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우 초대석 김 지 평 음악평론가 작사작곡가 방송작가
‘당신의 마음’ ‘숨어우는 바람소리’ 등 고향 배경의 노랫말 쏟아내

1960년대 말에서 2000년대까지 한국 대중가요의 대표 작사가로 활동했던 김지평은 임금님의 첫사랑(이미자-드라마 주제곡), 당신의 마음(방주연,) 건곤감리청홍백(현숙), 인생은 미완성(이진관), 숨어 우는 바람소리(이정옥), 가슴으로 울었네(장윤정), 과수원길(동요) 등 주옥같은 노랫말을 만들었다.
특히 1972년 방주연의 빅히트곡 ‘당신의 마음’은 TBC방송가요대상, 한국가요대상에서 작사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1984년 이진관이 부른 ‘인생은 미완성’도 KBS가요대상과 가톨릭가요대상 PCI최고인기가요대상을 휩쓸었다. 1985년 현숙의 ‘건곤감리청홍백’으로 ‘MBC-아름다운 노래대상’을, 1993년엔 이정옥의 ‘숨어우는 바람소리’로 ‘MBC신인가요대상’을 차지했다.
대중음악평론가, 작사가, 실용음악교수, 시인으로 한국 대중음악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김지평 향우를 만났다.                         <편집자 주>   


 

▲가수 방주연이 불러 크게 히트했던 ‘당신의 마음’은 1973년 TBC 방송가요대상과 한국가요대상에서 작사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작사가로 이름을 널리 알렸던 이 노랫말의 배경은 고향의 덕진강변이라고 들었다.

내가 꿈에도 못잊는 덕진강변의 백사장이 이 노래의 배경이다. 지금은 영산강하구둑 공사로 인해 바닷물이 막히면서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말았지만 어린 시절, 하얀 모래 조개와 꼬막, 물새와 철새, 숭어와 짱둥어, 운주리, 돛단배와 저녁놀, 뜨는 달과 은물결... 이 노래는 내 가슴에 너무나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는 덕진천 모래밭이 준 선물이다. 그 하얀 모래 위에 그려 보는 얼굴, 눈도 코도 그렸고 턱 밑의 점 하나까지 그렸지만 단 한 가지 당신의 그 마음만은 못 그렸다고 했다. ‘알 수 없는 당신’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과 기다림을 깔아 놓은 것이다.

당시 가요대상의 심사위원장이었던 양주동 문학박사가 “과연 빼어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이관희 문학평론가도 “이것이 시다”고 극찬한 바 있다.

▲‘인생은 미완성’은 가수 이진관이 1984년 발표한 곡으로, 이듬해인 1985년 방송횟수 3개월간 1위, KBS ‘가요톱10’ 3주간 1위를 차지했다. 이때도 가수 이진관을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했고, KBS 가요대상 작사부문 대상, 카톨릭 가요대상 대상, PCI 최고 인기가요 대상 등을 수상했다. ‘인생의 미완성’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인생은 미완성’은 유한한 인생의 미를 담았다. 어차피 인생은 쓰다가 마는 편지이고 그리다 마는 그림인 것, 그럴수록 마지막 사는 날까지 곱게 쓰고 곱게 그려야 한다는 철학적 사유를 암시한다. 미완성은 절망이 아니며 끝이 아니다. 영원한 머무름이다. 식지 않는 그리움, 꺼지지 않는 등대 같은 것이다.

나는 한때 서대문에 있던 서울구치소 교무과에서 서적 검독을 하면서 사형수 전담 카운슬링에 종사한 적이 있다. 매일 책을 읽었고 계속 담론했다. 사형수들과 유한한 인생을 담론할 때, 그래도 인생은 가치가 있으며 넉넉하고 아름다운 거라는 결론에 이르곤 했었다. 사형 집행이 있고 나면 방에 들어가 소지품을 챙기는 일이 나의 차지였다.

아직도 체온이 느껴지는 십자가가 달린 묵주, 때 묻은 성경책, 거기에 끼워진 아기 손바닥만 한 건빵 종이, 그리고 그 안에 쓰다가 둔 몇 줄의 편지, 그런 것들이 마음 약한 나를 울리곤 했었다. 지금도 노래방에 가면 이 노래를 곧잘 부르곤 한다. 외롭고 힘겨운 세상, 의지할 곳이 필요한 슬픈 사람들과 슬프게 살다 간 그 영혼들을 생각하면서.

▲1993년 MBC 신인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던 이정옥의 ‘숨어우는 바람소리’도 영암천의 갈대밭을 배경으로 한 노래라고 들었다.

예술가의 가슴에 한 번 터 잡은 그리움은 어느 때고 작품의 배경으로 살아난다. 내 고향 덕진 모정산 코짐뱅이는 넓은 갈대밭을 조망하기에 딱 좋았는데, 멀리 바라보이는 바닷물 양안의 뽀얀 갈대꽃이 눈을 간지럽혔다. 특히 가을의 달밤에 보이는 갈대밭은 마치 은빛 싸라기눈이 덮인 것처럼 아련했다.

이 노래 ‘숨어우는 바람소리’에 나오는 “갈대밭이 보이는 언덕 통나무집 창가에”는 바로 그런 정경을 배경으로 했다. 세상사는 고통을 가슴앓이처럼 하고 사는 민초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만든 것이 바로 ‘숨어우는 바람소리’다. 자연과 함께 사는 민초들의 청빈한 삶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는 메시지가 깔려 있다.

▲한국 대중 가요사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어떻게 작사가의 길을 걷게 되었는가?

어릴 적, 집에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축음기가 있었다. 그 축음기 가사지를 연필로 베껴 쓰며 민요, 판소리, 가요 등을 배웠다. 영암고 1학년 방학 때는 또래 친구들과 함께 ‘남매의 사랑’이라는 연극 대본을 써서 배역과 대사를 나누고 연출하여 공연하기도 했다. 누구에게 배우지도 않았는데 레코드판의 음반극과 가사지에 심취하다 보니 대본도 엮고 연극·연출·장치·연기를 저절로 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에게는 영암읍내 용흥리 S누나가 호주머니에 넣어준 아주 작은 하모니카가 있었는데 나는 그걸 이용해 곡까지 지었다.

훗날, 그 누나에 대한 연정이 ‘사랑은 아니어도 좋으리’(가수 유연실)라는 노래로 그려졌다. 당시 실력은 유치했지만 그만큼 향토의 정서에 푹 빠졌던 내 예술 인생의 DNA가 표출되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읍내 동급반 차랑의 기타를 처음 만져 보게 되었고, 군 제대후 상경해 카톨릭성음악원 4학기 12과목을 수료하면서 전문 음악인으로서 활동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곡 중에 고향을 배경으로 한 노래가 많다.

철따라 멀리서 가까이서 들리던 농부들의 농요소리, 젓가락 장단이 정겹던 주막거리 길손들의 노랫소리, 걸쭉한 입담으로 배를 쥐게 했던 떠돌이 노래패들의 풍자공연, 옹기장수, 소장수, 나무장수 아저씨들의 소탈한 콧노래, 할머니들의 구성진 물레노래, 사랑방에 모여 돌려가며 부르던 옛 노래와 이야기 등은 나를 정서적으로 키워준 영암의 비바람이었다.

특히 어린 시절 사랑방에 들락거리며 들려주었던 손님들의 얘기는 학교보다 좋았다. 그때 일꾼들이나 사랑방 식객들과 어울려 새끼 꼬며 이야기하고 듣고 하는 것을 즐겼던 사랑방 문화는 내 가요인생 동안 피워 올린 작품들의 모종밭이었다.

▲지나온 세월 동안 아쉬웠거나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면.

1971년 3월 오아시스에서 발매된 ‘임도 울고 나도 울고’라는 곡이 있다. 음반에는 ‘김정호 작사’로 돼 있지만 당시 예명이 없었던 터라 본명 ‘김종호’를 썼는데 잘못 기재된 것이다. 이인권 작곡, 나훈아가 부른 이 노래는 영암인 김지평의 데뷔작이면서 금지곡 딱지가 붙여진 운명적인 사연을 갖고 있다.

원래는 끝부분이 님도 울고 나도 울고 ‘저녁별도 울었소’(1절) ‘새벽별도 울었소’(2절)였다. 밤새도록 이별을 안타까워했다는 뜻이 깔린 노래였는데 작곡가 이인권 선생이 몇일 후 미안해하며 수정을 권해왔다.

5.16혁명 후 눈물을 삼킨 장성들이 많아 잘못했다간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녁별’ ‘새벽별’를 빼고 ‘달빛마저 울었소’(1절) ‘별빛마저 울었소’(2절)로 고쳐주었는데 그것도 심의에서 빠졌다. 결국 나중에 음반이 나왔을 때는 ‘목을 놓고 울었소’로 바뀌었다.

그 후 1975년 9월 공연윤리위원회에서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고, 한달 뒤 10월 방송심의위원회에서 방송 금지됐다. 그 후 1987년 해제되어 노래를 들을 수 있었지만 지금도 씁쓸하다.
 

●작사가 김지평(본명 김종호 )은?

-영암군 덕진면 금강리 금산마을
 (1942년생)
-덕진초-영암중-영암고-
 가톨릭성음악원 4학기 수료
-현대악보사 편집국장
-후반기출판사 편집국장
-월간가요 편집국장
-월간 뮤직라이프 편집국장
-삼호출판사 편집국장
-KBS TV ‘가요무대’ 창설위원
-KBS 라디오 ‘세월따라 노래따라’
 ‘테마 디스크쇼’
-MBC ‘해방50년 노래50년’
‘한국가요 그 뿌리를 찾아서’
-PBC-FM ‘그시절 그노래’ 등
 구성 및 해설
-전 서울예술대학, 명지대학교
 사회교육원 등 출강
-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부회장 역임
-전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 감사
-영암역사연구회 자문위원
-한국가요정신사 실력파 가수입문 등
 저술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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