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주변을 항해중인 상선 에게 교신 "왕인호가 살아 있다"는 연락을 다시 부탁했다.

정오. 파도는 여전히 평균 4~5m 정도이며 선장실 레이다를 살펴보니 가라쓰항으로 그어놓은 항로보다 2~3마일 남방으로 처졌으나 거의 직선으로 움직이고 있다. 망망대해! 햇살은 따갑게 내리쬐고 이따금 갈매기만이 우리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광주매일 이 차장과 고 주사는 어제부터 지금까지 멀미에 밥 한 숟갈을 못 먹고 있다. 나는 걱정이 되어 먹어야 견딜 수 있다고 권유해도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모양이다. 고 주사가 벌떡 일어나 밥을 먹어 볼 요량으로 식당 방으로 가더니 금새 돌아와 눕는다. 식도에서 당글개 질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던 뭐라도 먹여 볼려고 과일을 가져다 주고 선미로 나갔다. 나의 몸은 언제부터인가 파도에 균형을 이루면서 멀미 증세도 따라 없어졌다. 이제는 살 것 같았다. 선장실로 올라가니 KBS 강 카메라 감독이 내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멀미가 어떠냐고 묻는다. 이제는 견딜만하다는 대답에 고개를 짜웃거리며 약하다는 표정이다. 어제 멀미에 시달릴 때 물어야지 그러자 선실에 누워있는 모습들을 다 촬영하였다고 한다.(속으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닌데! 어허! 이 사람 누구 우세 시킬려고 작정을 하셨는데!)

오후 1시 50분.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헬기가 탐사대를 선회하자 일행은 너나 할 것 없이 환호했다. 얼마 후 해상보안청 소속 경비정 PE208호가 도착했다. 하루 반만에 만나는 배라 너무나 반가웠다. 탐사대 김충종 이사가 일본 해경과 교신했다. 자기들은 시모노세끼 해상보안청 소속이며 통영 해경에서 우리와 통신이 두절되어 자기들에게 탐사대를 찾아 달라는 협조요청이 되어 찾으러 나왔다는 것이며,협조해 줄 사항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우리는 가능하면 보호와 탐사가 진행 중에 있다는 상황을 본국 해경에 연락해 주기를 부탁하였다.

왕인호는 높은 파도 속에서도 순항하여 오후 6시에 대마도 남서 방향 25마일 지점을 항해하고 있을 무렵 우리를 호위해 주던 해상보안청 경비정에서 연락이 왔다. "자기들은 여기서 철수하겠으니 긴급한 사항이 발생하면 연락하라"는 내용이다. 모두의 간절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파도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오후 8시에는 이께시마 섬 36마일 전방에 이르렀다. 어두워지면서 전날밤의 상황이 재현되었다.

매 시간마다 파도를 거스르며 선회를 반복하면서 왕인호를 식별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하는 한 마디로 피를 말리는 항해다. 저녁 9시15분 선장실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린다.

"우찌된 일인고, 키가 안 먹는다!" "방향타가 안들으면 우리는 끝장이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리 속이 텅 비면서 짜르르한 기가 발끝에서 올라오고 무릎이 시큰거리며 일시적으로 맥이 팍! 풀렸다. 내가 겁이 많아서인지 위험상황을 빨리 느껴서인지 선실에 앉아 멍하니 있는 순간에 재빨리 일어나 선장실로 올라가려던 대원들은 파도에 맡겨진 배가 좌우로 몹시 흔들리는 속에 파도가 배를 강타하여 튕겨져 나가 선실 벽에 부딪쳐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 때 선장실에서 기관장을 찾는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린 후 즉시 선실에서 잠을 자고 있는 고선유 기관장을 깨워 키(방향타) 고장이라는 긴급 상황을 말하고 선장실로 올라갔다. 이 선장은 키 핸들에 머리를 숙이고 있었고 이기인 · 김충종 탐사대원이 함께 있었다.

잠시후 유압호스가 터져 오일이다 빠져 나갔다고 갑판장이 밖에서 소리쳤다. 선장실 밖에 서 있던 구 선장이 안으로 들어오며 이것은 선장의 잘못이라고 질책한다. 이 선장이 이 말에 반박은 하지 않고 기관 장은 무엇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리며 안절부절이다.

배는 좌우로 45도 이상 사정없이 흔들리고 파도는 배를 때리면서 물보라를 일으키고 바닷물이 배로 쳐 올라와 잘못하면 파도에 휩쓸릴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태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선원들은 고장 수리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조금 후 갑판장이 오일통을 들고 유압호스에 오일을 넣기 위해서 선장실 뒤쪽으로 나간다. "고칠 수 있느냐"고 묻자, "기름을 넣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배가 좌우로 흔들리는 순간 솟구치는 파도 하나가 배를 쳐버릴 경우 언제라도 뒤집어져 침몰될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 계속되고 대원들 모두가 불안 속에 바짝 긴장해 있다.

강호헌 카메라 감독이 선장실로 올라오며,"어떻게 좀 해봐요! 이러다가…." 하면서 말을 잇지 못한다. 나 역시 침몰의 불안을 느끼면서도 대원들에게 "이 배는 기관을 정지시켜 추진력이 없는 상태로 파도에 맡겨져 표류 상태로 있는한 파도에 의하여 좌우로 흔들릴 뿐 침몰의 위험은 없다"고 말하면서 "구 선장님, 그렇지요:" 하고 동의를 구하는 형식으로 대원들을 안심시켰다.

30여분이 흘렀을까! 이 선장이 밖에 나갔다가 선장실로 들어오자 선장에게 배를 고치는 노력은 하면서도 배에 타고 있는 선원과 탐사대원들의 생사가 달린 문제이니 일단 구조요청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더니,김충종 이사도 구조요청 하자며 무전기 를 든다. 선장이 말이 없자 구 선장이 "끌려가는 게 낫다"며 거든다.

그 때 김 이사가 일본 해상보안청과 사고 상황을 교신하고 있다. 내가 나서야 할 사항인 것 같아. "이 배의 책임자인 선장님께서 결정을 내리시지요. 김 이사가 해상보안청에서 구조요청을 하자고 하는데 어떻게 하실거냐:"며 이 선장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말하니 15분아 넘게 고민을 하더니 저녁 10시 이정운 선장은 한숨 내 쉬며 "내가 직일(죽일) 놈이여!" 하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맥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하입시더!"하는 결정을 내린다.〈계속〉

[사진]왕인호 떼배가 높은 파도로인해 금방이라도 침몰될 것 같이 위태롭다.

이정훈 영암군 기획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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