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水地理에 대한 小考

物f韻으로 극치를 이르고 得水得破가 합리화되더라도 系之地가 더러더러 있음을 연구해 볼 과제라고 본다. 그러므로 명당은 形氣 分金과 擇制穴의 다섯 가지가 일치됨으로 명당을 썼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형기가 맞지 않아도 이기만 맞으면 명당일 수 左 있다. 그러므로 형기보다 이기가 앞선다는 것이다.

끝으로 휴학자들이 유의할 것은 절름바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산에 가서 용을 찾으면 혈을 찾아야 하고 혈을 찾으면 山 운과 亡人의 운에 맞추어 택일할 줄 아는 풍수가 되라는 것이다. 주먹구구식 택일은 절대 금물이다. 명당이라도 택일이 잘못되어 손해를 보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리고 나는 수천 년에 걸쳐 묘 이장할 때 破墓해서 가지고 온 顯體를 많이 보았다. 형편이 없는 것도 있고 참으로 놀라울 정도로 黃骨된 깨끗한 것까지도 보았다. 이럴 때 나는 상주에게 물어본다. 상주 된 사람의 대답은 간단하다. 너무나도 높은 데에 계시기에 묘지 관리상 자가용차로 내려 성묘 드리려고 이장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대략 이런 분들은 가세는 넉넉하고 돈도 모았고 사회 지위도 좋은 분들이 다 남들과 같이 石物도 하고 호화 묘로 집안 자랑을 하고 싶은 데서 이루어진 것이다. 풍수가 볼 때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최근에 있었던 사실 한 토막을 소개하고자 한다. 서울에 사시는 부자 목포 출신이 고함에 묘가 있어 성묘 드리기가 멀어서 곤란을 느꼈는지 인부를 동원, 해남, 영암에 산재하여 있는 선영의 명당묘(解體가 너무 좋았다고 함)를)를 파서 서울의 양지바른 도로변에 이장하였다.

얼마 후 전 가족이 자가용차로 성묘를 기다가 교통사고로 전 가족이 사망했다. 이와 같은 사례는 부지기수이다.

광주 무등산에 더 바가 약수터 길 밑에서 破墓(大明堂이었음)하여 이장한지 한 달 만에 상주 문 회장이란 분의 아들이 칼을 들이대면서 돈을 요구함으로 문회장은 충격을 받아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러기에 나는 역사가 깊은 묘는 함부로 이장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자 한다.

그 뿐만 아니라 내가 잘아는 고향 친구 한 분이 수년 전에 穴의 명당이라고 사라고 하니 와서 감정을 부탁받고 中字穴이란 것을 답사하여 본바 전혀 내 생각은 다르기에 사지 말라고 했더니 새벽 한 시쯤 집에 전화가 걸려와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는 것이다.

젊은 사람이 한 건 하려고 하는데 나와 당신과 무슨 원수를 졌느냐고 하면서 협박하기에 전화를 끊으면 또 걸려 오고 그러기에 전화 코드를 빼고 말았던 사실이 있다.

그러기에 풍수뒷은 뒷이 없다고 하는 말을 어려서 동네 사랑방에서 들은 기억이 있다. 뒷이 없다는 말은 白胃위 죄를 지었기에 후손이 끊긴다는 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죄 가운데는 白痴_클까 봐 제일 큰 죄란 것, 그러기에 휴학자들을 위해서 참고가 될까 하고 기술하여 둔다.

廢 男明哲 한국 역리 학회 중앙본부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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