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항 중에는 어느 정도 멀미에 적응한 상태였으나 뱃머리를 돌릴 때는 아직 적응이 안되어 어쩔 수 없이 선실로 도망갔다.

우리가 그렇게 멀미에 시달리고 있는 순간에도 광주매일 정한진 차장과 서찬석 탐사대원 그리고 KBS 카메라팀은 틈틈이 좋은 기록사진을 잡으려고 다각적인 시도를 하고 탐사대 이기인 실장과 김충종 이사는 항해일지 작성과 홈페이지 작성 자료수집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후 3시 25분, 갑작스런 강한 돌풍으로 4~5m의 파도가 7~8m로 솟구치며 연화호를 강타한다. 이때 연화호 주변을 선회하던 갈매기 한 마리가 바람에 선장실 유리창으로 곤두박질쳤다.

오후 5시, 이 선장이 현 위치는 욕지도 남방 41마일 지점이라면서 욕지도의 경작지는 비탈이 심하다는 이야기와 이에 관련한 Y담을 하자 선장실에 같이 있던 대원들은 모처럼 파안대소로 호응하고 이심전심이랄까 서로가 평소 담아 두었던 Y담을 나누면서 긴장된 분위기를 풀어 보는 것이다.

오후 7시 20분 날이 어두워지면서 비바람이 몰아쳐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9시 이후에는 비바람에 의한 파도는 더욱 높아졌고 왕인호가 연화호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일쑤다.

저녁 9시 25분, 연화호가 왕인호를 덮쳐버리는 사고가 발생치 않도록 왕인호 위치에 오면 그 위치를 확실히 파악해야 하는데 뱃머리를 돌려 왕인호가 있을 위치에 연화호가 왔지만 왕인호의 위치 파악이 안되고 있다. 선원들과 탐사대 이기인, 김충종,서찬석씨 등이 선장실 창밖에 눈을 떼지 못하고 왕인호 식별을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다. 20여 분 지났을까! 이 선장이 소리쳤다. "저기다!" 1시 방향에서 왕인호의 식별 점등이 깜박거렸다.

이 선장이 투덜거린다. "연화호가 다가오는 소리나 써치라이트가 비치면 왕인호에서도 랜턴을 비추는 등 식별이 용이하도록 협조를 해야지! 손발이 안맞아서 원!" 이에 대해 모든 대원들은 모두가 침묵으로 동감한다. 이런 일이 계속되는 이유는 파도는 높고 식별 점등이 파도 아래면에서만 연속 깜박거릴 때 파도산에 가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수 해경에서 연화호 위치를 파악하는 무전 연락이 계속되고 있으나 연화호에 장착된 무전기의 노후와 통신 거리가 짧은 관계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보아도 교신이 안되고 있다. 악천후로 모든 어선들은 피양하였고 주변에 항해하는 배 한 척 없이 망망대해에 오로지 우리만이 항해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정 쯤에 또다시 왕인호가 시이에서 벗어나 30여분만에 찾았다.

○ 4월 12일 목요일

항해 4일째를 맞이하였다. 0시 40분 레이다에 전방 4마일 지점에서 대형상선이 잡혔다. 이 선장이 상선과 교신을 시도한다. 그 상선은 우리나라 상선으로 일본~대마도~거문 도로 항해 중이라고 하였고, 대마도 쪽의 날씨가 사납다는 내용과 내일은 더 심해질 것 같다는 교신이다. 이 선장은 우리의 통신 두절 상황을 이야기하고 떼배가 살아 있다고 목포 해경과 영암군에 연락해 줄 것을 부탁했다. 높은 파도와 싸우면서 어렵고 위험한 항해는 계속할 수 밖에없다. 이정운 연화호 선장, 구환진 선장, 박용택 갑판장이 키를 번갈아 잡아가며 최악의 상황에서 뱃사람의 경험과 본능으로 밤새 항해하고 있다.(우리가 항해하던 인근해역에서 우리나라 화물선 2척이 침몰 10여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가라쓰항에 도착한 14일 박태홍 관광진흥담당에게 전해 들었다)

밤새 멀미에 시달리면서 간간히 상황을 살피는 사이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눈을 뜨니 여명이 밝아왔다. 아침 6시 어느 일출보다 감회가 새롭다! 파도는 여전히 높아도 비는 개이고 화창한 날이다. 선장실에 올라가니 이 선장이 반가워하며, "동상! 잘 주무셨는교:"하고 문안을 살핀다. 밤새 눈을 붙이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밤새 정말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는 말로 이에 답한다.

"동상이 어젯밤 선실로 내려간 뒤에 고기 한 마리가 갑판에 튀어 올라와 우리끼리 사시미 쳐서 술 한잔 했다 아닝가: 와! 맛있데에!" 하고 이정운 선장이 농담하자 구 선장이 맞장구 치며, "그게 날치제!" 하고 서로 마주보며 웃는다.(※ 이러한 경우는 실제로 가끔 있는 일이라고 함.)

왕인호의 소식을 물으니 왕인호는 어제밤 높은 파도에 강타 당하여 나침반과 항해장비 일부를 파도에 유실하고 노 2개 중 1개가 파손되었다고 전하며, 지금 추위에 몹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 내용과 낮에 옷을 말려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갑판장이 나를 보자"내가 선수에서 선장실로 올라가는 계단 난간에 묶어 놓았던 낚시대가 지난밤 파도에 부서졌다고 말해온다. 그 순간 앗차! 하는 생각이 든다. "오메, 30만원이나 되는 빌려온 낚시대인디! 으째야쓰까이잉!" 하니 갑판장은 "뭐에가 그게 30만원이나 됩니꺼: 1~2만원이나 주면 사겠떠구마는! 릴은 비싸겠뜨만 릴은 괜찬하입디더!" 하고 말하며 나를 못 미더워한다. 뱃사람이라서 낚시 상식에 밝은 줄 알았으나 의외로 어두워 릴보다 낚시대가 훨씬 고가라는 나의 설명에도 이해가 잘 안되는 모양이다.

나는 뱃머리로 나가 낚시대의 수선이 가능할 것인지 찾아보니 손잡이대 릴을 결합시키는 바로 윗 부분이 바스라져 도저히 수선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기타 낚시 용품도 모두 파도에 휩쓸려 찾을 수가 없었다. 손실이 이만저만 아니다.〈계속〉

[사진]채바다 대장이 강풍으로 인하여 '왕인호' 떼배의 돛을 내리고 있다.

이정훈 영암군 기획예산실 기획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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