 것인가가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채 대장에게 가라쓰항에서, 오사카 왕인박사 묘소에는 탐사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이 동행하느냐고 물 었더니 몇 사람을 선별해서 갈 예정 이라고 답하였다." 는 이 차장의 조심스러운 이야기에 탐사대원은 전 부 왕인박사 묘소까지 동행해야 한다는 뜻을 이진 과장님께 전하고 이에 대한 조치를 건의 드리고 아울러 탐사대 조끼를 선원들을 포함하여 탐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지급, 환영식장에서 입혀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자고 부탁드렸다.

오후 6시 30분

017(무선전화사)에 근무하는 여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일본지사 로부터 일본 언론사에서 헬기 취재 와 촬영을 위한 왕인호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여 달라는 요청이 있어 확인차 전화했다는 내용이다.

저녁 9시

바람을 피해 그루미즈시마 섬 인근 해역에서 정박하였다. 연화호 대원들과 선원들이 모여 그간의 심신 의 피로를 달래는 술자리를 갖고 가라쓰항에서의 환영식 계획을 말하자 대원들은 그동안 배에서 시달려 온 것도 지긋지긋한데 가라쓰항을 눈앞에 두고 바다에서 어떻게 이틀씩이나 대기하고 있느냐며 먼저 입항하고 행사시간에 맞추어다시 앙카 지점으로 나와 입항을 연출하는 방향으로 결론지었다.

내 자신부터가 그 방법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유도되었 는지 모른다. 잠시 후 해운사 최과 장에게 이 사항을 통보하고 토요일 오전 중에 입국수속이 되도록 조치 하여 줄 것을 부탁하였다.

일련의 조치를 취한 후 선실로 가보니 술 때문인지 그간 피로가 쌓여 서인지 대원들 모두가 꿈나라로 향하고 내가 들어갈 잠자리마저 없어 할 수 없이 선장실로 올라가 이선장 전용 침상에서 같이 잠을 청했다.

항해 6일째, 토요일 맑음

새벽 5시 40분 출발하여 아침 8시 15분 왕인호는 영암 대불항을 출항 하여 공식 항해기록 106시간만에 드디어 일본 가라쓰 항이 보이는 3마 일 밖 해상, 미리 지정된) 를 내릴 위도 33도 29분/경도 129도 59분 지점에 도착하였다.

왕인호와 연화호의 모든 대원들은 "만세 ! 만세 ! 만세 !" 를 외쳤다.

이렇게 모두가 왕인박사 도일.길 복원 및 한.일 고대항로 탐사 대성공의 기쁨에 쌓여 들떠 있을 때, 생각지도 않게 연화호 선원들이 연화호 선미에 자축연을 준비하여 모두가 건배하였다.〈계속〉

[사진]망망대해에서 ‘왕인호’ 떼배가 속력을 조정하고 있다.(사진 왼쪽) ‘왕인호’ 떼배가 일본국 가라쯔항으로 진입하며 환영객들 에게 손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사진 오른쪽)

이정훈 영암군 기획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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