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 쓰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
<146> 담양의 마한 유적(上)

언택’ 활동 등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때

지난 9월 19일 전라남도교육청이 주최한 ‘전남 청소년 역사탐구대회’가 전국에서 최초로 ‘언택(Online Contact)’으로 열렸다. 작년에는 영암여고 팀이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지만, 본선에 오른 14팀이 온라인을 통해 발표와 심사위원, 참가팀 상호 간의 치열한 토론을 통해 기량을 겨루었다. 이 대회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한 필자는 처음에 걱정도 없지 않았으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하였다. 주최 측의 철저한 준비와 참여한 학생과 지도교사의 노력으로 오전에 잠시 끊김 현상이 나타났을 뿐 전체 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어 마치 한 공간에서 대회가 열리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인간의 능력은 초인적인 경우가 많다. 50년 전인 1969년 인류가 달에 첫발을 디딜 줄을 어찌 꿈이나 꾸었겠는가! 코로나19는 인류의 지나친 욕심이 초래한 재앙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인류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며 끊임없는 발전과 진화를 거듭하였다. 앞서도 얘기하였지만, 코로나19는 우리가 몸으로 부대끼며 해결해야 할 하나의 과제일 뿐 그것을 두려워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은 옳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전남 청소년 역사탐구대회’가 잘 말해주고 있다.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그동안 영산 지중해를 중심으로 마한역사를 살폈다. 그러다 보니 주로 영암, 나주, 함평, 광주 등 영산강 본류에 해당하는 지역의 얘기를 주로 다루었다. 그런데 같은 영산강 수계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담양지역도 마한 관련 유적이 꽤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관련된 보고서도 나오고 2019년에는 학술대회도 열리는 등 이 지역의 마한사도 차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담양지역

북으로 험준한 노령산맥이 자리 잡아 비교적 험준한 산악지대가 형성되어 있는 담양은 여기에서 발원하는 크고 작은 하천을 따라 저평한 구릉과 평야가 여러 곳에 산재해 일찍부터 사람들이 정주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최근 필자가 전라남도의 용역으로 조사한 비지정문화 유산 현황도 담양지역은 다른 전남의 어느 시군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

담양군의 문화유적이 처음 학계에 알려진 계기는 1959년 봉산면 제월리 제월마을 뒷산 고분에서 마구와 동경이 출토되면서다. 인근 서봉마을에서는 마제석검을 비롯한 다양한 유물이 수습되었다. 마침 1976년 담양댐 수몰지구에 대한 지석묘 발굴조사는 담양지역의 고고학적 유적·유물을 본격적으로 살피는 계기가 되었다. 2001년 작성된 문화유적 분포지도에 의하면 구석기 시대 유적 2개소, 지석묘군 84개소, 유물산포지 35개소, 고분군 16개소, 성곽 2개소 등 유적이 확인되었다.

 정치 세력의 중심지였던 담양 대전면 일대

구석기 시대의 것으로는 대덕면 매산리 유물 산포지와 월산면 광암리 유물 산포지 2개소가 있다. 신석기 시대의 유적조사 예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유구인 지석묘와 주거지는 많이 발견되고 있다. 지석묘의 분포는 대전면과 무정면이 다른 지역에 비해 밀집도가 높은 편으로 대전면 대아·화화리 지석묘군과 같이 30기 이상의 상석이 단일군을 이루고 있어 비교적 큰 집단을 이루었을 가능성을 알려준다. 주거지는 역시 대전면 성산리 유적에서 확인되었는데 영산강 상류지역에서 처음으로 조사된 예이다.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모두 원형이다.
 
유적·유물에 나타난 마한 문화의 특성

전남문화재연구소에서 지금까지 발굴 조사된 마한시기 유적은 15곳이다. 이를 도표로 작성하면 다음과 같다. <표 참조>

위 <표>를 통해 현재까지 발굴·조사된 담양지역의 유적들 가운데 분묘유적과 함께 생활유적이 많은 비율을 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생활유적이 많다는 것은 영산강 상류의 좁은 곳간에 형성된 작은 분지에 사람들이 일찍부터 집단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먼저 확인된 고분군 가운데 이미 고분이 파괴된 채 마구와 동경이 확인된 제월고분을 비롯하여 1995년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고서면 성월리 월전고분은 전방후원형 고분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전면 중옥리 유적에서는 영산강 상류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고분의 주구가 발굴 조사되었다. 주구의 평면 형태는 방형계로 추정되며 내부에서는 개배(蓋杯), 고배(高杯) 등이 출토되었다. 담양읍 오계리 계동 고분군에서는 평면 형태가 원형인 주구 2기가 발굴 조사되었으며 내부에서는 여러 종류의 항아리와 술잔 등이 나왔다. 창평면 유천리 오산 유적에서는 석실분 1기가 발굴 조사되었는데, 대표적인 영산강식 토기인 유공광구소호를 비롯하여 고배·개(蓋)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저평한 구릉과 평야지대에 위치한 태목리 유적은 여러 면에서 주목되고 있다. 고분의 주구 12기와 매장 시설인 토광묘 4기가 발굴 조사된 고분유적은 영산강 유역에서 나타난 토광묘와 옹관묘 묘제가 이곳에서도 행해졌음을 알려주었다. 단경호, 이중구연호, 광구호, 옹형토기, 철도자, 철겸, 옥 등이 출토되었다. 아울러 무려 521기나 되는 집 자리가 확인되어 이 지역에 대규모의 세력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려준 대표적인 생활유적 지구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 자세히 살피고자 한다. <계속>

글=박해현(문학박사·초당대 교양교직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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