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자신의 생명이 다했음을 느낄 때 태어난 곳을 찾는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 태어난 동굴에 돌아와 일생을 마친다. 이 같은 사실은 자연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자연 탐험가들은 코끼리 동굴을 발견만 하면 횡재를 한다고 한다. 산더미처럼 쌓인 웅장한 코끼리들의 뼛속에서 값비싼 상아를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여우는 태어난 곳으로 갈 수 없으면 태어난 방향으로 머리를 향하고 숨을 거둔다고 한다. 그래서 수구초심 (首丘初心)이란 말이 생겼다. 우리 인간도 태어난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은 동물들 못지않다. 태어나서 자란 보금자리, 추억 속의 고향 땅을 어찌 잠시도 잊을 수 있겠는가! 고향을 떠나 넓은 지구촌에 흩어져 사는 수많은 재외 동포들도 고국 땅에 묻히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필자는 고향 영암에서 중학교를 다니며 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서울로 유학해 현재 40년이 다 된 기나긴 세월 동안 서울 시민으로 살고 있다. 지독한 보릿고개 시절이었던 1960년대 초반. 필자는 영암군 서호면 장천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학산면 낭주중학교에 입학했다

군서면 구림중학교(당시 군서고등 공 만 학교)로 옮겨 졸업했다. 당시는 끼니조차 잇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낭주중학교에 입학했다가 등록금이 싼 구림중학교로 옮겨 중학교 졸업장 대신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를 거쳐서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 고향 사람들은 모두가 6 . 25 전쟁 후 배고픈 설움을 겪어야 했다. 초등학교에는 책걸상이 없어 가마니를 깔고 공부했다. 쌀밥은커녕 보리밥도 먹기 어려워 보릿가루 죽과 나물 쌀죽으로 연명했다. 봄철에는 학교에 오가면서 배가 고파 소나무 껍질을 벗긴 뒤 나오는 달콤한 소나무 액을 빨아먹기도 했다. 무 밭에 몰래 들어가 무를 뽑아 먹다가 산 주인과 무밭 주인에게 들켜 종아리를 맞았던 뼈아픈 추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추석과 설날 1년에 두 차례 흰 쌀밥과 돼지고기를 실컷 먹고 설사병까지 앓았던 가슴 아픈 추억도 있다. 그렇게 가난에 찌들었던 시절, 잘사는 집들은 가까운 목포나 광주, 드물게 서울 등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고향을 떠나 생존의 길을 택했다. 당시 필자는 재력이 없는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중학교를 졸업한 후 감사한 마음을 뒤로한 채 무작정 상경해 고학으로 이를 악물며 공부해 오늘에 이르렀다.

가난을 박차고 고향을 떠났던 영암 출신의 훌륭한 인물들은 얼마나 많은가: 모두 월출산의 정기를 타고나 영암에는 인물이 많다는 소리를 듣는다. 정관계와 학계법조인, 언론인, 유명한 기업가와 사업가 등 많은 영암 인물들이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 모두가 고향 영암 출신이라는 긍지와 자랑으로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고향을 떠나 많이 배우고 입신출세도 하고 돈도 벌었다면 이제는 고향 발전과 후진들을 양성하기 위해 눈을 돌려야 한다. 다시 말해 궁극적으로 타향에서 할 일을 다 마쳤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고향의 발전이 있다. 고향의 어린 후배들도 큰 선배 인물들로부터 자극과 영향을 받아 훌륭한 인재로 커가는 맥을 이어갈 수 있다. 서울시장과 장관을 지낸 어느 인사가 낙향해서 시골 중학교 교장으로 일하며 자신의 노후 생활과 후진 양성에 전력을 쏟으며 보람을 느끼듯 이런 사례가 우리 고함에도 많이 나와야 한다. 코끼리가 죽을 때 태어난 곳을 찾듯이 우리 영암인도 고향을 찾아 많이 돌아오고 큰 관심을 가질 때 그리운 고향의 추억이 더욱 빛날 것이다.

윤재홍서호면 몸 해리 출생정치학박사한국방송공사 보도국 정치부 차장 한국방송공사 보도국 부장 해설위원한국방송공사 여수방송국장한국방송공사 시청자센터 홍보실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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