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96년 인천에서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제조:판매 하 언중 당시 매스컴에 떠들썩했던 유통 사기단에 걸려들어 듣기만 하여도 끔찍스런 부도라는 걸 맞았다. 결국 1997년 2월 22일 고향인 영암에 무일푼으로 낙향했다.

오직 내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무, 배추 작업을 했다. 또 택시와 화물차 운전 등 갖은 고생 끝에 농사를 지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임차농부터 시작해 벼농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농사에 대한 지식이 없어 첫해는 실패했다.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농업기술센터를 찾아가 농사에 대한 교육을 받기 시작해 영암, 강진농업 기술센터, 도 농업기술원, 수원 농촌진흥청 등에서 실시하는 농사전문 교육에 빠짐없이 참여해 농사기술을 터득해 2년 차에는 20년 넘게 농사를 지은 사람보다 벼농사를 더 잘 지을 수 있었다.

그래서 임차농지를 늘리고(약 7만 RRC) 2000년도에는 영암군 농민후계자로 선정되어 농지구매자금을 지원받아 5천 선의 농지를 샀다.

2002 년도에는 농업기반공사에서 선정하는 쌀 전업농에 선정되어 1만 NF의 농지를 사 현재는 임차 논을 포함, 9만 평의 논에서 연간 저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성과를 올리기까지는 고향이 인천으로 농사일을 전혀 모르면서도 남편을 따라 묵묵히 일해준 아내의 덕분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제일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그동안 나를 아끼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친구에게 지면을 통해 감사드린다.)

앞으로 희망 사항이 있다면 영암지역의 모든 귀 농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도시생활과 농촌생활을 다 겪어본 사람들로서 도시인도 아니고 농촌인도 아닌 중립적인 입장에서 현 농정을 전론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또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현재 각 면사무소에는 사회복지사가 있어 복지업무를 담당하듯이 최소한 군청에 한 명의 귀농인 전담 요원이라도 있어 영암군의 귀농인들을 관리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했다면 지금과 같은 역 귀농인들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