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 박사호에 돛을 올렸다. 사선을 넘어 이틀만에 다시 돛을 올린 왕인 호! 대원들 모두가 선미로 나와 손을 흔들며 연호하고 왕인호에서도 채바 다 대장, 김덕주 선장,이재수 PD가 손을 흔들어 답례한다. 항해 5일째 아 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연화호에서 싸이렌을 울려 왕인호의 무전기를 불 렸다. 이심전심! 즉시 왕인호에서 반 응하여 무전기를 열었다. "니께시마를 거쳐 가라쓰항으로 들어가는 항로가 결정됐다"는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항해를 시작했다.

○ 오전 10시

바다는 조용하다! 바람을 타고 넘실 대는 왕인호의 모습이 아름답다! 대원 들과 선원들은 뱃머리와 후미에서 따 사로운 햇볕아래 삼삼오오 짝을 지어 생사를 넘나들었던 밤사이의 이야기 를 나누면서 왕인호를 지켜보았다.

이영규 차장과 고율 주사도 이제는 완전히 멀미를 극복하고 정한진 차장과 함께 양아리("배추 속"이란 전라도 사투리)파를 조직해야 한다는 정담을 나누면서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 노라니 바다가 둥근 원으로 보인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한 바퀴를 돌면서 어느 쪽을 보아도 둥굴게 보인다. 그 원인을 생각해 보니 가시거리가 멀 경 우에는 수평으로 보이나 오늘처럼 약 한 황사로 가시거리가 짧을 경우 지구 가 구형인 관계로 둥굴게 보인다는 결 론을 혼자 내려 보았다.

(그 당시 사선을 넘은 감흥에 내 나 름대로 아주 멋진 시상이 떠올라 흥얼 거리다가 잊기 전에 적어 놓아야지 하 고 마음을 먹었는데 실천에 옮기지 못 하고 이제 와서 여기에 옮겨 보려고 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나지 않아포기. 생의 찬미에 관한 시상이었던 것만이 떠오를 뿐이다.)

살포시 소주 한 잔 생각이 난다! 광 주매일 이영규, 정한진 차장 두 사람 이 뱃머리에 서서 기사내용을 숙의하 고 있는 모습이 보여, 다가가자 정 차 장이 "양아리 !" 구호를 외친다.

서로 박장대소하며 "우리 멀미 극복 기념 술 한 잔 합시다." 했더니 옆에 있던 박 갑판장이 더 반기면서 "그라 입시더!" 하면서 부서진 낚시대 이야 기를 또 꺼내어 내 속을 뒤집는다. 의 연한 척 "물어주면 되지요!" 했지만 속이 속이 아니다.

선실로 이동하여 소주를 꺼내놓자 이 조기장님이 안주를 마련해 주시기 위해 주방으로 간다. 이 선장이 한 이 야기(격려)도 '있고 해서 따라 나서서 "높은 파도 속에 압력솥 뚜껑까지 깨 지면서 저희들 식사 마련에 수고하셨 다" 는 말과 함께 성의표시로 5만원을 건넸더니 무척 쑥스러워 하였다.

술이 한 잔씩 들어가자 이야기의 소 재는 당연 지난 이틀간의 이야기다. 멀미이야기를 시작으로, 잠자고 있는 데 얼굴에 쌀가마니가 덮쳐 혼난 이야 기(이영규, 정한진), 냉장고 내용물이 쏟아지고 쌓아둔 가방들이 덮친 이야 기, 표류 중 유압호스 수리과정, 중심 을 잡지 못하여 부딪혀 다친 이야기, 교신 중 다꾸보또(테이크 보트)란 말 뜻을 몰라 당황한 이야기, 위급상황에 서 이 선장의 대처능력 등등…. 목숨 을 걸었던 그동안의 이야기가 일종의 코메디로 바뀌어 있었다.

이야기 도중,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 었는지 조기장님(기관장과 함께 기관 실을 담당하는 직책으로 별도로 주방 장이 있어야 하나 구조조정으로 조기장이 주방까지 담당함)이 밥상을 차린 다. 우리는 먼저 식사(식당방이 좁아 식사는 항상 4~5명씩 3교대로 함)를 마치고 선실 밖으로 나가 육지가 보이 는지 살펴 보았으나 아직은 보이지 않 고 있다.

그 와중에도 광주매일 정한진 차장 과 탐사대 서찬석 씨,그리고 강호헌, 이용택 KBS 카메라 팀은 언제 어느 때나 어느 한 장면이라도 카메라에 담 기 위해서 때에 따라 위험을 감수하며 열과 성을 다한다.

이 선장이 선장실 앞 계단 위 난간에 서서 "동상!"하고 부른다. 그동안 고생 한 것을 위로도 할 겸,경상도 발음으 로 "와크라노: 성님!" 하고는 "선장님 요! 선장님은 누구 았다 이가!" 했 더니 "누꼬:" 하고 물어온다. "음! 형사 콜름보 아십니껴: 거기에 콜롬보 반장 으로 출연한 피터 포크 닮았다 이 가!" 했더니 기분이 좋은지 뱃사람다운 표정으로 호쾌하게 웃는다. 덕분에 모 두 웃으며 이런 저런 농담을 주고 받다 보니 그동안 고생한 것은 어디 가고 이 제는 살 것 같은 기운이 돈다.

잠시 후, 어셋밤 이 선장과 기관장 간에 다툼을 상기하고 기관실로 가니 고 기관장이 반갑게 맞이하여 기관실 내부를 안내해 주신다. 기관실은 언제 그랬냐 싶게 대형 엔진과 기름때 묻은 연장들이 잘 정돈되어 있어서 어제 고 장을 일으켰던 유압호스를 살펴보면 서 수고하셨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속 이 좀 풀리셨습니까:" 했더니 겸연쩍 게 웃으며 "월요! 하다(살다) 보면 그 렇지요!" 하시기에 "저도 제가 고생한 부분을 누가 알아주지 않았을 때에 사 람인지라 섭섭한 감정이 들더군요! 그 럼에도 불구하고 남 고생은 누구나 하 는 일로 생각되어 알아주기가 참으로 힘들더군요! 그렇게 이해하시지요! 조 금 있다 우리 술 한 잔 하십시다"하고 기관실을 벗어나면서 기관실 내부 사 진을 촬영하자 포즈를 잡아주며 조금 은 쑥스러우면서도 편안한 미소를 짓 는다. 참, 보기 좋은 미소다!(고 기관 . 장님은 고 주사와는 서로 종친이라고 평소에도 특별한 애정을 갖고 계셔서 부담이 없으신 분이다)

잠시 후,선장실로 올라갔더니 왕인 호에서 연락이 왔다. 니께시마 섬에 다와 가는데 섬이 보이느냐는 질문이 다. 대원들 모두가 살펴봐도 보이지 않는다.

30여분이 지났을까: 니께시마 섬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섬이라도 얼 마 만에 보는 땅인가! 드디어 우리는 일본과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계속〉

[사진]사선을 넘어 이틀만에 다시 돛을 올린 왕인호 떼배가 순풍에 순항하고 있다.

이정훈 영암군 기획담당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