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희 봉 학산면 계천길 문화유산해설사 전통건축해설사 영암군문화관광해설가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이 가을의 풍성함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사는 어느 곳에나 나무들이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정착하기도 하고, 다른 곳으로 나가 살기도 한다. 그러나 나무는 한 번 그 자리에 심어지면 생명을 다할 때까지 그 자리에 언제나 묵묵히 자리를 잡고 서 있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천년을 넘게 자리를 지키면서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고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우리와 함께한다. 오래된 나무를 보호하고 아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우리 지역에는 오래되어 보호수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아야 하는 나무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보호수로 지정만 해 두고서 소홀히 하고, 보호한다는 생각에서 설치한 설치물들이 나무의 성장을 막고 있는 곳이 많다. 빨리 자라는 속성수도 있지만 더디게 자라는 나무도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회사정 근처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다.

구림마을의 멋진 전경을 이야기하고 회사정의 역사적인 일들을 기억하며 이야기하지만, 소나무를 아끼고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뿐이다. 평지에 그리 큰 소나무는 어디에 가도 쉽게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몇 해 전에 소나무에 병이 들었는지 잘려나가고 흔적만 남아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소나무가 죽어 간다는 것은 지금의 그 장소에서 소나무가 살아가기에는 환경이 나쁘다는 증거일 것이다. 죽은 나무를 그냥 베지 말고 원인을 찾고 주변의 소나무들이 잘 자라기 위해 고민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얼핏 눈으로 보기에도 소나무가 자라기에는 환경이 너무 열악한 것 같다. 보도블록이 깔려 있어서 소나무 뿌리에 무거운 압력이 지속된다면 다른 소나무들도 고사할 거 같다는 생각이다.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우리들이 소나무를 위해 조금씩 불편을 감수해서, 보도블록을 다 없애고 좋은 흙을 덮어주고 지나다니는 길을 우회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 군서면장님의 노력으로 회사정 주변에 꽃무릇도 많이 조성되어 있다. 2000년의 역사적 마을에 멋진 꽃과 아름드리 소나무가 같이 공생하는 생태 공원이 생긴다면 더 좋은 시너지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한다.

또 하나의 안타까운 나무가 있다. 도갑사 입구에 있는 수령이 500년 넘은 팽나무가 있다. 들어가는 입구의 나무는 상태가 심각하다. 안쪽의 화장실 쪽으로 가면 팽나무 한 그루가 더 있는데 그 나무는 쌩쌩하다. 이유가 뭔지 자세히 보니 수형도 조금 다르고 나무가 심겨있는 환경도 다르다. 안쪽의 팽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상당히 오래된 나무로 여겨진다. 문제가 된 입구의 팽나무는 가지가 처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보조 기둥을 세워 주었는데 여기에 첫 번째 문제가 있다. 처진 나뭇가지를 고정하기 위해 고무를 대고 나뭇가지에 못을 박아 고정하고 쇠파이프를 밑에 세웠다. 어떤 곳은 쇠파이프가 처진 나뭇가지 속으로 파고들어 가기도 했다. 설치한 후에 주기적으로 모니터링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 밑동을 보면 도로보다 훨씬 낮은 곳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비가 오면 도로의 물이 나무뿌리 근처에 오랫동안 머물게 되어 있다. 나무에 흙을 좀더 덮어주면서 뿌리 쪽도 보강해 주었다면 지금처럼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심은 나무는 한 그루 한 그루가 모두 소중하다. 좀 더 관찰하고 나무의 생태에 관심을 가졌다면 보호수들이 그리 힘든 환경에서 지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나무, 팽나무, 회화나무 등은 더디 자라는 편에 속하는 나무이다. 군서면에 있는 천연기념물인 느티나무는 상태가 좋다. 주변 주민들과 보호하려는 이들이 많아서이지 않을까 싶다. 이렇듯 우리 고장에는 적절한 관심과 보살핌으로 우리에게 정서적 안정을 선물하는 보호수가 있는 반면에 주의를 소홀히 해서 보는 사람도 안타깝게 하는 보호수들이 있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정서가 점점 메말라가는 지금의 시대, 우리는 어디에서 안식을 찾아야 할까? 조그마한 땅에 나무 한 그루 심고 정성껏 물을 주면서 관심과 사랑도 주고 때론 이야기 들어주는 친구 같은 나무를 가꾸는 건 어떨까 싶다. 조상들이 동네 표식을 위해 심기도 하였지만 때로는 하소연의 상대도 되어주고 자식을 위해 기도를 했던 동네 어귀에 심어 놓은 노거수 아래에서 옛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어른들의 이야기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중한 문화이고 간직해야 할 유산일 것이다.

저작권자 © 영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